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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만화가 최규석
김혜리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8-06-06

만화로 사회를 벗기는 노골리스트

뿔도 없는 사슴이나 그리는 만화가. 어디선가 최규석이 스스로를 일컬은 표현이다.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그의 히트작 <습지생태보고서>(2005)에는 만화과 대학생들의 궁색한 자취방에 뻔뻔하게 얹혀사는 닳고 닳은 사슴 ‘녹용이’가 등장한다. 뿔 없는 사슴만 그린 게 아니다. 최규석의 상업지면 데뷔작인 <공룡 둘리>(2003년 <영점프> 게재. 단편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 수록)는 초록빛 아기공룡을 추레한 국방색 파충류로 만들어 파란을 일으켰다. 성년이 된 서울의 둘리는 벌써 팔자주름이 깊게 패고 프레스에 마법의 손가락까지 잘린 이주노동자다. 또치는 매춘부가 됐고 도우너는 끌려가 해부된다. 친구들은 더 가까운 이익과 다급한 필요 때문에 서로를 저버린다. 현실에서 판타지를 길어내는 능력이 상상력이라면 판타지를 현실의 자갈밭에 기어이 끌어다놓는 이 징한 능력은 뭐라 불러야 할까. 하지만 진저리의 끝에서 독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아는 이 도시에서 둘리와 친구들이 고길동 아저씨네 군식구로 나이 먹었다면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라고. <씨네21> 독자들의 감(感)을 위해 보태자면, 최규석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드러난 현실인식에 동의하며 이창동의 영화를 제일 좋아한다.

데뷔 6년째인 최규석은 오세영, 박흥용, 이희재의 물줄기를 잇는 극화 작가로 꼽힌다. 동세대 만화가 중 발군이라는 평도 간혹 들린다. 2008년 4월 중고생을 위한 6월항쟁 교육만화 <100℃>를 완성한 그는, 오는 6월에 세 번째 단행본 <대한민국 원주민>(창비 펴냄)을 서점에 내놓는다. 2006년 4월부터 1년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대한민국 원주민>은 1977년 경상남도 진양군 명석면 오미리에서 2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작가가 부모형제를 인터뷰해 그린 비망록이다. 가족 인터뷰야말로 인터뷰의 궁극이라고 생각해온 기자로서는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규석 가족의 1980년대는 도시에서 자란 동년배들이 부모의 회고담에서나 들었을 법한 정경과 일화들로 빽빽하다. 진학을 포기하는 일이 당연히 여겨지는 딸, 숨이 간당간당한 사슴 목에 빨대를 꽂아 피를 마시는 어른,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이웃집 안방의 텔레비전이 거기 있다. <대한민국 원주민>은 이미지로 재현되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구석진 시간대에 가족사라는 창을 통해 빛을 던진다. 덤으로 이 만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온 젊은 예술가들의 성장배경과 경험이 그들을 둘러싼 세상에 비해 편중돼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가난한 대학생들의 자취 생활을 그린 <습지생태보고서>, 군대를 다룬 단편 <자살방조>와 <창> 역시 30년 남짓한 인생에서 잘도 이야기를 채굴하는 최규석의 밝은 눈과 여문 손끝을 보여준다.

