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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가 만난 사람] 배우 문근영
김혜리 사진 손홍주 2008-06-27

아이콘이란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도상을 뜻한다. 자기 아닌 무엇을 상징하는 사람도 그 이름으로 불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길게 보면 아이콘 따위는 되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속 편하다. 물론 아이콘의 발치에는 그가 하지도 않은 일을 찬미하는 꽃이 쌓이고 ‘신탁’을 구하는 이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역시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로 말미암아 제일 먼저 험한 꼴을 당하는 것도 아이콘이다. 클릭해서 원하는 반응이 즉각 나오지 않을 때 유저들은 아이콘을 휴지통에 냅다 버릴 수도 있다. 단, 주지하다시피 아이콘을 버려도 프로그램은 시스템에서 삭제되지 않는다.

1987년생 배우 문근영을 세상에 알린 <가을동화>의 은서와 <장화, 홍련>의 수연은 아이콘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세 번째 영화 <어린 신부>의 보은은 아이콘이 되었다. 영화가 간판을 내리고도 오랫동안 미디어 속 문근영은 보은이로 살아갔다. 급기야 보은이와 근영이가 암묵적 합의 아래 혼동되었다. 온 국민이 가상의 혈연을 맺어야 안심하는 풍습에 의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애칭도 손목에- 리본 매듭으로- 채워졌다. 그러는 동안 소녀는 쉬지 않고 자랐다. <연애소설>과 <장화, 홍련>에서 장롱 속에 자기를 가뒀던 소녀는 더이상 그리 숨을 만큼 작지 않았다. <댄서의 순정>과 <사랑따윈 필요없어>가 문근영의 기존 이미지를 착취한 영화라는 평은 부정확하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반딧불이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영화는 열여덟, 열아홉이라는 문근영의 과도기적 나이를 반영하겠다는 의도를 품긴 했다. 그러나 관습적인 작법과 연출이 그것을 묻어버렸다. 영화가 문근영에게 티켓 파워를 구했다면 배우 문근영은 그 영화들을 빌려 기교를 훈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딱히 반대할 거래는 아니었으나 석연치 않았다. 본인이 최대의 강점이 되는 영화만 내리 찍기엔 그녀는 너무 어리지, 아니 젊지 않은가.

압도적으로 귀여워! 사람들은 판다 앞에서 그러듯 소녀에게 환호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문근영의 인기를 뒷받침한 것은 흠집없는 인생에 대한 보편적 동경이었다. 성실하고 올바른 게다가 어여쁜 소녀는 우리 몸에 나쁜 기운이 생겼을 때 알려주는 동그란 은가락지처럼 애장됐다. 그녀를 향한 매혹 뒤에는 비밀스런 섹슈얼리티 또한 아른거렸다. 영화에서 두번 초경을 치른 문근영은 소녀인 채로 진지한 ‘짝짓기’를 했다. 그러기 위해 집안 어른에 의한 강제결혼, 옌볜에서 온 연고없는 소녀, 가짜 오누이 같은 설정이 지렛대가 됐다. 문근영의 짝들은 대개 세상에 닳고 지친 유들유들한 사내들이었다. <어린 신부>의 껄렁한 대학생(김래원), <댄서의 순정>의 산전수전 겪은 댄서(박건형),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호스트(김주혁)는 세파의 오염으로부터 그녀를 지키는 역할이 허락됐을 뿐 성적 접촉은 제어되거나 편집실에서 삭제됐다. 그녀의 인기는 유아기로 퇴행하고 싶은 한국사회의 열망을 드러내는 징후라는 해석이 제출되기도 했다. 도덕적 고결함과 성애가 거세된 로맨스. 무리한 두개의 코드는 이내 걸림돌로 둔갑했다. 수시전형 대학 합격을 둘러싼 입방아는 그녀의 희망사항을 ‘대국민 공약’으로 받아들인 결과라 봐야 할 것이다. 한편 성년 문턱을 넘은 문근영이 관능적인 춤을 보인 뮤직비디오는 화들짝 반감을 불렀다. 만 스무살이 된 2007년을 문근영은 영화도 드라마도 찍지 않고 보냈다.

