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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11번의 플래시백이 낳은 포스트모던의 맹아

<살인자들> The Killers, 로버트 시오드막, 1946

1941년 오슨 웰스가 <시민 케인>을 발표한 뒤,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서의 플래시백은 아주 빈번하게 영화제작에 사용된다. 웰스는 모두 6번의 플래시백을 등장시켜, ‘시민 케인’의 ‘진실된’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런데 플래시백이 얼마나 위험한 장치인가 하면, 당시의 관객은 물론이고 현대의 관객도 이야기 구성의 복잡함에 그만 집중력을 잃고 만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중영화에선 시간은 미래를 향해 선형적으로 흘러야 하고, 내레이션의 주체가 안정돼 있어야 하는데, 플래시백을 통해 시간의 방향이 뒤섞이고, 내레이터가 자주 변하면 관객은 혼란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플래시백은 관객과의 소통에는 치명적인 역효과도 낼 수 있다.

11번의 플래시백과 8명의 내레이터

로버트 시오드막의 <살인자들>(1946)에선 무려 11번의 플래시백이 등장한다. 모두 갱스터들에게 살해된 올리(버트 랭커스터)라는 남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친구, 동료, 애인 등 8명의 인물이 번갈아가며 플래시백을, 또는 플래시백 속에서 플래시백을 한다. 그래서 모두 11번의 플래시백이 나온다. <살인자들>의 플래시백을 이용한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시민 케인>의 구조는 차라리 순진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만큼 <살인자들>의 구조는 1940년대에 발표된 작품 중 최고급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독일 표현주의의 후계자인 로버트 시오드막이 독일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체의 분열과 그 분열을 목격하는 장치로서의 플래시백을 탁월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시오드막 특유의 어두운 밤거리와 뒷골목의 공포 속에서 진행된다. 캄캄한 밤에 검정색의 큰 승용차가 달리고 있으며, 여기서 두명의 갱스터가 내린다. 주변을 압도하는 이들의 침묵은 역설적으로 곧 있을 폭력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간단한 식사를 파는 바에 도착한 이들은 오로지 침묵의 폭력적인 분위기로 주인과 손님을 윽박지르며 삽시간에 스크린을 공포 속으로 몰아간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폭력의 역사>(2005)에서 보여준 스낵바에서의 폭력 시퀀스는 <살인자들>의 도입 시퀀스와 무척 닮아 있다.

갱스터들의 목표는 올리라는 과거의 동료를 찾아 죽이는 것이다. 올리는 <폭력의 역사>의 주인공과는 달리 자신의 집에서 그 살인자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단 한번의 저항도 없이 무려 8발의 총알을 맞으며 죽는다. 주인공으로 나온 버트 랭커스터가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정직하고 순박하게 생긴 평범한 청년이 도대체 과거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갱스터들의 표적이 됐을까? 그리고 왜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살인자들의 총알을 그냥 맞았을까? 영화는 이유를 찾아 과거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동원된 장치가 바로 플래시백이다. 8명의 인물이 차례로 등장하여 올리에 대한 사건들을 하나씩 들려준다.

자기 반영적인 플래시백

11번이나 플래시백이 나오지만, 이는 모두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 곧 타인들의 내레이션이다. 올리는 이미 죽었고, 그에겐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없다. 그러니 영화의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의 올리에 관한 보고서 같은 것이다. 권투 선수였던 그가 어떻게 범죄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곳에서 치명적인 여인 키티(에바 가드너)를 만난 뒤, 그녀와의 사랑에 속아 돈도 잃고 사랑도 잃었으며, 최근 시골에서 은신하고 사는 것까지가 모두 서술된다. 여기에 동원된 내레이터가 8명이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 같은 말을 하며 사람들은 올리와의 만남을 들려주는데, 그때마다 관객은 그 내레이터의 입장에서 올리를 바라보게 된다. 알튀세르식으로 말하자면 올리는 8명의 내레이터들에 의해 모두 다르게 호명된다. 우리는 그들이 보는 대로 올리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갱스터의 입장에서, 형사의 입장에서 또 배신한 연인의 입장에서 위치를 바꿔가며 그를 보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타인의 설명으로만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올리는 텅 빈 주체다.

이쯤 되면 최근 토드 헤인즈가 발표하여 큰 반향을 몰고 있는 <아임 낫 데어>(2007)의 밥 딜런을 떠올리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8명의 인물들에 의한 11번의 플래시백을 봤지만, 우리는 올리라는 남자의 정체성에 대해선 합의된 의견을 가질 수 없다. 게다가 8명의 내레이터들을 따라 올리를 관찰하다보니 우리 자신도 단일한 입장에 있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남게 된다. 허구 속의 주인공도,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관객 모두 분열된 주체의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살인자들>은 포스트모던 영화의 맹아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서술의 주체가 다른 11번의 플래시백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

한편 올리 역의 버트 랭커스터는 바로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플래시백 장면 중 올리와 갱스터들이 회사의 임금을 터는 장면은 ‘원 숏 원 시퀀스’로 촬영됐는데, 그 모든 과정이 특정인의 시점이 아니라 신문보도에 따라 재구성됐다. 다시 말해 한편의 플래시백이 영화 속의 영화, 누아르 속의 누아르 형식으로 찍혔다. 플래시백 자체가 영화 매체에 대한 성찰적인 입장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자기 반영적인 플래시백이 나온 점도 <살인자들>의 또 다른 매력이다.

다음엔 이탈리아 마르코 페레리 감독의 <그랜드 뷔페>(La grande abbuffata, 1973)를 통해 음식과 섹스의 관계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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