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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복잡한 그물망 <보딩 게이트>

장르적 취향과 작가적 취향 사이에서 길 잃기

<보딩 게이트>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출신 영화감독의 계보를 잇는 감독 중 하나인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작품이다. <아마베프> <데몬 러버> <클린> 등을 통해 다국적 배우와 작업하기를 즐겨왔던 아사야스는 <보딩 게이트> 역시 여러 국적의 배우를 기용하여 유럽과 중국을 오가는 사랑과 음모, 배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산드라(아시아 아리젠토)는 큰손으로 통하는 증권업자인 마일즈(마이클 매드슨)를 위해서 성 상납까지 마다하지 않을 만큼 그를 사랑했지만, 그 헌신의 대가는 이별이다. 이후 마일즈는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마일즈 앞에 산드라가 다시 찾아온다. 마일즈는 산드라에게 관계의 복원을 청하지만, 산드라는 그의 머리에 총알을 박는 걸로 그 요청에 화답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산드라의 이러한 행동 뒤에는 또 다른 연인인 레스터(오가룡)가 있고, 그의 뒤에는 마일즈의 살인을 청탁한 누군가가 있고, 또 그들 뒤에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레스터의 부인이 있다. 이처럼 <보딩 게이트>는 이리저리 분리와 결합을 반복하는 ‘보딩 게이트’와 유사한 인간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을 따라가고자 한다.

아사야스는 에너지를 소진할 만큼의 역작을 만들면, 마치 건전지 충전이라도 하듯 할리우드식의 장르영화를 찍곤 한다. 8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던 <감정의 운명> 이후 스릴러 장르의 <데몬 러버>를 선보였듯이, 시간이 쌓아올리는 감정의 지층을 가장 순수한 영화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던 <클린> 이후 아사야스는 할리우드식의 스릴러영화인 <보딩 게이트>를 완성했다. 성공의 야망을 품고 스파이 활동을 하다 SM클럽의 노예로 전락해버리는 프랑스 기업의 여성 간부를 주인공으로 했던 <데몬 레버>는 아사야스 작품 중 최악의 영화라 평가받지만, 영화의 후반부 장르를 해체하는 과정은 난해한 만큼의 파괴적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 음모, 배신의 얽히고설킨 관계 앞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의 감정이 어떠한 파고를 그리는지에 관심을 쏟는 <보딩 게이트>는 아사야스의 장르적 취향과 작가적 야망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보딩 게이트>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아사야스의 힘이 아니라 퇴폐적 매력의 ‘아시아 아리젠토’와 지친 냉소주의의 미소를 선보인 ‘마이클 매드슨’의 연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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