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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등을 향하게 된 네 남자의 싸움 <숙명>
문석 2008-03-19

어긋난 운명 속에서 서로의 등을 향하게 된 네 남자의 싸움

<숙명>의 주인공들은 깡패 세계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각자의 목적지가 다른 존재들이다. 이들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 또한 다르기에 궁극에는 서로 맞부닥칠 수밖에 없다. 우민(송승헌)과 철중(권상우), 도완(김인권)은 보스인 강섭 아래서 함께 지내온 사이다. 이 어둠의 세계를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우민의 새로운 삶을 위해 이들은 사설 카지노의 금고를 강탈하지만, 철중의 배신으로 또 다른 조직의 보스 두만에게 발각된다. 이 사건으로 우민은 감옥에 들어가고 도완은 마약에 찌든 생활을 하게 되며, 강섭은 숨겨둔 돈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숙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우민이 감옥에서 나오면서 시작된다. 우민은 암흑 속 삶을 정말로 끝내려 하지만 자신의 돈을 가진 강섭을 찾을 수 없는데다, 철중을 폐기처분하려는 두만의 호출을 받는다. 완전히 폐인이 돼버린 도완 곁을 떠난 우민은 두만의 계략을 역이용해 한때 사랑했던 여인 은영(박한별)과 멀리 떠나려 하고, 여기에 철중과 두만의 수하 영환(지성)이 끼어든다.

<숙명>은 스타트라인을 함께 끊은 남자들이 자신의 결승점에 다다르기 위해 한때 가까웠던 친구까지 제거해야 하는 운명과 그 운명에 임하는 포즈를 그려내는 영화다. 김해곤 감독은 <숙명>을 “누아르의 옷을 입은 캐릭터영화”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관객에게 익숙한 ‘코리안 누아르’처럼 보이지만, 각기 욕망하는 바가 다른 캐릭터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이들을 충돌시키면서 그 긴장감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겠다는 것.

그러나 이들 캐릭터가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긴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불덩이의 정체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숙명>은 그들의 감정을 촉발한 사건과 어그러진 관계를 스쳐지나갈 뿐 그 한가운데에 있을 법한 애증의 고리를 단단히 틀어쥐지 못한다. 때문에 때때로 이들 캐릭터는 공중에 떠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파이란> 등의 시나리오와 연출 데뷔작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김해곤 감독이 보여준 징글징글한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결국 <숙명>의 약점이 될 것이다. 물론, “누가 백의민족 아니랄까봐 하얀 가루 좆나게 밝히니까…”나 “내가 지금 청와대만 빼고 다 알아봤는데 다들 돈이 없다잖아”처럼 김해곤 감독 특유의 펄떡거리는 대사는 여전히 신선하지만 ‘코리안 누아르’와의 친화력은 <숙명>을 그닥 새롭지 않은 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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