“누가 고민을 토로하면 그 슬픔이 전해질까봐 무서웠어.” “나도 내 꿈만 바라보며 살기에 벅찬데 왜 다들 나에게만 나타나는 걸까?” <습지생태보고서>의 대사를 빌린 작가의 독백이다. 최규석은 약한 사람과 일탈한 사람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우리의 못된 버릇을 선선히 보아 넘기지 못한다. 동네 바보형의 수난을 그린 단편 <콜라맨>, 군대 비품을 의인화한 우화 <자살방조>가 그 안테나에 딱 걸린 케이스다.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단편집 <아미띠에>에 묶인 최규석의 작품 <가짜 비둘기>에서 서울역 앞 노숙자들의 얼굴은 비둘기의 머리다. 명백히 작가 본인의 캐릭터인 <가짜 비둘기>의 극중 만화가는 서울역 앞 노숙 1박을 결심하고 취재에 나서지만 냉기와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귀가한다. 그처럼 최규석 만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미안하다’로 수렴된다. <대한민국 원주민>의 한 갈피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한 셋째누나의 적금을 헐어 미술학원에 등록한 작가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박탈감보다 그 와중에 수혜를 받은 자의 죄책감이 그의 만화를 이끄는 힘이다. 최규석의 필살기 중 하나는 동물을 의인화하는 한편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 연명하는 인간의 현실을 기회 닿는 대로 상기시키는 것이다. 데뷔 이래 우화적 비판의 만화를 생산해온 최규석은 최근, 죽 맞는 동지인 연상호 감독(애니메이션 <지옥> 연출)과 더불어 홈페이지에‘노골리즘’을 제창(?)했다. 미루어 이해하건대, 사회 모순이 빚어내는 슬픔과 무기력의 정서를 휘뚜루마뚜루 그린들 일생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하나의 문제적 현상이라도 찍어서 선명히 발가벗기는 작품을 내놓겠다는 결의다. 만국의 노골리스트여. 단결까지는 무리라면, 주목하라.

-‘모과’라는 호(號)를 쓰고 있는데요. 뜻이 뭐죠?(최규석 작가의 홈페이지는 www.mokwa.net이다.) =속담에도 있잖아요. 모과나무처럼 배배 꼬인 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에) 어 많이 쓰는 말인데? 모과나무는 꼬여서 목재로 못 쓴대요. 보통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을 보고 기둥이 되어라, 서까래가 되어라 이야기하고 아이들도 “어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테야”라고 다짐하죠. 저는 어디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사는 건 참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도 날 쓸 수 없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좌중 웃음) 그런데 20대 초반 군대 휴가를 나와 보니 인터넷 세상으로 변해 모두들 닉네임을 갖고 있더라고요. 제대하면 홈페이지 만들어 그림을 올려야겠다 싶어서 닉네임으로 삼았어요.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작가인데도 작품을 보면 중장년 같습니다. 가족사를 그린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나 <100℃> 같은 회고적 소재를 자주 다뤄서일까요? =저는 젊은이였던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아요. 동시대에 젊은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내가 합치된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도시 출신 친구들은 공통으로 착착 밟아온 비슷한 단계가 있어요. 이를테면 누구나 어느 시점이 되면 본 책과 영화, 들은 음악이 있죠. 그런데 나한테는 전혀 그런 것이 없었어요. 초등학교부터 애어른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선생님조차 수업시간에 은행 심부름 보냈으니까. (웃음)

-새로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대한민국 원주민>을 보면 동시대의 도시화된 지역과 아주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걸 알 수 있겠더군요. 다른 시대를 산 같은 세대라고 해야 할지, 같은 시대를 산 다른 세대랄지. =대학에 가고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야 그런 거리감을 확실히 느꼈어요. 이른바 386세대와 교류하면서 우리 누나들과 비교가 되더군요. 그분들 데모할 그맘때 딱 누나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친구 아버님들과 얘기가 잘 통해요. 산에서 뜯어먹던 쑥범벅의 추억이라든가. (웃음) 한번은 여자친구가 보리밥 먹으러 가자 그랬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왜 쌀밥 두고 보리밥 먹어! 역사책을 보면 시대 구분이 마디마디 딱딱 나누어지잖아요? 중세 다음 근대, 그 다음 현대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가 비율만 오르내리면서 겹쳐져서 동시에 움직이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원주민>을 하면서 세상의 상식이 모든 구성원에게 고루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21세기를 살고 있으니 자꾸 21세기만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안 돼요. 어렸을 때 미래를 상상한 과학책 보면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자동차 타고 다녔잖아요. 그걸 보고 지금 사람들은 웃지만 사실 요새 자가용 비행기 타는 사람에겐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누군가에겐 옛날 사람이 말한 21세기가 이뤄졌지만 어떤 사람에겐 아닌 거죠.

