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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영원한 몽중인, 왕조현
주성철 2008-05-23

지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개관영화제가 한창 열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영화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상영작 중 내 관심은 왕조현이 나오는 <천녀유혼> 3부작이다. 지난 2번의 연휴를 서울 아닌 곳에서 놀았으니 꼭 가볼 생각이다. 1967년 대만 출신의 왕조현은 짙은 숯검댕 눈썹의 우아한 얼굴, 뽀얀 피부의 롱다리가 돋보이는 청순미의 대명사였다. 게다가 170cm가 넘는 농구선수 출신의 왕조현은 이른바 ‘롱다리’ 여배우의 원조였다. 막연하게 떠올리는 ‘선녀’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배우가 바로 왕조현이었다. 1985년 홍콩으로 건너와 <위슬리전기>(1985)와 <타공황제>(1985)에서 당시 <최가박당>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허관걸의 애인으로 등장한 그녀는 <천녀유혼>(1987)으로 빅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국내에서도 영채신(장국영)과 이루지 못할 사랑에 괴로워하던 ‘요괴’ 섭소천(왕조현)의 우수에 젖은 눈빛은 수십만 학생들의 책받침이 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목욕통신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후 왕조현은 역시 사람이 아닌 귀신, 그러니까 시공을 초월한 몽중인(꿈속의 여인)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천녀유혼>의 인기에 편승해 만들어진 ‘그림 속의 선녀’라는 뜻의 <화중선>(1988)은 오직 왕조현 하나만 건질 수 있는 영화였고(심지어 국내 포스터에는 ‘<천녀유혼> 시리즈2’라고 버젓이 소개됐다), 이후 저승에서 마왕 아들에게 강제로 시집가던 <마화정>(1990), 동굴에 봉인돼 있던 원나라 공주 역의 <무림지존>(1990) 역시 정말 왕조현 하나만 믿고 극장으로 향했던 영화들이다. 에로영화처럼 소개돼 극장을 찾은 수많은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의 분노를 사게 했던 <반금련>(1991)도 자유자재로 시제를 뛰어넘는 영화였다. 다른 영화들도 비슷했다. <천녀영호>(1991)에서는 구미호였고 <청사>(1994)에서는 천년 묵은 백사였다.

사실 왕조현의 존재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최가박당> 이후의 현대영화들 혹은 성룡과 골든 하베스트로 대표되는 쿵후영화의 흐름 속에서 사극은 완전히 잊혀진 장르였다. 그런 사극 쿵후영화들에 출연하던 여배우들 역시도 단발에다 간소한 생활복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서극의 <촉산>(1983)을 기점으로 <천녀유혼>으로 촉발된 여성 캐릭터 의상의 변화는 길게 늘어뜨린 도포 자락과 생머리, 그리고 화려한 색감으로 대표되는 왕조현의 그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쇼 브러더스의 이한상 감독으로 대표되는 우아한 실내극의 무드를 부활시킨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녀유혼>으로 시작해 (당시 왕조현의 실질적인 은퇴작이나 다름없었던) <청사>로 마무리되는 것 같은 당대의 흐름에서 그 주인공은 단연 왕조현이다. 그처럼 왕조현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2006년 ‘살찐 왕조현’ 사진으로 충격받았던 팬들이여, 전혀 실망하지 마시라.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그녀가 다시 영화를 준비 중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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