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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관객이 만났을 때 <터질거야>
박혜명 2008-02-27

감독과 관객이 만났을 때

영화 <터질거야>의 주인공은 감독과 관객이다. 호평에만 귀를 여는 이기적인 예술영화 감독과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가주의를 못 견디는 단순한 관객이 그들이다. 주먹을 주체 못하는 다혈질적인 토니(울리히 톰센)는 자녀들과 <해리 포터>를 보려 했으나 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다른 영화를 보게 된다. ‘걸작!’이란 홍보 문구가 붙은 영화 <살인자>는 ‘예술’이란 이름의 탈을 쓴 엉망진창 영화. 화가 난 토니는 극장에 환불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 한편 클라우스 볼터(니콜라이 리 코스)는 자신의 3부작 중 2편이 전국관객 7명을 동원한 사실도 개의치 않고 제작자에게 3편의 제작 압박을 가한다. 볼터 감독의 신작은 어렵사리 진행되고, 토니는 급기야 감독의 영화 촬영장까지 찾아간다. 그곳에서 전신부상 사고를 맞게 된 토니는 감독에게 합의금을 뜯어내는 대신 “당신 영화의 대본과 연출에 내가 관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수백만달러와 마약 봉지가 오가는 것만큼 이런 거래도 흥미롭다. <터질거야>는 이른바 아트영화 또는 작가주의영화에 ‘배신’당한 기억이 있는 관객에게 ‘까스활명수’쯤 될 영화다. 토니가 볼터 감독과 접촉하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하나같이 어이없게 웃긴다. ‘무식한 관객’ 토니에 의해 망가져가는 자신의 예술을 볼터 감독이 지키려고 애쓰는 몸부림도 웃기고, 제멋대로 엉망진창인 오락물을 찍어낸 토니의 영화가 평론가들에게 “삼류의 모양새를 빌려 완성된 걸작”이란 평을 듣는 것도 웃기다. 아주 신선한 풍자코미디라곤 할 수 없고 감독의 연출의도도 그리 중대해 보이진 않으며 생뚱맞은 결말 때문에 허무함이 크지만, 적어도 허허실실 웃으면서 1시간 반을 보내기엔 아쉬움이 없다.

유독 이 영화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면 극단적인 두 유형의 캐릭터를 시치미 뚝 떼고 능청스레 연기한 배우들 때문이 아닐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겐 얼굴이 몹시 낯설지만 울리히 톰센과 니콜라이 리 코스는 고국 덴마크에서 십수 차례씩 연기상 후보 및 수상자로서 이름을 날려온 스타배우들이다. 영화의 영어제목 ‘Clash of Egos’가 말이 되는 것도 배우들 덕. 연출자 토마스 빌룸 옌센은 1971년생, 배우 출신의 젊은 감독이다. 25살 때 단편 <에른스트와 빛>으로 주목받은 뒤 두 번째 장편 <누나의 아이들>과 그 속편으로 해외 어린이영화제들에서 수상하거나 후보에 올랐다. <터질거야>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자아의 불일치>라는 제목으로 상영돼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영화제에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진귀한 영화들을 건지기 위해 부산으로 몰려든 관객이 이 영화를 매우 반겼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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