-우리가 사는 시간대가 균질하지는 않다는 거군요. <대한민국 원주민>은 100% 자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처음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죠. 정작 제 경험은 많지 않지만요. 가만, 그럼 자전이 아닌가? 가족들이 제게 거짓말을 했다면 몰라도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물어 검증된 이야기만 그렸어요. 집에 자주 놀러오던 엄마, 아버지 친구분 이야기도 들었죠. 아버지는 별로 퍼줄 것은 없지만 친구를 잘 만드는 성격이라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경비원을 하는 아파트가 가까워 하굣길에 들르곤 했는데, 주민들이 술 드시는 아버지에게 타박은커녕 안주하라고 찌개를 끓여다줬어요. 돌아보면 예삿일은 아니에요. (웃음) 뭔가 매력이 있으니 우리 엄마도 여태 같이 살았겠죠.

-제목을 직접 지으셨죠? 굳이 ‘원주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낙원구 행복동 생각도 언뜻 스쳤는데요. 아까 말씀하신 균질하지 않은 역사의 시간과도 연관이 될 듯합니다. 오래 묵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랄까. =구상할 때 ‘원주민’이란 말만 또렷이 떠올랐어요. 보통 철거 지역에서 쓰는 단어죠. 원주민은 자신들의 과거나 생활방식이 자연스러운 형태로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아버지만 해도 다니던 길은 모두 수몰됐고 젊은 날의 추억은 어디 가도 볼 수 없죠. 살아 있는 사람이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박물관에 간다는 건… 좀 신기한 일이에요. 촌놈과 원주민은 다른 말이에요. 미국을 예로 들면 아메리카 인디언이 원주민이고 텍사스 사람은 촌놈이고. 하하. 한국에는 촌놈이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이 취재한 가족사에 대한민국이란 제목을 붙여 역사의 한 조각을 재구성한 셈인데요. 이런 기획이 해볼 만하다는 판단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가 옛날이야기를 할 때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80년대 중반에야 도시로 이주한 아버지 같은 사람은 70년대 농촌을 나와 도시 빈민을 형성한 집단에도 속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와 항거한 적도 없기에 역사책에 민중으로도 기재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엄마는 전쟁 때도 정규군은 퇴각할 때 한번밖에 못 봐서 전쟁을 인식하지도 못했대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넌지시 보여주고 싶었어요. 생활사 박물관에 가보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식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아저씨들이 있어요. 아이들은 듣기 싫어하죠. 안쓰러워요. 다시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그 아저씨의 부인도 도시 사람이라면 가족 안에서 절대 소통할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사는 거잖아요.

만화로 생각을 하고 메시지를 전달해요

-최규석 작가의 만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세상이 언제나 바르게 돌아가지는 않으며 때로는 심하게 왜곡돼 있다는 관찰입니다. 언제부터 세상의 허점을 인식했나요? =저는 피부에 직접 와닿지 않으면 생각을 잘 못하는 부류예요. 초등학생 때 친구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폭력이 난무하고 있고 그 폭력이 전혀 논리적이지 않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어요. 1학년 때는 정의의 사도가 돼서 약한 애들 괴롭히는 친구를 불러다놓고 때리기도 했어요. 저는 도덕을 늘 가슴에 품고 쓰레기 보이면 줍는 이상한 애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제게 맞던 친구가 참다 못해 덤벼드는데 싸움이 길어지니 못 이기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맞고 나서야 폭력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걸 안 건가요? (웃음) =아뇨. 맞는 게 아픈 거구나라는 걸 알았죠. 집에서는 맞은 적이 없었거든요. 한번은 존경하는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는데 엄마가 봉투를 마련하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을 뭘로 보냐고 난리를 쳐서 말렸죠. 그런데 합창대회에서 ‘듣보잡’인 애가 지휘자로 뽑혔어요. 학급위원 애들이 그 애 엄마가 한턱 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공부도 운동도 그림도 잘하는 편이니까 집단에서 강자 입장이었는데 중학교 가면서 공부를 하는 습관이 없으니 처지면서 위치가 달라졌어요. 상위계급에 있다가 갑자기 하층민이 되니까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최초로 본 만화가 이상무 선생 작품이고 아다치 미쓰루 작품에 감동받아 만화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화를 파고들어 찾아 읽은 편이었나요? =처음 접한 만화도 도시 아이들이 시골 애들 돕는다고 보내준 만화잡지였어요. 잡지란 것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두꺼운 책인데 그림이 다 다르구나 했죠. 연재라는 형식의 개념도 없었고요. 손에 들어오는 대로 봤죠. 그 점이 제가 처음으로 느낀 도시 출신 아이들과의 차이였어요. 그 애들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찾아다니고 욕망을 해요. 하지만 제겐 그런 욕망이 없었어요. 가난하게 사는 데는 욕구가 없는 것이 도움이 돼요. 저희 가족이 벌이가 없는데도 빚지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없으면 아예 안 쓰는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만화를 하고 싶었나요? 아니면 반대로 만화가 좋아서 만화로 할 이야기를 찾은 경우인가요? =이야기라는 건 머릿속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형태로 떠오르잖아요. 제 경우는 그게 만화예요. 굉장히 짧은 연출의 서너칸이 연결된 형식으로, 이야기의 장면이 그려지죠.

