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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동 블록버스터 <점퍼>
최하나 2008-02-18

사막과 북극을 ‘점프’하는 순간이동 블록버스터

뉴욕에서 아침을 먹고, 푸껫에서 서핑을 즐긴 뒤, 파리에서 석양을 감상하고, 도쿄에서 디저트를? <점퍼>는 한순간에 전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순간이동 능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고등학생 시절 자신감없는 외톨이 소년이던 데이비드(헤이든 크리슨텐슨)는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잠재됐던 자신의 능력을 자각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폭압적인 아버지와 살아가던 그는 즉각 집을 뛰쳐나와 뉴욕으로 향하고, 순간이동을 이용해 은행 금고에서 거액의 돈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8년 뒤. 양말을 개켜놓듯 각국의 화폐들을 착착 쌓아놓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데이비드는 첫사랑 밀리(레이첼 빌슨)와 함께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자신을 ‘팔라딘’이라고 밝힌 낯선 남자(새뮤얼 L. 잭슨)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데이비드는 지구상에 자신뿐 아니라 순간이동 능력을 지닌 ‘점퍼’라는 이들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점퍼 그리핀(제이미 벨)을 만난 데이비드는 그와 함께 점퍼를 절멸시키려는 비밀조직 팔라딘에 맞선다.

<점퍼>는 미국의 SF작가 스티븐 굴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더그 라이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데이비드가 어머니를 테러리스트의 손에 잃고 복수를 꿈꾼다는 원작의 설정 대신 팔라딘이라는 조직이 새로운 적대 세력으로 설정됐고, 또 다른 점퍼 그리핀이 동료 격의 캐릭터로 추가됐다. 결과적으로 성장소설에 가까웠던 원작의 느낌은 사라지고, 쫓고 쫓기는 액션이 주를 이루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화법의 영화가 탄생했다.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하고 섬세한 내면을 가졌던 소년 데이비드는 능력을 이용해 팬시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치기어린 청년으로 변신했는데, 원작의 팬이라면 가장 아쉬워할 부분이다. 맹목적으로 점퍼를 처단하겠노라 나서는 팔라딘 역시 작위적인 대결 구도 이상의 긴장감을 전하지는 못한다. 다만 액션 시퀀스는 순간이동이라는 소재의 영화적인 매력을 잘 활용하고 있다. 스핑크스의 머리 꼭대기와 콜로세움, 도쿄 시내 한복판을 오가는 방대한 로케이션이 배경막을 갈아치우듯 튀어나오는 가운데 액션이 하나의 호흡으로 펼쳐지는 연출이 현란하다. 국내에는 소설 2권이 출간됐는데 1편이 영화의 원작이 된 작품이고, 2편은 영화의 설정들을 이식해 굴드가 새롭게 써낸 일종의 프리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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