여기까지가 문근영의 과거다. 그녀의 현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터로 돌아온 스물한살의 문근영에 대해서는 단출한 문장들로 쓰고 싶었다. 문근영은 자산이 풍부한 배우다. 감수성의 토양이 비옥하고 연기를 향한 목적의식과 긍지가 강하다. 외모가 비견되는 배우 고현정과도 일치하는 면모다. 문근영은 눈물이 찰랑이는 작은 유리잔 같은 배우다. 조금만 기울여도 주르륵 흘러내린다. <장화, 홍련>까지 문근영의 강점은 타고난 품성과 직관이었지만 갈수록 장면마다 꼭 맞게 궁리한 장르적 연기를 즐기는 모범적인 구석이 있다. 그녀와 CF를 찍은 수요일 감독은 몇해 전 문근영을 “성실하고 순수한데 끼가 엄청나다. 서너 시간이면 촬영을 마칠 수 있을 만큼 유능하다”고 평했다. 문근영이 촬영 중인 새 작품은 9월 방영되는 SBS 사극 <바람의 화원>이다. 캐스팅의 곡절은 알지 못하나 원작자가 신윤복의 외양을 묘사한 문장 가운데 “깊은 눈을 가졌다”고 쓴 대목에 이르자 순연히 납득이 됐다. 약속한 정각에 문근영이 나타났다. 은연중에 민낯을 기다렸던 내 자신을 급히 책망했다. 살짝 벅차 보이는 색조 화장을 한 그 설레는 얼굴이야말로 스물한살 여자의 진짜 맨 얼굴이었다. 눈물은 많지만 용감하고 독한 여배우가 그새 훌쩍 자란 곧은 다리를 움직여 다가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근영씨가 들어설 때 느끼는 공기의 변화가 있나요? =밝아지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이 모인 어떤 자리냐에 따라 다르죠. 함께 일하는 스탭들은 제가 도착하면 활기가 생겨요. 아무래도 제가 힘차게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보통은 사람들 모인 곳에 가면 얌전히 있는 편이에요.

-가만히 있어도 자신에게 주의가 집중되기 때문 아닐까요? 예전 토크쇼에 출연한 걸 봤는데, 누가 발언을 하더라도 반응숏은 꼭 근영씨 얼굴을 잡더라고요. =아, <장화, 홍련> 찍을 때 김지운 감독님이 “넌 연기할 때보다 상대방 대사에 반응하는 숏이 더 좋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닐까요?

-2003년의 <장화, 홍련> 이후 거의 해마다 한편씩 영화를 찍고 활동했는데 2007년은 일을 쉬었습니다. 어땠나요? =제겐 두 가지 일이 있어요. 연기를 안 하면 공부를 해야 하고, 공부를 쉬니까 일을 해야 하는 식이죠. 그래서 지난해도 쉬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아요. 연기를 쉬면 그만큼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요. 평범한 대학생들 보면 땡땡이도 치고 과제도 안 내고 시험 낙제점을 받기도 하는데 제겐 그것이 허용되지 않아요.

-왜요? 넌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그런 건 없지만…. 남들은 한번 실수가 그냥 덮이거나 묻어갈 수 있는데 전 한번의 실수조차 용납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어쩌다 학교를 한번 빠지면 문근영은 학교 자주 빠진다고 믿어버리고, 과제를 못 내면 “쟤는 항상 과제를 안 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왜 공부를 하지 않으면 꼭 일을 해야 하죠? 그냥 노는 시간이 있으면 안 되나요? =(웃음) 그래서 어서 졸업하고 노는 시간을 가지려고요. 올해는 일 때문에 휴학했지만 내년에는 복학해야 할 것 같아요. 학교 규정상 2학기 연속 휴학만 허락되거든요. 파릇파릇한 친구들과 다시 공부해야 하는데, 완전 복학생 같겠죠! (웃음)

야생생활이 제 감수성을 키워준 것 같아요

-맞벌이 가정의 맏딸로 자랐습니다. 외할머니가 부모님이 일하는 동안 돌봐주셨다고 들었어요. 연기에 재미를 붙이기 전엔 무엇을 하며 놀았나요? =만날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고 남자애들과 축구도 했어요. 동네 대장부, 아니 골목대장이었죠. (웃음) 혼자서도 잘 놀았어요. 할머니가 음식점에서 열리는 계모임에라도 나가시면 할머니들끼리 식사하고 돈벌이하시는 동안 다른 집 애들은 보채는데 저는 혼자 행주질도 하고 식당 청소하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대요. 가상의 친구도 만들었어요. 이름은 당시 마론인형 이름을 따서 미미, 주주, 뭐 그런 걸로 붙였죠. 할머니랑 지내다보니 밤 9시부터 잠자리에 누웠지만 세상 어떤 아기가 곧장 잠이 들겠어요? “오늘은 뭐했어요?” 묻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죠. 그게 습관이 돼 자라서도 “나 오늘 뭐했지?” 돌이켜보고 특별했던 일과 감정을 생각하다 잠들어요.

-부모님이 가르침을 많이 주신 편이죠? =아버지대부터 형제 많은 대가족 집안이라 예의범절을 엄하게 배웠어요. 반찬투정이나 음식을 뒤적이는 건 절대 안 되고 밥과 국의 위치는 어디라는 식탁 예절, 전화 받는 예법 등등 많이 혼나며 배웠죠. 평일 낮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주말은 무조건 엄마 아빠와 같이 놀았는데 두분 말씀에 따르면 출근할 때는 울지 않고 순순히 보내주는 대신 “내가 이렇게 보내줬으니 주말에는 놀아줘야 해” 하는 심보를 가졌대요. (좌중 웃음) 보상하라는 거죠.