-콘티를 짜나가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때로는 콘티가 그대로 원고가 되는 일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작업방식에 이유가 있었군요. 다시 말해 만화로 생각한다고 치면 되겠네요. =만화에 감동을 받은 거죠. 텔레비전이 집에 없었던 이유도 있을 거예요. 친구네 집 책들을 몽땅 읽었는데 더이상 갈 친구 집이 떨어진 다음부터는 아는 동생들 집으로 범위를 넓혔죠. 그래서 독서가 계통이 없어요. 아동문학전집을 본 다음 다섯살짜리를 위한 디즈니 그림책을 봤다거나 하는 식이죠.

-초기 단편 중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솔잎> <콜라맨>을 보면 거짓에 의해 세상이 지탱되고 있다는사실을 독자에게 각성하도록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노골적입니다. 표현이나 묘사보다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욕구가 두드러져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취향이라는 것이 늦게 형성돼서 그런가? 물론 제 취향에 몰두하고 싶을 때도 있고 전달력을 강화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는 봐도 되고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습지생태보고서>가 제 취향에 제일 충실한 작품이죠. 개그도 치면서 일상을 뒤집어보는 만화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재미있는 이야기니까요. 앞으로는 취향보다 전달에 치중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말인가요? =예. 지금은 전달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6월항쟁을 그린 교육만화 <100℃>는 물론 전달이 목적인 작품이었는데 문제는 전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뭐냐는 거죠. 그냥 뭔가 잘못됐다는 분위기만 전하는 거와 사회의 어떤 문제점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되는가를 전하는 건 달라요. 예를 들어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보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사랑도 하고 액션도 하지만 보고나면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하나는 확실히 보여주잖아요. 제 단편 <사랑은 단백질>도 비슷한 주제를 갖고 있었는데 비유를 하니까, 독자들이 보고 나서 “채식을 해야지” 하고 이해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비유니 은유니 이런 거 다 황이구나 싶었어요. (웃음)

-만화가 전달에 있어서 다른 매체보다 유능하다고 보나요? =제약이 덜하죠. 제작비도 적지만 만화는 아이들이 보는 것이란 인식이 있어서 웬만큼 그려도 상업적인 만화로 포장만 할 수 있다면 태클이 없어요. 드라마에서 검사나 의사를 이상하게 다루면 마구 항의가 들어오는데 말이죠. 일본 만화도 보면 기업운동, NGO운동을 다루는 만화들이 껍데기는 일본 장르 만화 형식을 쓰고 나와요. 리얼리즘이라고 입체적인 주인공이 고뇌하고 작가는 그를 비웃고 이러는 것보다 차라리 통속적 주인공을 내세워 그의 우정,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한 분야가 눈에 딱 보이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쩐의 전쟁>도 그런 예죠. 보통 사회의식 있는 작품은 사람들의 고통을 뭉뚱그려 보여주지만 인물만 입체적이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사실적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주인공은 단순해도 세상은 잘 보이는 만화를 한번쯤 그리고 싶어요.

