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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적 해방감 <걸스카우트>
주성철 2008-06-04

네 여자들의 호흡 지수 ★★★★ 이경실의 영화배우 가능성 지수 ★★★★ 김선아의 김삼순스러운 매력 지수 ★★

핸드볼이 아닌 떼인 곗돈으로 똘똘 뭉친 또 다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이라고 할까. <우생순>의 제작자이자 언니 심재명 대표의 MK픽처스에서 그간 만만찮은 커리어를 쌓아가던 심보경 대표가 차린 보경사의 창립 작품이 바로 <걸스카우트>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거기에는 묘한 연대감이 흐른다. <우생순>의 여자들처럼 전혀 메이크업하지 않은 얼굴에다 종종 추리닝 차림으로 등장하는 <걸스카우트>의 그녀들 역시 영화 속 그 어떤 남자 캐릭터들보다 강하고 매력있다. 그들의 남편들은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사별한 상태고 그나마 있는 아들이라곤 늘어난 러닝셔츠 차림으로 늘어져 있다. <우생순>의 여자들이 꼭 금메달을 따야 했던 것처럼 <걸스카우트>의 여자들이 꼭 곗돈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다. <우생순>이나 <걸스카우트>나 가족을 지키고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존재는 바로 그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원 봉고차를 몰면서 살아가는 미경(김선아), 동네마트에서 일하며 백수 아들과 함께 지내는 이만(나문희),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인형 눈 붙이기부터 돈 되는 일은 뭐든지 하는 봉순(이경실), 프로골퍼의 꿈을 접고 제법 빚을 안고 살아가는 은지(고준희)는 한 동네에 사는 여자들이다. 그런데 미용실 원장 성혜란(임지은)이 곗돈을 들고 달아나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혼란에 빠져 있던 그들은 미경의 제안으로 원장의 단골 업소였던 미사리 물안개 카페에 무작정 잠복하기로 한다. 다투고 화해하면서 잠복하던 그들은 드디어 몹쓸 원장을 발견하고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순히 아줌마들 곗돈 정도가 아니라 22억원 상당의 사채를 둘러싸고 좀더 큰 배후세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미덕인지 패착인지 그 평가가 망설여지는 대목은 신파적 요소를 걷어냈다는 점이다. 가령 곗돈으로 수술을 꼭 받아야 하는 봉순의 아들은 물론, 아들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는 미경과 난폭한 아들에게 꼼짝 못하는 이만의 불쌍한 처지는 몇 장면만 더 이어붙여도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낼 만한 사연들이다. 이쯤에서 영화는 한국 아줌마들의 ‘무데뽀’ 정신이 할리우드 강탈영화 장르를 만난 그 유쾌한 지점에 집중한다. <범죄의 재구성>처럼 치밀하진 않더라도 <델마와 루이스> 같은 여성주의적 해방감은 꽤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인상적인 대목은 원장을 잡으려고 미사리를 향해 올림픽대로를 질주하는 가운데 곗돈에 대한 고통은 잊고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까 좋다”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잠복하는 가운데 정말 걸스카우트처럼 캠핑을 하며 봉고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삼겹살을 구워먹는 장면들이다. 광고, 포스터 디자인은 물론 음악과 미술감독으로도 활동하며 ‘충무로의 멀티 플레이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김상만 감독에게 영화감독이라는 자리도 이제 전혀 어색함이 없을 듯.

TIP/감독과 마찬가지로 첫 데뷔를 하게 된 김석주 작가는 바로 네티즌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인터넷만화 <와탕카>의 스토리작가다. 그의 첫 장편 시나리오인 <걸스카우트>가 경기영상위원회의 시나리오 공모전 금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충무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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