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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 그의 머리
2001-11-09

편집자

한때 창궐한 벽화그리기 운동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일종의 애교어린 관제운동의 유적일 텐데, 그 그림들을 그려넣기 한 10년 전쯤만 해도 벽화운동은 아주 불온한 행동으로 간주됐다. 그 불령미술 2세대쯤 되는, ‘가는패’라는 이름의 미술패도 시골마을의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주러 찾아가곤 했다. 따라가본 적은 없다. 다녀온 분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았을 뿐. 20대 젊은 ‘화백’들을 초청한 분들은 마을의 농민들이었는데, 고추가 특산물인 고장이라서 그림의 소재도 고추였다. ‘민중 속으로!’를 외치던 시대의 미술정신을 소박단순한 형식에 담아낸 그림이었다. 수성페인트가 벗겨지고 색이 날아가서 수복을 해주러 다시 찾아간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그림을 그려주러 가는 화가들. 시간적 거리를 두고 그려보는 그 화면에 어쩐지 낭만적 정취가 채색된다. 이건 그때의 치열함을 배제해버린 감상인데, 하는 미안함을 밀어내고.

감독은 두드러진 메시지를 배달하지 않았지만(그는 우편배달부가 아니다) 2D 디지털 단편애니메이션 <덤불속의 재>에선, 분단과 핵확산에 관한 비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우산>이나 <덤불속의 재>가 메시지 때문에 놀라웠던 건 절대 아니다. 디즈니나 일본애니메이션에서 맛볼 수 없는 회화적인 아름다움, 한국애니메이션의 색채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반가웠다. 그건, ‘손은 있는데 머리가 없다’고 하청생산에 길든 한국애니메이션의 현실을 비관하던 이들에게 돌연 희망이 선사되던 독립단편애니메이션 개척기의 일이다. 오래지 않은 얘기인데 아주 오래된 일처럼 생각된다. 그뒤 단편애니메이션이 디지털의 힘을 빌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그 희망은 가짜가 아니었다. 이성강 감독은 그 세대로는 처음으로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 동화처럼 부드러운 이미지가 눈을 통해 마음까지 부드럽게 쓰다듬는 <마리이야기>. 제작소식을 때때로 독자들과 나누면서도 기다림이 너무 긴 듯했는데 벌써 녹음 등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한다.

이성강, 그는 한때 자작나무를 탔다. 미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던 가는패의 동인이었다. 그러고보니 이성강 감독에게 벽화를 그리러 함께 갔었느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 주로 경탄스러웠던 것이다. 미술로 세상을 바꾸겠다던 그는, 이제 한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 그렇게 끝맺음을 하면 되겠네요. 요즘 <씨네21>의 편집을 책임지고 있는 후배가 훈수를 둔다. 그리고, 나는 그 훈수를 행복하게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