-제가 접한 대다수 예술가들의 관점과는 반대네요. 대개는 개인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특기라고 믿잖아요? 효과를 기준으로 생각하시네요. (웃음) =이명박 정권의 실용정책에 부응하는 건가요? (웃음) <100℃>를 하면서도 긴 리뷰보다 짧은 리뷰를 많이 받고 중고생들이 변화를 보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긴 리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그 작품 안 봐도 돼요. 원래 자기 안에 있던 얘기를 작품을 빌려 끄집어낼 뿐이죠. 반면 두세 글자로 쓰는 평은 아무리 촌스럽고 단순해도 내 만화를 안 봤으면 못 느껴봤을 감정일 테니까요. 인권영화제 가서 느끼는 갑갑함이 그런 거죠. 작품들은 너무 좋은데 그런 작품 안 봐도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어느 정도 상식이 잡혀 있는 세상이라면 작가가 이런 고민까지 안 해도 되겠죠. <식코>가 한국에서 나왔다면 그렇게까지 반응이 있었을까? 안 될 것 같아요. 노조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 <심슨가족>처럼 노조를 비꼬고 희화화하는 만화를 그리기 힘든 거죠.

-최근 창작의 원칙으로 ‘노골리즘’을 홈페이지에서 주창하셨지요? 지금까지 우화적 사회비판은 할 만큼 했다는 인식에서 나온 아이디어인가요? =할 일이 훨씬 많은데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 거죠. 연상호 감독이 TV인터뷰에서 언급했다고 하더군요. 먹물이 한명 붙어서 선언문도 쓰고 해야 하는데. (웃음)

현실은 김기덕 영화 속 세계와 같다고 생각해요

-출판사 길찾기에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첫 책으로 내셨습니다. 다른 기획으로 접촉해온 출판사쪽에 먼저 단편집 내달라고 요구했다면서요. 당돌한 요구였을 텐데요. =설득한 건 아니고 “그냥 내봐요! 난 책 진짜 안 사는데 나 같으면 이런 책 사겠다!” 그랬죠. (웃음) 정말 대학 다닐 때부터 분명 이런 만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시장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 그 이후 <공룡 둘리>가 떴죠.

-<공룡 둘리>도 그렇지만 작품에서 의인화 기법을 즐겨 쓰십니다. <사랑은 단백질>에는 닭이 치킨집 주인으로 나오고 <자상발조>에서는 의자가 목을 매죠. 저도 평소 치킨집 간판에 닭이 앞치마 두르고 있거나 참치 캔 광고에 다른 ‘먹거리’들이 나와 질투하는 모습에 질겁해온 터라 재미있게 봤습니다. 작가님은 무생물이나 동물을 즐겨 의인화하는 동시에 인간을 어쩔 수 없이 “남의 살 먹고 사는” 포식자, 즉 동물의 한종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단편 <사랑은 단백질>의 치킨가게는 이름도 ‘내다리 치킨’이에요. 길 가다 가끔 ‘장기 대출’이라는 플래카드 보고 놀라곤 해요. “뭐? 장기를 대출해?” (웃음) 현실은 기본적으로 김기덕 영화 속 세계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누구나 쉽게 <나쁜 남자>의 주인공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어요. 이른바 사회의 상식과 문화는 살짝 덮여 있는 한 꺼풀일 뿐이고 인간은 쉽게 그것을 벗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거꾸로 상식과 문화를 지킬 수 있죠. 김기덕 영화에 대한 비난을 보면 짜증도 나요. 아마도 어려서부터 도시에서 자랐을 그 사람들은 단정하고 고운 심성을 인간의 당연한 상태로 여기기 때문에 김기덕의 주인공들을 사람이 아닌 타락한 존재처럼 보잖아요.

-서울역 앞 노숙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둘기떼를 대하는 그것에 비유한 단편 <가짜 비둘기>가 생각나네요. 독자 입장에서는 무크지 <파마헤드>에 실린 단편 <자살방조>가 제일 어려웠어요. 군대 비품인 의자가 실연으로 목을 매고, 자살을 만류하던 말단 군인은 의자의 시신을 별 문제없이 잘 쓴다는 스토리인데요. =군대있을 때 받은 느낌이 모티브였어요. 군대에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딱 그래요. 휴가 나갔다 온 군인들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오기도 하고 집의 걱정을 떠안고 돌아오기도 하는데 군에서는 점호해서 인원수만 맞으면 끝이거든요. 상담도 소용없어요. 바깥 문제를 안에 붙잡아놓고 상담하면 뭐해요. 군대에 있는 동안 사람이 몇번씩이나 죽는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쟤는 이런 면이 이제 죽었구나, 그리고 몇달이 지나면 또 다른 면이 죽은 게 보이고요. 하지만 위에서 볼 땐 잘 돌아가니까 아무 문제없죠. 그 관찰을 한 단계 떨어뜨려 말단 병사와 비품인 의자의 이야기로 풀었어요.