-집에서 가족에게 배운 것과 학교에서 배운 것이 충돌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학교와 부모님의 가르침이 상충된 것보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 부모님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걸 먼저 깨달은 것 같아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랄까요. 엄마 아빠는 항상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고 네가 손해를 보라고 가르치셨는데, 일을 하면서 든 생각은 마냥 착하게 군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 현명한 사람이 되자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장화, 홍련> 촬영 무렵 “전 엉뚱한 아이라서 말로 설명 못하는 게 많아요”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지금 와선 그 말이 우습고 창피해요. 모든 사람은 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특별해요. 그런데 어린 나는 내가 좀더 특별한 사람이길 바랐나봐요. 그래서 나는 엉뚱하다 믿고 그렇게 행동하려 했고요. 지금도 ‘4차원 연예인’ 많잖아요. 그분들 보면 모든 사람에게 4차원 성향이 있지만 처한 환경에 맞춰 절제하고 드러내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해요.

-힘들 때마다 읽는다는 동화책이 있었어요. 지금도 읽습니까? =이사하며 잃어버렸어요. 제목도 생각이 안 나요. 달이 나오는 이야기였다는 것밖에는.

-그럼 요즘은 힘들 때마다 기대는 대상이 없나요? =하늘의 달님, 달요. 그 책도 달이 나와서 좋아한 거예요. 어렸을 때 엄마를 정말 좋아했는데 엄마가 달을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도 좋아하고 엄마가 가는 데는 전부 따라가고 엄마한테 좋은 딸이 되고 싶었어요. 주말마다 시골집에 가서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 보니 달을 볼 기회도 많았죠. 왜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자기랑 연결고리를 찾잖아요? 그래서 찾은 것이… 제 성이, 문이잖아요. (좌중 경악) 그래서 우린 필연적이야, 떼놓을 수 없다고 믿어버렸죠. 또, 시조를 좋아했는데 거기서 표현하려는 대상의 대체물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달, 구름, 바람, 물이에요. 달 나오는 시조부터 먼저 읽었어요. (웃음) 달 보며 소원을 빌고 안식을 구하다보니 한때 “나는 종교가 월교(月敎)인가보다” 한 적도 있었다니까요? 참, 자랑해야지. 지난 생일에 팬 카페에서 플래네타리움을 선물해주셨어요. 천장에 달과 별자리가 뜨게 해주는 장치인데, 무척 행복해요. 달을 보며 잠들 수 있어요. 서울은 달이 잘 안 보이거든요.

-보통 연예인들은 일단 데뷔하면 서울을 근거지로 생활하지만 근영씨는 대학 진학 전까지 서울과 광주의 집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 사실에서 비롯된 다른 연예인들과의 차이가 있었나요? =서울 출신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내가 경험한 걸 모르는 게 무척 많아요. 왜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서울 친구들이 더 많은 것을 접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산과 들에서 뭘 먹고 보고 느낄 수 있는지를 모르더라고요. 아카시아랑 찔레꽃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산딸기 따먹는 것, 피라미랑 다슬기 잡는 법, 뭐 그런 야생생활? (좌중 폭소) 그게 감수성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수렵과 채집에 강하군요. (웃음) 약간 우월감이 들었겠습니다. =우월감이 아니라 좋은 걸 애들이 몰라서 안타까웠죠. 저는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일하는 생활과 학생의 생활이 확실히 구분돼 무척 좋았어요. 일이 학교에 영향을 주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또래 연예활동한 친구들보다 자유롭게 더 많은 추억을 만든 편이에요. 덕분에 몸은 고됐지만 당시에는 둘 다 내가 원하는 일이고 매일 새로웠기에 재미있었어요. 밖에 나가면 학교에서 경험 못하는 일을 했고, 교실로 돌아오면 친구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어요.

-긍정적이네요. 거꾸로 서울에 오면 어른들의 세계에서 외톨이고, 학교 가면 내 세계를 친구들은 모르니까 외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으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당황한다) 나는 두 가지를 다 알아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서 말투나 생각에 영향을 받은 점도 있죠? =남들 모르는 민간요법이나 사주 보는 법을 알기도 하고, 남들은 밤 드라마 이야기하는데 아침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침 6시에 눈떠서 할머니랑 밥먹으니 아침 드라마는 다 꿰고 있어요.

-타인을 돕는 행동도 가족의 영향이 클 텐데요. 구체적으로 기부금이 누구를 돕고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도울 때랑 그렇지 않을 때 차이가 있나요? =확실히요. 피드백에 차이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내게 고마워한다는 실감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뭔가 좋은 일을 했구나, 계속 더 하고 싶고 행복해져요. 반면 부담스러운 점도 있죠. 음, 조금 힘드신 분들이 다 제게 도움을 청하니까요.

-난처하겠군요. 누구를 우선적으로 돕는다는 기준이 있겠네요. =그래서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면 일단 어린아이들이 먼저예요. 아프고 어려운 아이들. 덕분에 저도 더 열심히 살게 돼요. 한번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지난해에 제 도움으로 수술받고 회복한 ‘사랑의 열매’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읽는 순간 ‘아, 나 진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다른 이유는 없고 제가 느낀 행복감이 너무 커서요.

