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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한-미 FTA

많은 사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은 없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대통령의 캐릭터를 분석할 테지만, 좀더 근본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물론 한-미 FTA다. 그런데 중요한 건 “한-미 FTA는 과연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그런 질문에 대해선 입장과 수준을 망라한 수많은 답변들이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 하지만 “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한-미 FTA를 포기할 수가 없는가?”라고 질문해본 적이 있는가? 내 생각엔 이 질문에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진짜 심각한 문제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엔 상징적인 부분도 있다. 이 정부의 핵심인사들은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가 한-미 동맹을 훼손해왔다고 주장해왔다. 한-미 동맹을 훼손한 정부가 추진한 것이 한-미 FTA이니, 그 동맹을 복원하려는 정부가 그것조차 비준시키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 지지층을 속여가며 혹은 다소 과장된 선동을 일삼으며 결집해왔던 그들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서 하루아침에 말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성장률에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그들이 공약한 성장률 7%를 달성할 처지가 아니다. 세계경기도 안 좋을뿐더러 애초에 목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체면치레’라도 하려면 한-미 FTA나 대운하 사업처럼 조금이라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은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답들은 모두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입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제기해야 할 의문은 왜 이 정책이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민주당 의원과 한나라당 의원 대다수가 찬성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냐는 것이다. 간단히 대답하자면 한-미 FTA는 현재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성장’ 대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미 FTA는 사실 수출을 주로 하는 대기업들에만 유리한 협정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경제의 문제는 수출의 둔화가 아니다. 내수를 담당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이 허약하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아무리 돈을 벌어도 체감경기가 좋아지지 않고 고용도 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다. 이런 문제에 어떻게든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한-미 FTA는 바로 그 체질의 불균형을 극대화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대안이다. 그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성장 vs 분배’는 애초에 전자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잘못된 논쟁 구도다.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한국 경제는 자신의 고질적 불균형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성장 방안을 필요로 한다. 지난 대선 문국현의 ‘중소기업론’은 어쩌면 그것을 의도했다. 하지만 충분한 고민없이 대선 결과를 위해 쉽게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져 ‘8% 성장’이란 불가능한 구호로 압축시켜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명박의 대항마인 코미디언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한-미 FTA는 이번에 저지되더라도 다시 돌아올 것이며, 다른 나라들과의 FTA 역시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당위만으로 재단하지 않는, 한국 실정에 어울리면서도 현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알찬 대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