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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기관사들의 이야기 <나비두더지>
정재혁 2008-02-20

나비가 되지 못한 두더지들의 비극

서명수 감독의 독립장편 <나비두더지>는 지하철 기관사들의 이야기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달리며 살아가는 이들은 지하철 선로에 몸을 내던지는 자살에 어쩔수 없는 죄책감을 갖는다. 그 횟수가 잦아 면역이 됐다 해도 죄책감은 마음의 주름을 깊게 할 뿐 삶의 무게를 덜어주진 않는다. 마흔이 넘은 기관사 경식(판영진)에게도 지하철 선로에서의 자살은 익숙하다. 갑자기 닥친 죽음에도 그는 동료들과 손에 묻은 피를 씻고 술을 한잔 마신 뒤 단란주점에 가서 기억을 씻는다. 현실은 힘들지만 그 현실을 계속 살기 위해선 스스로의 삶을 세뇌시켜야 한다. <나비두더지>는 세상의 어둠에 매인 이들이 자신의 출구를 찾아 발버둥치는 이야기다.

경식의 고민은 아내와 동생의 실종에서 시작된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내는 집을 나갔고 건축업을 하던 동생은 쌓이는 고지서를 감당하지 못해 종적을 감췄다. 영화는 이후 실종사건 수사를 위해 만난 형사와 경식의 대화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경식은 실종,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배신은 더 크게 느껴진다는 형사의 말. 참다 못한 경식은 내뱉는다. “덤비는 놈들은 누구든 내가 다 죽였어.” <나비두더지>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가해자로 몰리는 한 남자의 비극을 담는다. 지하철 기관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사회의 어둠은 서로 뒤엉키며 경식을 궁지로 몰고 간다. 서명수 감독은 기관사들의 일상을 묘사하던 전반부를 지나 중·후반에선 경식의 심리묘사에 집중한다. 하지만 심리를 그린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투박하고 이야기의 흐름은 매끄럽지 못하다. 일상의 피로를 술집 여자를 상대로 푸는 설정의 몇몇 장면도 거북하다. 영화의 의도엔 공감할 수 있지만 방식이 서툴고 다소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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