뭐든 세번을 참는 습관이 몸에 뱄어요

-TV드라마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개>가 데뷔작인가요? =맨 처음은 <TV는 사랑을 싣고> 재연 엑스트라였어요. 항상 대사도 없이 웃고만 있었죠. 그러다 주인공도 했고요. 녹화한 테이프가 없어졌을 거예요. 우리(가족)가 그런 것에 되게 무덤덤해요. 다른 배우 엄마들은 하나하나 스크랩하던데 할머니, 엄마, 아빠는 신경도 안 써요. (웃음) 저 역시 필요한지 모르겠고요. <누룽지 선생과…>에 앞서 최재은 감독님의 <길 위에서>라는 평화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판문점에서 시를 낭독하는 소녀로 출연했어요. 오디션에서 감독님이 제가 마음에 드는데 키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망설이셨대요. 두 번째 미팅에서 제가 당돌하게 그랬대요. 요즘은 카메라 기술이 좋아 큰 키도 작게 찍을 수 있다고. (좌중 웃음)

-열세살 때죠? 꼭 역할을 따고 싶었나봐요. 어른들과 일하다보니 살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잠자코 듣고 있는 상황을 자주 겪었을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경청하려는 건 아닌데 우선 듣고 이해하려는 습관이 몸에 뱄어요.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가르쳐주신 교훈이 “뭐든 세번은 참아라. 화가 나도 세번은 참고 누가 실수를 해도 세번의 기회는 줘라”예요. 그래서 남 말을 우선 듣고,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세번 생각이 들면 입을 열어요. 그런데요. 일을 하다보니 사람들은 내가 굳이 세번을 참지 않길 바라더라고요? (좌중 폭소)

-하긴 일하다 세번이나 참고 컨셉을 바꾸자고 하면 너무 늦겠죠. 근영씨는 손이 참 크고 듬직해요. 연기를 하다보면 표현력이 좋다고 느끼는 신체 부위가 있나요? =손가락은 길지 않은데 바닥이 넓어요. 그래서 주먹을 쥐면 다들 “한 싸움 했겠다” 하죠. 하하. 엄마 손이랑 똑같아서 엄마는 사진 찍을 때 손 올리지 말라고 하세요. 표현력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눈썹과 눈이 많이 움직여요. 진지한 연기를 할 때도 과장돼 보이는 것 같아 콤플렉스였어요.

-<어린 신부>가 예상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둔 이후 한꺼번에 광고도 많이 찍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의 걱정은 없었습니까? =역시 무덤덤하셨어요. 잘했다고 칭찬하고 떠받쳐주는 스타일이 아니세요. 주변이 담담하니 저는 뭐가 달라졌는지 몰랐죠. 광주 분들도 늘 보던 학생이니 별다르지 않게 대해주셨고요. 일하러 가면 “왜들 이러는 거지?” 의아했죠. 하나 기억나는 건 <어린 신부> 기자 시사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하신 말씀이에요. “기자들 앞에서 사진 찍는 네 모습을 보니 내 딸이 내 활시위를 이미 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어요. 몰랐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울컥 눈물이 났어요.

-<어린 신부> 이후 인터뷰에서 종종 ‘나의 상품화’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일상적인 표현은 아닌데 그 말이 언제 어떤 계기로 머릿속에 들어왔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다르다고 느꼈을 때요. 쉽게 말해서 나는 방금 어린 신부 보은이를 연기한 사람이고, 내일이면 또 학교를 가야 하는 사람이고, “모레는 촬영이 있다네, 또 재미있게 촬영해야지” 하며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늘 영화 찍고 내일은 학교를 가는 사람 문근영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하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러니까 이미지나 상품인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전 광고를 찍을 때도 “내가 제품을 파는구나”라는 생각보다 “오늘 촬영 있으니 가서 연기할 수 있겠다” 생각했거든요. 광고는 하나의 대사를 말하는 데 틀이 없어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어요. “아, 맛있다!”를 수십 가지로 말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찍었는데 어느 날 TV에서 내가 나온 광고를 보는데 뭔가 아주 이질감이 들었어요. 연기를 할 때 내 느낌과 달라 보였어요.

-<어린 신부>의 시사를 보며 연기가 부끄러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어서 영화 간판이 내렸으면 바랐다고요. 왜 부끄러웠나요? 뭔가 흉내내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나요? 아니면 그 ‘흉내’를 좀더 세련되게 내지 못해서였나요? =후자요. 사람들은 <어린 신부>의 내 모습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아서 반한 거지만, 그 영화를 찍는 동안 제가 깨달은 것은 달랐거든요. 슬픈 장면이니까 눈물을 흘리고, 웃긴 장면이니까 최대한 웃기는 게 답이 아닌 것 같다, 처음으로 작품 전체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아, 이래서 배우들이 고민을 하는 거구나 조금씩 알아갔는데 그런 뒤에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정말, 야생인 거야! 내 연기는. (일동 폭소)

-<어린 신부>로 대종상 여자 신인연기상도 받았잖아요? =받기가 싫었다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지만, 정말 민망하고 창피했어요.

