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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잭 카오,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불량기
장미 2008-06-27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대만영화제가 연장상영을 한단다. 그래서 늦기 전에 꼭 언급하고 싶은 배우가 하나 있다. 바로 과거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페르소나였던 잭 카오(高捷)다. <동년왕사>(1985)에도 출연했던 <동동의 여름방학>(1984)의 외할머니 ‘메이팽’이나, <희몽인생>(1993)의 주인공 그 자체이자 <연연풍진>(1986)과 <비정성시>(1989)에서 할아버지로 나왔던 리티엔루도 중요하지만 <나일의 딸>(1987)부터 허우샤오시엔과 조우한 잭 카오 역시 이후 그의 영화에서 늘 인상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비정성시>에서 말썽쟁이 셋째 ‘문량’(‘문청’ 양조위는 넷째)으로 나와 정신병자가 되고, <호남호녀>(1995)에서 여주인공의 헤어진 옛 연인 ‘아 웨이’이자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남국재견>(1996)에서 대만의 중년 양아치로 나와 선글라스를 낀 채 그저 시간만 때우고, <밀레니엄 맘보>(2001)에서는 비키(서기)의 뒤를 봐주고 지켜보는 자상한 중년 남자로 나온 잭 카오는 캐릭터의 변천사 그 자체가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진화와 일치한다. 언제나 반항적이거나 울분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은 최근 허우샤오시엔 영화에서는 아련하게 사라져버린 그리운 그 무엇이다.

1958년 대만에서 태어난 그는 마치 <비정성시>나 <해상화>(1998)에서 말이 없거나 적은 양조위의 반대말처럼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던 사람이었다. 실제 다소 불량한 청년기를 보낸 허우샤오시엔의 애정이 담긴 인물이기도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영화의 방향성이 늘 잭 카오를 따랐다는 사실이다. <비정성시>에서 대만과 상하이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남국재견>에서 막연하게 상하이로 떠나려는 꿈을 가지고, <밀레니엄 맘보>에서 일본으로 도피한 그의 모습은 실제로 <해상화>를 통해 상하이로 가고 <밀레니엄 맘보>는 물론 <카페 뤼미에르>(2003)를 통해 일본으로 떠났던 그의 영화의 이동경로와 일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리부리한 눈매는 물론 입가에 깊게 새겨진 주름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임청하나 왕조현 등 여느 대만 출신 배우들이 그러하듯 홍콩영화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90년대 들어 <독벽신도>(1994), <영웅신탐>(1997), <도협1999>(1998), <성월동화>(1999) 같은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한편으로 허우샤오시엔 영화와 비교해 처량한 모습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서도 서극의 <순류역류>(2000)에 경찰 비호대의 대장으로 나오거나 두기봉의 <유도용호방>(2004)에 여주인공 응채아의 보수적인 아버지로 나오는 등 대만과 홍콩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역할도 홍콩영화계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화소도>(1990)의 처량함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 같다. 언제나 검은색 모자를 쓰고 다니던 교도소 내의 양아치로 출연한 그는 뒤늦게 감옥에 들어온 성룡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인물이다. 갓 들어온 성룡이 허겁지겁 먹던 밥숟가락 위에 유유히 코딱지를 파서 올려놓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간수에게 이용만 당하고는 피범벅이 된 채 양가휘의 분노한 총에 벌집이 되고 만다. 그로부터 10년 뒤 <밀레니엄 맘보>의 신사 ‘잭’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천양지차다. 다시 <비정성시>를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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