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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해야 한다
고경태 2008-03-21

욕실에 여자가 누워 있다. 입엔 재갈이 물렸다. 손과 다리도 묶였다. 속옷 차림이다. 남자의 손엔 정과 망치가 들렸다. 여자는 공포로 마취가 되었다. 부들부들 떨며 짐승의 소리를 낼 뿐이다. 남자가 여자의 재갈을 벗기며 묻는다. “네가 왜 꼭 살아야 하지? 이유를 말해봐.” 여자는 그저 단순하게 애원할 뿐이다. “살려주세요.” 남자는 조롱한다. “살 이유가 없네? 죽어야겠네?” 여자는 딸아이가 있다고, 일곱살짜리 딸아이가 있다고 격렬하게 호소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망치를 내려친다.

영화 <추격자>에서 그 남자, 지영민(하정우)의 질문은 변태적이다. 끈적끈적한 공포가 지배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난데없이 한심한 궁리를 하고 말았다. 내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살인마에게 그 어리석은 질문을 받는다면 무어라 현명하게 대답할지 말이다. 어떤 논리 또는 재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뻔한 대답? “내일 출근 안 하면 마감에 차질이 생긴다”는 의뭉스런 투정? “개죽음당하지 않을 만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왔다”는 비장한 대꾸? 아니면 “내 머리통은 돌이니까 오히려 망치가 부러질 것”이라는 썰렁한 조크? 위기를 탈출할 비기가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엄중호(김윤석)는 1박2일 동안 한잠도 안 잔다. 피곤한 기색 전혀 없다. 지영민을 잡아야 한다는 집착과 사명감이 그를 불꽃처럼 타오르게 한다. 그리하여 뛰고 또 뛰고, 마침내 살인마를 패대기친다. 영화 홈페이지에서 관객이 감독에게 이 대목을 질문했다는데, 나도 궁금했다. “도대체 그렇게 죽도록 쫓아다녀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뭐죠?” 감독은 그것이 이 영화의 거대한 축이었다며 여러 설명을 덧붙였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살인마에게 목숨을 뺏기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건 본능이다. <추격자>에서 주인공이 앞뒤 안 재고 ‘추격해야 한다’는 건, 그게 영화라서다. 왜 꼭 그래야 하냐고, 안 그럼 안 되냐고 너무 깊이 따지면 다친다. 그냥 ‘해야 하는’ 거다.

일상에서는 그 ‘~해야 한다’의 어투가 참 싫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주장에 악센트를 주는 글과 말, 주변에 차고 넘친다. 신문 사설의 톤을 닮은 그런 문장들을 접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왜 꼭 해야 하지? 안 하면 안 되나? 세상이 뒤집어지나?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에는 가급적 ‘~해야 한다’나 ‘~해야 할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는 피한다.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함께 개탄하지 않으면 큰일날 듯한 뉘앙스라서 그렇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수많은 ‘have to’ 용법과 마주친다. “공부해야 한다… 군대에 가야 한다… 결혼해야 한다… 세금을 내야 한다…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투쟁해야 한다… 기업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책임자를 퇴진시켜야 한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행동강령을 실천해야 한다….” 좋든 나쁘든, 어쩌면 도덕교과서의 말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원조라 할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초등학교 1학년 도덕교과서(1913년판) 내용을 찾아보았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 정리를 잘해야 한다… 부모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한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규칙을 잘 따라야 한다….”

괜히 사회의 규범과 도덕률에 딴죽을 거는 시니컬한 치기라 해도 좋다. 사회적 동물로서 지켜야 마땅한 통과의례나 도리는 존재하는 거니까. 그럼에도 그 ‘~해야 한다’가 끝없이 의심당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을 해본다. 백번 지당하게 여겨지는 명제들도 꼬치꼬치 따지고 검증해야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뒤탈도 덜할 것 같다.

근엄하고 강박적인 훈계보다는 좀더 친절하고 세심한 설득의 언어가 공감을 퍼뜨려준다. 세상을 덜 삭막하게 해준다. ‘~해야 한다’엔 가르치려는 꼰대의 냄새가 난다.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려는 이들은 그런 종결어미를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상, 이태준의 <문장강화>나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에도 안 나오는 새로운 개념의 문장론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