그냥 조용히 영화에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댄서의 순정>이 문근영씨의 영화 중 가장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연기 이력에서 전환점이 된 작품 같습니다. 몸도 많이 성장했고 계산된 움직임의 연기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댄서의 순정>은 <어린 신부>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연기를 극복하고 싶어서 전체를 연구해보자고 들어간 작품이었어요. 그때 제 대본이 메모로 정말 지저분했어요. 하지만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다시 놓아버렸죠. 나오지도 않는 감정을 머리로만 생각하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머리와 마음, 내 실력이 모두 따로 놀아서 괴로웠던 거죠.

-<댄서의 순정>을 통해 춤을 실제로 즐기게 된 걸로 알아요. 몸을 뜻대로 움직이는 쾌감 때문인가요, 혹은 누군가가 자기를 잡아주고 맞춰주는 손 느낌이 좋아서인가요? =음악의 정서를 느끼는 게 좋았어요. 음악을 귀로만 들어도 느끼는 건 같지만 춤은 나아가 그 정서를 표출하잖아요. 요즘 욕심나는 건 느린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빠르고 파워풀한 춤만 배워 제겐 한계가 있어요. 발레도 배우고 싶고 내 몸을 좀더 자유롭게 쓰고 싶어요.

-만약 연극영화과를 갔다면 수업 시간에 기본적으로 발성과 동작을 배웠겠지만 인문계라 학교에서 충족시킬 수 없을 텐데 따로 교습을 받기도 합니까? =연영과 과목을 다 배우려는 건 아니지만 연기를 하다 부족함을 느낀 부분에 대해서는 선생님을 수소문해 배우기도 해요. 취미삼아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고 한때는 노래와 발성도 배웠어요. 문제는 꾸준함 같아요. 운동선수들이 자기 종목을 하기 위해 아침마다 30분씩 러닝하듯이 배우들도 아침마다 10분씩이라도 발성 연습을 해야 하는지도 몰라요.

-애니콜 광고와 KTF 광고 속 춤추는 모습을 보고, <댄서의 순정> 이후 공개적으로 춤을 출 수 있어 내심 신나겠구나 짐작했어요. 근데 KTF ‘디자인’ CF는 여파도 좀 있었죠? =춤을 출 수 있어 반갑긴 했는데 힙합풍 애니콜 광고는 촬영장에 가자마자 ‘문워크’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몸이 마음을 안 따라서 차 안에 숨어 울었어요. 그리고 독기가 났는지 그날 밤 멀쩡히 촬영을 했죠. ‘디자인’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도 ‘간단한 율동’이라고 듣고 갔는데, 뮤지컬 배우들이 고난도의 점프턴을 하고 있는 거예요. (웃음) 그 광고에 대한 반응이 재미있었어요. 안 좋게 보는 분들이 대다수였는데 “문근영은 이런 모습이 아니야”라는 반응에 저는 ‘여러분이 콩깍지가 씌워 잘 못 보고 있는 거예요. 이게 나예요’라고 속으로 답했죠. 그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제 모습이 섹시해 보였거든요. 그전까지 섹시한 연기가 어색했는데. 지금이라면 제대로 봐주지 않을까요?

-<댄서의 순정>에서는 춤과 옌볜말,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는 시각장애인 연기를 보여주었고 오는 9월 방영될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신윤복 역으로 남장을 합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연기자로서 테크닉을 훈련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건가요? =훈련까지는 아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내 연기와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가 선택의 중요 변수예요. <바람의 화원>은 일단 남자를 연기하니 목소리와 몸을 쓰는 폭이 넓어질 것 같고 TV드라마 연기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도 배우고 시대극도 공부할 기회죠. 우와 배울 게 무척 많네요!

-<사랑따윈 필요없어>의 시각장애인 민이를 연기하는 동안 무엇을 보고 있다고 상상했나요? =처음에는 한 사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다른 것을 보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머릿속의 생각을 보고 있었다는 게 맞아요. 저절로 청각이 곤두서는 것도 느꼈고요. 근데 그게 남들이 보면 그냥 멍 때리는 거잖아요. (웃음)

-시기에 따라 제의받는 시나리오 편수가 다르겠지만, 대개 소속사에서 범위를 좁히고 가족과 의논해 최종 선택하는 걸로 압니다. 지금까지 가장 이견이 컸던 경우는 뭐죠? =<어린 신부>요. 회사는 마음에 들어했고 저는 싫다고 했어요. <장화, 홍련>의 수연이가 아직 내게서 안 떠나서 이렇게 성격이 확연히 다른 역은 못 하겠다고요. 회사는 제게서 어두운 이미지를 걷어내고 싶었나봐요. 상상 못하시겠지만 예전에는 모두 저를 어둡고 슬픈 이미지로 봤어요. 광고 오디션에 가도 “이 아이는 너무 슬퍼 보여 안 되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죠.

