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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구현 <삼국지: 용의 부활>
이화정 2008-04-02

<삼국지>의 영웅 조자룡, 전투 대신 인생을 논하다

동양인에게는 <반지의 제왕>에 버금갈 매력적인 원작이지만 방대한 분량과 스케일로 미처 손대지 못했던 필독서 <삼국지>가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구현된다. 같은 원작으로 제작 중인 오우삼 감독의 <적벽>에 앞서 먼저 신호탄을 울린 셈이다. <성월동화> <흑협> 등을 연출한 이인항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유덕화, 홍금보, 매기 큐가 주연을 맡았다. <삼국지>의 핵심인물을 다 담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조자룡’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긴장과 압축의 묘를 발휘한다.

유비의 호위대장으로 유명한 조자룡은 단 한번도 싸움에 진 적 없는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삼국지>의 인기 캐릭터. 관우, 장비, 황충, 마초와 함께 오호장군을 지낸 그는 무예뿐만 아니라 충절에서도 따라올 자가 없는 장수 중의 장수다. 영화는 촉나라의 비천한 출신 조자룡(유덕화)이 용맹을 떨친 ‘장판교’ 일화로 말문을 연다. 군대에서 고향선배 나평안(홍금보)을 만난 그는 얼마 뒤 조조의 일만 대군에 맞서 유비의 아들을 구해 유명세를 떨친다. 그 뒤 나가는 전투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삼국통일을 눈앞에 두고, 야심에 가득 찬 조조의 손녀 조영(매기 큐)과 맞닥뜨린다. 조영의 위험한 계략에 걸린 조자룡은 봉명산 성곽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틀거리는 원작과 다를 바 없지만 영화적 재미는 새롭게 첨가된다. 원작에서 조조의 사위였던 조영을 여장부로 설정해 영화적 대결구도를 만들었으며, 조자룡에게 평생 콤플렉스를 느끼며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평안’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켰다. 또 CG 기술력을 총동원한 액션신으로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확인시킨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원작과는 차별점을 둔다. 충의와 배신, 지혜와 음모가 뒤섞인 인간사의 축소판을 전달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는 평생을 장수로 지낸 조자룡이 인생의 마지막에 느끼는 회한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전장의 장수가 아닌 한 인간으로 부각된 조자룡의 내면이야말로 블록버스터영화에서 접하기 힘든 이 영화의 차별점이자 승부수로 읽힌다.

감독, 배우, 스탭 등 언뜻 외피만 보면 중국영화 같지만 이 영화는 한국의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원작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아시아시장을 겨냥해 기획, 각색, 제작을 책임진 맞춤형 글로벌프로젝트다. 총제작비 200억원 중 90%인 180억원을 태원이 담당했으며 한국 업체가 CG를 맡았다. 투자국들의 배우를 양념식으로 끼워넣어 이마에 ‘나 합작영화’라고 써놓던 기존 프로젝트와 달리 각자 장기를 발휘한 진일보한 합작이다. 핵심역할을 한국이 맡은 만큼 해외수출용 프로젝트의 새로운 형태로도 읽힌다. 외형적인 성과에 비해 아쉬움은 있다. 아시아인을 모두 충족시키려는 스케일에 정작 내용적인 디테일은 간과되었다. 두번의 대규모 전투신과 내러이션만으로 조자룡을 이해하는 건 역부족이다. 관객이 미처 캐릭터에 동화되기도 전에 이미 저 혼자 인생을 통달해버린 조자룡은 다시 보기 힘든 유덕화의 명연기로도 쉽게 만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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