-군대도 배경으로 자주 쓰는데요. 예술가 지망생에게 군대가 끼치는 영향은 뭐라고 보세요? =만화가는 대부분 20대 중반부터 후반 사이가 재능을 폭발시키는 기간인데 그때 딱 갇혀 있는 거죠. 물론 작가로서 한국 남자 대부분의 공통 기억을 갖게 되는 건 좋은 점이겠죠. 문명화된 사회에서 보기 힘든 인간의 바닥을 볼 수 있다는 점도요. 저는 군대에서 내가 그렇게 내 윤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어요. 강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려면 근엄한 표정을 더이상 지을 수 없으니 <습지생태보고서>와 같은 유머감각이 생겼고요. 서글프기도 했어요. 내려다보는 포즈의 맛도 있는 법인데. (웃음)

-<습지생태보고서>에서 인상 깊게 본 에피소드가 몇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성형수술한 여자가, 부모 돈으로 수술한 여자들한테 우월감을 느낀 일화가 하나였고요. 가난한 주인공이 연애할 때 멋진 모습을 한 자아와 초라한 자아가 분열돼서 후자가 전자에게 “오늘 얼마 썼냐”고 추궁하는 에피소드도 감명 깊었습니다. 본인의 분열하는 자아를 항상 관찰하는 편인가요? =예전만큼 예민하지는 않아요. 가령 물건을 사러갈 때나 연애하며 여자와 대화를 할 때 분열하죠. 나도 이 물건 살 만큼 번다고 말하는 나와, 정말 필요하냐고 되묻는 내가 갈라지죠. (파란 새 운동화를 보여주며) 이건 정말 갖고 싶어서 샀어요. 내가 가진 전부를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가장 거기 가까운 상대가 <사랑은 단백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감독 연상호예요.

전 스펙터클을 두려워하나봐요

-<경향신문>에 연재 뒤 단행본으로 5쇄를 찍은 <습지생태보고서>는 스페인어판과 프랑스어판도 출간됐습니다. 유럽에서 최규석 작가의 작품은 그래픽 노블로 분류되나요? =보통 잡지에 연재된 형식의 만화는 그냥 ‘망가’로 나간다고 해요. 그쪽이 친숙하니까요. 일본 만화인지 한국 만화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의 장르로서 대량소비되는 거죠. 제 작품은 출판사의 레이블 자체가 ‘한국’이라는 로고 아래 묶여 있어서 ‘만화’로 소개됐어요. 그나저나 동양 만화는 칸의 소모가 너무 많아요.

-<대한민국 원주민>에서 도시로 전학 간 가난한 소년이 모눈 공책을 아끼느라 글을 다 붙여쓰고, 띄어쓰기는 체크로 표시했다가 혼난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웃음) =하하. 휙휙 넘어가면 독자 입장에서 아깝지 않을까요. 앞엣것 때문에 뒤엣것이 달라 보이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점점 두터워지는 느낌이 있어야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칸을 확 늘린다거나 한 페이지를 털어 그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것도 지면을 꽉꽉 채우려는 마음 때문인가요? =꽉꽉 채우고 싶어서라기보다 변화가 무서운 거죠.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런 스타일이에요. 마쓰모토 다이요(<핑퐁>)도 칸을 절대 밖으로 안 빼고 오토모 가쓰히로도 그렇죠. 이희재 선생님도 대개 지면을 빽빽이 채워넣으시고요. 전 스펙터클을 두려워하나봐요.