-회사에서 1차적으로 배제한 시나리오가 궁금한 적은 없어요? =많아요. 그래서 언젠가 한번 화를 냈어요. 왜 임의로 다섯편만 골라 보여주냐 다 보여달라, 왜 완고 나온 시나리오만 주냐 나도 대본 보는 눈을 길러야 하지 않겠냐. 그랬더니 회사에서 잔뜩 보내줬는데, 내가 못 읽겠더라고요. (일동 폭소) 내게 들어온 시나리오는 물론 다른 시나리오까지 다 갖다줬는데,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심보였던 듯? (웃음) 하루에 7권씩 주니 처음엔 열심히 읽고 비평도 하다가 나중에는 힘들어서 못 읽겠더라고요.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본인의 의지와 별개로 문근영씨는 배우로서 존재 자체가 주류적이고 장르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비주류영화, 예술영화는 모호한 감정을 던져놓고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근영씨는 생각을 멈추고 그냥 혹하게 만드는 부류의 배우거든요. 강력하게 동화시키는 거죠. 물론 배우로서 큰 축복이지만. 예산문제를 떠나 비주류적 영화가 근영씨에게 손내밀기 힘든 이유에는 그런 면도 있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린 신부> 이후 품었던 의문이 있어요. 오해될까봐 걱정되는 말이긴 한데,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왜 다 찍고 나면 문근영의 영화가 되는 걸까 이상했어요. 마케팅도 문근영을 가지고 뭔가 만들려는 때가 많은데 그것도 싫고, 편집된 영화를 봤을 때도 나에 대한 인상을 사람들이 제일 강하게 받는 이유가 뭘까. 대체 뭐가 문제일까 고민했어요. 제가 부족해서겠죠. 그냥 조용히 영화에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소품이 돼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내가 작품을 해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유리가면>이라는 만화책을 보면 주인공 마야가 ‘무대광풍’이라는 별명이 있잖아요. 무대에 올라가면 역의 비중을 불문하고 시선을 끄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인형 역도 하고 그러죠.

-연극 무대도 고려해봤나요? =대학로 연극도 생각해봤어요. 경험하기 전에 섣불리 판단하긴 이르지만, 옆에서 본 연극 무대 출신 배우들을 보면 연기는 주류적 성격이 강한 것 같아요. 객석에 항상 확실히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연기랑 다르더라고요. 내게 그런 것이 필요할까? 제가 만약 연극을 한다면, 연극계 자체가 비주류적이라 주류적 느낌이 덜한 작품을 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지, 제 연기가 바뀔 거라는 생각 때문은 아닐 거예요.

‘프로이트와 현대문학’ 진짜 재미났어요

-대학 입학 초기에 수시전형을 통해 합격한 사실을 둘러싼 구설수 때문에 강의실 가기도 힘들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편해진 계기가 있을 텐데요. =강의실에 앉아 있기 힘들다는 건 저 혼자 만들어낸 생각이었어요. 오히려 학교 친구들은 “올 수 있으니까 왔겠지” 여겼고 내가 만날 학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어요. 물론 괴로웠던 시간은 있죠. 고3 때 애초 편하게 공부해서 편하게 진학하려는 뜻이 없었고 꼭 국문과를 가겠다는 욕심이 있었기에 친구들보다 부족한 시간을 벌충하려고 죽도록 노력했는데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넌 잘못했어”라고 잘라 말하니, 그동안 내가 노력한 건 뭘까, 더이상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아무런 열정없이 일년을 보냈죠. 요즘은 어차피 내 인생이니 책임져줄 거 아니면 말라는 말도 하곤 해요. 누구 조언을 듣고 행동하든 책임은 내가 다 지더라고요. 이왕 그렇다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요.

-대학 입학 전에 교양과목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신청 잘했다고 자평하는 수업이 있습니까? =‘동양사상입문’ 좋았어요. 사상가 중 공자를 막연히 절대선을 이야기한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크게 실망해서 교수님께 대들기도 했어요. 그도 결국 자기 주관에 의한 선을 말한 것뿐이더라고요. ‘인문 고전 읽기’에서는 플라톤의 <대화>를 읽었는데 그 어려운 책을 완독했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웠죠. 이제 어디 가서 얘기할 수 있잖아요? (웃음) 수업 내용과 커리큘럼에 만족한 과목은 ‘프로이트와 현대문학’! 진짜 재미났어요.

-소주를 상당히 맛있게 먹는다는 설이 있어요. =흐흐… 한때였던 것 같아요. 엄마가 너 지금 이렇게 술 먹고 싶어하고 술자리 좋아하는 것 괜한 반항심이라고 속상해서 말씀하시곤 했어요. 스무살 때까지 못해본 것 한꺼번에 하려는 충동이고, 사람들이 너를 착한 애로만 보는 데에 대한 반발이라고요. 그럼 저는 “아냐 난 정말 술이 너무 좋아. 맛있어”라고 펄쩍 뛰었는데 지나보니 엄마 말이 맞아요. 맛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모든 술은 딱 한두잔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한창 잘 마실 때는 안 그랬거든요. 그 사이 늙었나? (갸우뚱)

-근영씨가 술을 하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할 것 같아요. =술 따라주면서 신기해하죠. 처음에는 응원해주는데 나중엔 힘들어하더라고요. (좌중 폭소) 제가 워낙 짠짠 건배하고 잔 비우는 것을 좋아하니까.

