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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다는 것 혹은 잊는다는 것 <어웨이 프롬 허>

44년간의 인연. 그리고 잊혀진다는 것 혹은 잊는다는 것

<어웨이 프롬 허>는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인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원작으로 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와 그녀를 떠나지 못하는 남편 그랜트(고든 핀센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79년생 배우 출신의 감독, 사라 폴리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고 사색적이며 여유롭다. 자신의 남은 삶이 점차 망각으로 뒤덮이게 될 것을 느끼며 남편을 떠나려는 아내와 그런 아내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고자 하는 남편의 시간은 아내가 요양원에 들어간 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갈린다. 면회가 금지된 첫 한달 동안 피오나는 남편 대신 자신과 거의 같은 처지인 다른 남자, 오브리를 자신의 삶에 들여놓는다. 아내의 남겨진 시간에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깨달은 남편은 오브리의 아내를 찾아간다. 영화는 그랜트와 오브리의 아내가 대면하는 현재와 요양원에 들어간 아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랜트의 장면들을 오가며 진행된다. 여기에 다른 여자를 사랑했던 그랜트의 오래전 과거가 “그때 날 버리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라는 피오나의 가슴 아픈 문장으로 문득문득 떠오른다. 아련하게 펼쳐진 캐나다의 눈덮인 새하얀 풍경이 부부 사이에 점차 사라져가는 시간, 지워지지 않는 상처, 돌이킬 수 없는 기억 속으로 스며든다. <어웨이 프롬 허>는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사랑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품은 질기고 깊은 인연의 이야기이자 그걸 끝내 지키려는 노년의 남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희미해져가는 삶, 사랑의 흔적을 쓸쓸하게 응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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