-데뷔작 <솔잎>에는 스크린톤을 사용했지만 작품들이 대체로 손으로 그은 연필선의 느낌을 선호하는 스타일입니다. =재료를 잘 못 쓰기도 했지만, 대학 시절에는 만화과 학생으로서 만화하는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안하려는 의도가 컸어요. 동양에서 극화만화를 하면 스타일이 굉장히 한정되거든요. 한명이 그려도 열명이 협업하는 공장에서 나온 대량생산 스타일을 따라해야 하거든요.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드니 실험의 여지도 없죠. 그래서 시원시원하게 빨리 빠지는 동양 극화의 영화적 연출과 유럽 극화의 실험적 연출을 종합하는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결과가 <콜라맨>과 <공룡 둘리에…>죠.

-또 효율성이네요. (웃음) 본인의 그림체가 정착했다고 보세요? 어찌보면 극히 모범적인 데생이라 기발한 표현을 하고 싶을 때 갑갑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머리로 그림을 배운 타입이죠. 이미 대학 때 자학을 했고 초등학교 교과서 삽화 같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어요. 색감도 구리다는 말 많이 들었고요. 대신 장점도 있어요. 스타일리시한 그림은 구린 걸 그려도 폼나는데 전 딱 구려요. 앞으로 점점 능숙한 그림을 그릴 순 있겟지만 스타일을 잡을 거란 생각은 안 해요. 이상도 없고 작품마다 많이 바뀌니까요.

-상업적 약점이고 어떻게 보면 미학적으로도 약점일 수 있는데, 최규석 작가의 만화는 작품의 온도가 애매해요. 비극이라기엔 쓴맛이 강하지 않고 웃기에는 찜찜하거든요. =제가 감정기복이 별로 없어요. 감정이 먼저 터져나오는 게 아니라, 기뻐할 일이라고 판단하고 나서야 기뻐해요. 재수없다는 말도 들었어요. “야 너 상받았댄다”라고 친구가 희소식을 전해주면 “아, 그렇구나…. 얼마지?(상금이)”하거든요. 전체적으로 봐서 이것이 기뻐해야 할 일인지, 심사위원의 성향이며 응모작 수준 등등 변수가 다 눈에 들어와요. 강유원 선생의 강의를 들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연애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사실 스무살까지는 연애도 안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연애는 즐거움 이상의 가치를 구할 근거가 없는 행위인데 내가 즐거움만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니까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죠.

-에세이툰이 인기를 끌면서 극화 만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체감하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다시 사정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과거 만화잡지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포탈에 극화 만화가 워낙 많아서요. 잡지로 데뷔했는데 잡지는 망하고 웹으로 이동이 지체된 세대가 제일 힘들어요. 저도 그 세대 끝자락이고요. 그러나 활동할 영역이 특별히 좁다는 생각은 안 해요. 한국에 태어났는데 주어진 것 안에서 해야죠. 그리고 뭐 만화 없다고 세상이 망하나요?

-히트작 만화를 보면 성공의 원인을 이해하나요? =대충은 알지만 그 작품만큼 괜찮은 작품들도 있는데 왜 이건 되고 저건 안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통속성이라는 공통점은 있죠. 원태연 시인의 시, <광수생각>, 발라드 가요, 강도영 형 만화를 보면, 모두 착한 사람, 착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이 있어요. 싸이월드 사진 밑에 붙어 있는 몇줄의 문구들을 봐도 공통분모가 있어요.

십년째 촉망만 받고 있어요

-한국 진보진영이 선거나 정당 활동에 있어 유머와 위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저는 혼자서 세상이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을 뿐 실제로 그런 정치활동을 누가 하는지는 몰랐어요. 학교 운동권 선배들은 촌스럽고 폭력에 대한 예민함이 없어 보였고요. 싫다는 술을 강권했죠. 좌파도 폭력적인 사람은 싫어요. 존경하는 논객 중에도 “한번 붙을까? 너 정도는 이길 수 있어” 하는 뉘앙스를 깔고 있는 아저씨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과는 견해가 비슷해도 친해지긴 힘들겠죠.