-살아오면서 누구를 증오해본 적 있어요? =음, 제 자신이요. 내가 상처받기 싫다는 방어 심리의 연장으로 나쁜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책임을 물을 때가 있어요. 의식이 늘 내 자신을 향해 있달까, 설명하기 힘든데요. 무척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거예요. 남들은 배려심이 많다지만 실은 내가 이 사람한테 상처를 주면 그 상처가 내게 되돌아올까봐 혹은 남을 상처준 사실 자체가 상처가 될까봐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거예요. 결국 누굴 죽도록 미워할 상황이라도 하루 이틀 그러다 그 사람 행동을 납득하고 내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요.

-반대로 누군가를 지독히 좋아한 적도 없는 게 아닐까요. 예전에 사랑이 커지려고 하면 막는다는 말을 어느 인터뷰에서 했어요. 요령이 뭐예요? =피드백이 안 생기게 하면 돼요.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 그가 알고 그가 나를 좋아하는 걸 내가 알면 감정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진짜 최고는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그가 전혀 모르는 거예요. 네, 초기 진압. (웃음) 이젠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상대가 없어요! 사실 이번에 <바람의 화원> 기대했거든요. 드라마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꿈꿨는데 그중에는 은근 사랑도 꿈꿨겠죠? (웃음) 그런데 여전히, 남자배우들 나이가 너무 많아요! (소리 높여) 사무실 농간이 아닐까도 생각해요. 자꾸 이렇게 갈수록 상대역 나이가 많아질 순 없다고요! (좌중 폭소) 더군다나 극중 윤복의 형 영복은 <명성황후> 때 고종 역을 했던 이준 오빠고 윤복을 괴롭히는 도화서 화원 강효원은 <어린 신부>의 야구부 주장 박진우 오빠라니까요.

-<바람의 화원> 원작 소설을 보면 도판이 많아요. 어떤 그림이 제일 끌리던가요? =아무래도 <미인도>요. 책 내용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요? 사연이 있어 보여서요.

-신윤복 캐릭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신윤복은 남장여자로 보면 안 돼요. ‘남자로서 살아온 이 애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여’ 생각하며 작품에 들어갔어요. 남장여자가 등장하는 영화는 힐러리 스왱크가 주연한 <소년은 울지 않는다> 딱 한편 봤네요. 우연히 채널 돌리다가요.

-흔히 여배우들이 남장을 하면, 차림새만 남자처럼 보이는 예도 있죠. 공개된 스틸 한장을 보니 근영씨는 상당히 정직한 남장을 했던데요. =어쩔 수 없이 여자처럼 보이는 장면을 제외하면 신윤복은 남장여자 같은 느낌조차 절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윤복이는 잠깐 남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원작 <바람의 화원>에는 윤복을 중심으로 세 갈래 감정 흐름이 있어요. 기생 정향과 윤복의 관계, 김홍도와 윤복의 관계, 그리고 형 영복과 윤복의 관계죠. 남-남이건 여-여건 이성애를 초월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텐데요. =영복과 윤복의 관계는 조금 미묘하지만, 윤복과 남자들 사이의 감정은 대체로 무난히 이해했어요. 그런데 여자인 정향과의 관계가 어렵더라고요. 윤복쪽에서 능동적으로 감정을 품는 거니까요. 이해를 넘어 제가 시청자를 잘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고민 중이에요.

내가 믿고 싶은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야죠

-<GQ>와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연기란 진실돼야 하지만 동시에 거짓투성이다. 연기를 보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흡수해야 하지만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연기다”라고요. 좀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 =두 가지 별개 이야기인데요. 먼저 연기란 진실과 거짓의 조합이에요. 연기 자체는 근본적으로 진실일 수 없어요.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캐릭터의 감정을 연기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나는 그가 아니죠. 그러나 연기하는 동안 배우에게 인물의 진실은 진실이어야 해요. 두 번째는 연기와 자연스러움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올드보이>의 최민식 선배님 연기는 ‘불편한 연기’예요. 연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대수라는 캐릭터와 그 배경이 우리가 생각해본 적 없는, 혹은 누군가가 상상할 법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즉, 배우의 연기에는 세상의 감정과 현실을 자연스럽고 편안히 공감할 수 있게 보여주는 연기가 있는 한편, 부자연스럽고 불편하더라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인간의 모습을 보여줘서 생각하게 만드는 연기도 있다는 뜻이었어요.

-친절한 설명이네요. 아이들도 좋아하겠어요. (웃음)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 교사를 하고도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저는 가족으로부터 “세번 참기”를 배워서 그걸 당연히 여기며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한번에 내지르기”를 배웠다쳐요. 처음에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한 인간이 평생 당연하게 생각하는 바가 달라지잖아요. 아이들에게는 맨 처음 뭔가를 인지하고 느끼는 시기가 대단히 중요한 거죠. 유치원 교사가 되면 내가 애들에게 그토록 뜻깊은 처음을 제대로 줄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엄마가 되면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요? =으음, 한두명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그렇다쳐도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건 좀…. (웃음)

