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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봅시다] 불사신의 어이없는 최후
최하나 2008-03-27

<데스 디파잉: 어느 마술사의 사랑>의 전설적인 탈출 마술사, 해리 후디니

조지 버나드 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 셜록 홈스, 그리고 이 남자를 꼽았다. 바로 해리 후디니(1874~1926). 마술의 황금기였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전세계의 눈을 희롱했던 전설적인 탈출 마술사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마술과 심령술을 둘러싼 논란, 농담처럼 허무한 죽음까지 아슬아슬한 탈출만큼이나 드라마틱했던 후디니의 궤적을 따라가보자.

1. 허공의 왕자에서 탈출의 대가로

후디니의 본명은 에릭 와이즈. 헝가리 이민자의 아들로, 일찌감치 장난감 대신 카드와 자물쇠를 만지작대던 그는 10살 때부터 이미 서커스 공중곡예사로 활동했다. 본래 “허공의 왕자, 에릭”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던 그는 나이가 차면서 좀더 근사한 예명을 만들고자 결심했는데, 후디니라는 이름은 당대 최고의 프랑스 마술사였던 로버트 후딘의 이름을 딴 것이다. 공중곡예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후디니는 이내 “카드의 왕”으로 종목을 바꿔치기했지만, 역시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1899년 후디니의 수갑 탈출 묘기에 감명받은 보드빌의 미다스, 마틴 벡이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후디니는 성공의 길로 들어선다.

2. 탈출은 나의 운명

<데스 디파잉>

후디니가 일약 스타로 부상한 것은 1900년 마틴 벡의 지원으로 유럽 투어를 나서면서부터다. 그는 손발에 수갑과 족쇄를 찬 채 강물에 뛰어드는 묘기를 감행했는데, 그때마다 수천명의 관중이 운집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05년 미국으로 돌아온 후디니는 은행 금고, 우유통, 못이 박힌 나무 상자, 운행 중인 기차, 심지어 고래 뱃속에 이르기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탈출 마술을 선보였다.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후디니가 자신의 간판 마술로 개발한 것은 중국식 물감옥 탈출(Chinese Water Torture Cell Escape). 손과 발을 포박해 거꾸로 매단 뒤 물을 가득 채운 수조 안에 몸을 집어넣고 장막을 덮는 식으로, 최소한 3분 이상 숨을 참아야 성공할 수 있는 묘기였다. 쇼맨십이 뛰어났던 후디니는 쇼가 시작될 때면 관객에게 자신과 함께 숨을 참아볼 것을 선동했고, 더이상 숨을 참지 못해 불안해진 관객이 비명을 질러댈 즈음 멀쩡하게 등장해 열광적인 환호를 사곤 했다.

3. 심령술도 속임수?

1913년 어머니 세실리아가 세상을 떠난 뒤, 후디니는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영매를 찾아갔다가 속임수를 발견하고 격노한다. 그 분노가 어찌나 컸던지 후디니는 이후의 삶을 아예 가짜 영매들을 적발하는 것에 쏟아부었는데, 그 와중에 심령술의 지지자였던 코난 도일과 격한 논쟁을 벌인다. 강연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사사건건 충돌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보란 듯이 심령술을 지지·반대하는 책을 동시에 출판하기도 했는데, 도일의 <심령술의 역사>와 후디니의 <영매들 속의 마법사>가 그것이다. 1923년 후디니가 회원으로 활동하던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심령술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영매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겠노라고 공개적인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지원자들 모두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4. 주먹 한방에 저승길

평소 불사신을 자처하던 후디니는 실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1926년 10월 몬트리올의 한 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후디니의 팬이라고 밝힌 한 학생이 “내가 주먹이 꽤 강한데, 당신 배를 한번 쳐봐도 되겠냐”고 요청했고, 후디니는 호기롭게 배를 내밀었다. 하지만 주먹 한방을 야무지게 맞은 그는 그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졌고, 복부의 충격은 급성복막염으로 악화되어 후디니는 불과 이틀 뒤에 눈을 감고 말았다. 생전 심령술의 거짓을 폭로하는 데 열을 올리던 그는 임종의 순간에도 내기를 걸었다. 만약 진짜 심령술이 존재해 영매가 자신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다면, 아내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암호 메시지를 맞힐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5. 후디니의 영혼이 살아나다?

후디니가 사망한 지 3년 뒤인 1929년, 아서 포드라는 영매가 나타나 자신이 그의 메시지를 받았노라고 호언장담했다. 후디니의 암호 규칙에 따라 구성되었다는 문제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Rosabelle-Answer-Tell-Pray, Answer-Look-Tell-Answer, Answer-Tell.” 로저벨(Rosabelle)은 후디니와 아내의 첫 만남에서 그녀가 부른 노래의 제목이었으며, 알파벳을 각각의 단어로 치환한 이 메시지를 해독하면 결국 “믿다”(BELIEVE)라는 단어가 나온다(원리는 어렵지 않으니 직접 시도해보시길). 하지만 언론들은 후디니의 아내 베아트리체가 이미 주위 사람들에게 부주의하게 메시지를 흘려왔으며, 아서 포드의 주장은 교묘한 사기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 뒤에도 온갖 영매들이 후디니의 문지방을 넘나들기를 수차례. 마침내 1936년 베아트리체가 심령술 실험이 실패했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함에 따라, 후디니는 숨진 지 10년 만에 비로소 온전한 안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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