-본인한테는 그런 점이 없을까요? =저한테도 있겠죠. 굉장히 조심해야죠. 인권에 대해서 의식한다는 사람들도 정작 제 자신은 모를 때가 있어요. 무시하면 욕먹는다고 정해져 있는 대상이 있잖아요. 장애인, 여성, 또 어느 자리에서는 누구.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범위 바깥의 사람들한테도 조심하느냐 여부예요. 군대를 소재로 한 단편 <창>의 주제가 그것이었죠.

-2005년 <한겨레>가 선정한 차세대 문화 주자의 한명으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차세대’라는 말을 싫어하신다고요. =십년째 촉망만 받고 있어요. (웃음) 차세대라는 말에 대한 불만은 신인 취급이 싫어서가 아니라 제 위치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에요. 데뷔했을 때 어느 기자가 한국 만화를 부흥시킬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서 강도영 형이 있지 않느냐고 답했더니 놀라는 거예요. 작가 선생님들도 강도영의 그림은 훅 불면 날아갈 듯하다고 비판했죠. 하지만 저는 왜 데생 잘하고 진중한 연출하는 작가한테서 희망을 보는지 모르겠어요. 만화의 흐름을 바꾸는 건 당연히 강도영 같은 작가죠. 한국 만화를 바꾼 사람은 ‘착한 만화’라는 장르를 만든 박광수, 네페이지 개그만화에 불을 지핀 양영순이에요. 저 같은 작가가 없었던 시대가 어디 있어요?

-지난 몇년의 작업에 부끄러움이 있고 올해 초부터는 작가다운 작업을 할 거라고 확신한다고 홈페이지에 쓴 글을 보았습니다. =일단 <100℃>를 단행본으로 내기 위해 6월항쟁에 참여한 인물들의 20년 뒤 다양한 모습을 그리려고 해요. 6월항쟁만 좋게 그리고 끝내면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보잘것없어지는 것 같아요. 20년 전에 민주주의를 성취했는데 왜 지금도 우리는 힘들까, 민주주의가 되건 안 되건 상관없구나, 역시 경제를 살려야 겠구나 라고 느끼게 되잖아요.

-<한겨레21> 연재 당시 담당한 구둘래 기자에 따르면 마감이 늦은 적이 거의 없다더군요.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시는 걸로 알아요. 만화가 하면 떠오르는 은둔형과는 거리가 먼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 같은 자기 관리인가요? 아니면 아름다운 몸을 유지하는 게 즐겁기 때문인가요? =일을 위한 이유도 있죠. 몸에 근육이 있으면 오래 앉아 있어도 통증과 피로감을 덜 느끼니까요. 나머지 반은 자기 만족이죠. 헬스는 10년 했고 지지난해부터 권투로 바꿨어요. 헬스할 때는 달리기를 안 해서 불안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도망칠 수 있어야 하는데…. (웃음)

-자신을 규율하는 일이 쉬운가요? =시간을 규율하기가 어렵지 고통 속에 나를 넣어두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追伸 인터뷰를 준비하며 최규석 작가가 쓴 글도 제법 읽었다. 훈련받은 기자나 작가도 아닌데, 두세 차례 퇴고한 것처럼 단정한 그의 문장을 읽으며 글 써서 밥벌이하는 주제가 면구스러웠다. 낭비를 싫어하는 습성과 자신의 사고를 검산하는 꼬장꼬장한 연산의 뼈대가 보이는 글이었다. <습지생태보고서>를 펴낸 만화전문 출판사 거북이북스 강인선 대표는 만화가 특강 의뢰가 들어오면 최규석을 1순위로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인권만화 단편집 <사이시옷>과 <대한민국 원주민>을 펴낸 창비의 박영신 편집자는 “오탈자와 틀린 띄어쓰기가 거의 없어 편집자 작업을 덜어주는 작가”라고 보탰다. 문장이 좋다는 분명 익숙할 법한 칭찬에 최규석 작가는 멋쩍어했다. 아무래도 만화가에게 글 잘 쓴다는 찬사는, 칼국숫집에서 깍두기 칭찬만 하는 격인가보다. 그나저나 슬쩍 당황해 눈을 치뜨는 품이 영락없는 강백호다. 덩크슛을 꽂기엔 역시 조금 수줍어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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