-<가을동화>보다 <장화, 홍련>에서 더 어려 보였습니다. 열여섯살 때조차 나이보다 어려 보인 거죠. 그러다보니 상대가 자기를 실제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으로 대한다고 느낀 적도 있을 것 같아요. =‘국민 여동생’ 이미지라서 사람들이 다른 연예인에게보다 더 편하게 접근하고, 같이 일할 때 좀더 쉽게 원하는 방향을 요구하는 분도 계시죠. ‘실제로 어린데 어린애 취급받으면 어때? 나이 들면 안 그럴 텐데 차라리 지금 귀여움받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내 생각과 주관을 무시하는 쪽으로 기운다거나 나를 쉽게 봐 이러는구나 싶을 때에는 내 생각을 또렷이 말할까 고민해요. 간혹은 본때를 보이기도 하고. (웃음)

-한국 고전문학을 좋아한다고 밝혀왔는데요. 현대 한국소설이나 외국소설 취향은 어떤가요? =학교 수업 따라가기도 힘들어서 책을 많이 못 읽었어요. SF나 판타지는 아니지만, 살면서 생길 수 있는 엉뚱한 일, 엉뚱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을 좋아해요. 요즘은 천명관 작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재미나게 읽고 있죠. 베르베르의 <나무>도 그런 이야기들의 집합이고요. 아사다 지로 소설도 좋아요. 에쿠니 가오리의 장점은 흔치 않은 방식으로 정서를 풀어놓는다는 것? 그러나 고전에 비하면 농축된 느낌이 덜해요. 고전이 좋은 이유는 제약 때문이에요. 남녀 주인공의 사랑만 해도 만나지 못하는 사정의 압박이 심하고, 휴대폰도 없으니 엇갈리고 오해할 여지도 많잖아요. 시조라면 형식과 압운을 맞춰서 써야 하는 제약도 있고요. 그 모든 제약에서 진한 맛이 우러나요. 반면 행복해지는 방법,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법을 알려준다는 책은 잘 안 읽어요. 옛날엔 이럴 수 있구나 하면서 봤는데 이젠 읽어보면 다 아는 내용이에요. (웃음) 알지만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연기하고 인터뷰하는 모습을 직접, 간접적으로 바라보면 문근영씨에게는 슬픔이 가장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정서 같아요. 눈물을 잘 흘리기도 하지만, 다양한 희로애락을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접수하는 것처럼 보여요. 궁극의 기쁨, 아픔, 무서움을 모두 슬픔으로 ‘해석’한다는 뜻이죠. 혹시 슬픔이 제일 편안한 정서 아닌가요? =어느 순간부터 슬퍼졌어요. 삶이. 최근에 변한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어려서부터 슬픔을 굉장히 쉽게 여겼던 것 같아요. 슬픔을 느끼는 유전자를 남보다 많이 타고났나보다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 슬퍼서 슬픈 건 아니에요. 무슨 말이냐면 슬픈 게 차라리 편해요. 막 행복하면 먼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요하고 잠잠하고 내 감정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행복한 것보다 편안해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전히 배우가 됐을까요. 미래의 문근영이 와서 네게 이런 일들이 있을 거라고 과거의 문근영에게 말해준다면요. =저도 되돌리고 싶은 시점으로 돌아가 살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 있어요. 결론은 그럴 거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A라는 길로 살아보니 후회스러워 과거로 돌아간다쳐요. 그래서 한번 했던 일을 반대로 하며 B라는 길을 살았어요. 그럼 과연 후회가 없을까요? 되돌리고 싶은 욕망은 사람이니 당연하지만 거기 연연하지 않는 게 맞을 거예요. 다만, 배우가 한번 실수하면 너무 오래 기억에 남고 오래 가며 응징이 커요. 한 사람이 과거에 한 말과 행동은 현재의 그에게, 또 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걸까. 산다는 게 뭘까 생각해요. 철학자들도 결국은 자기가 믿고 싶은 걸 쓴 거겠죠? 나 역시 내가 믿고 싶은 답을 만날 때까지 계속 찾을 수밖에 없어요. 그걸 찾는 날이 오면 나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걸까요? (웃음)

追伸. 먼발치에서 처음 본 열여섯살의 문근영은 섧게 흐느끼고 있었다. <장화, 홍련>의 기술 시사가 열린 5년 전 새벽의 극장이었다. 극중 수연이가 가엾어서이리라 짐작했다. <장화, 홍련> DVD 부록에서 스탭들이 열어준 중학교 졸업 축하 파티가 화제에 올랐다. 추억을 떠올리던 문근영은 눈물을 쏟았다. 당황한 김지운 감독, 급기야 쭈뼛쭈뼛 물었다.“내가 뭐 잘못한 거 있니?” <어린 신부>의 마지막 촬영 현장에서 스탭들과 헤어지는 서운함을 가누지 못해 울었고 DVD 서플먼트 녹화현장에서 그 광경을 메이킹 필름으로 보며 또 울었다. 스크린 속 문근영은 언제나 영화가 요구하는 감정보다 몇배 슬피 운다. 울지 않는 시간이 조마조마할 지경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물었다.“내심 걱정했는데 오늘은 눈물 보이지 않네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상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상황, 이제 안 만들려고요.” 덧붙이기를, 자면서 많이 울어 눈물도 다 말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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