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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쇠고기는 안녕하신가 <패스트푸드 네이션>
문석 2008-07-02

호러영화보다 무서운 드라마 지수 ★★★★ 육류 섭취욕망 유발 지수 ☆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지수 ★★★☆

미국의 쇠고기는 안녕하신가. 이 질문에 대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패스트푸드 네이션>을 통해 직설과 은유가 오묘하게 혼재된 답을 제시한다. 미국 쇠고기는 똥에 오염돼 있다, 라고. 패스트푸드 체인 미키스의 중역 돈(그렉 키니어)은 자사에서 파는 햄버거의 패티(다진 고깃덩어리)에 소의 똥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패티 생산 공장이 있는 콜로라도주의 코디(실은 가상의 도시다)로 가 진상을 조사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돈과 비슷한 시간에 코디에 도착한 멕시코 출신 불법이민자 실비아(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다. 그녀는 정육업체가 마음에 안 들어 호텔의 여급이 되지만, 남자친구 라울과 여동생 코코는 좀더 임금이 나은 정육업체에 취직한다. 감당하기 힘든 노동조건 속에 놓인 이들은 마약으로 고통을 달래거나 상관에게 몸을 바친다. 또 한명의 주인공은 코디의 미키스 지점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여고생 앰버(애슐리 존슨)다. 성실한 앰버와 달리 동료 알바생들은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의 햄버거에 침을 뱉거나 바닥에 떨어진 패티를 태연하게 불판에 올려놓는 일상을 살아간다. 거대 패스트푸드 업체의 독점적 지위와 부동산 개발 때문에 설 자리를 잃은 목장주들과 무섭게 돌아가는 칼날에 사지가 잘릴 위험에 노출된 숱한 멕시코 노동자들 또한 코디의 구성원들이다.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패스트푸드 업체-정육업체-노동자-알바생 등으로 이어진 작은 사슬을 통해 좀더 거대한 시스템을 드러내는 영화다. 이 영화의 성취는 주인공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직설적인 주장이나 영웅적 행동(과 좌절)이라는 신파적 드라마 없이 미국 식품산업과 글로벌 경제시스템의 흉측한 단면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바벨>보다 유물론적이고 (성공적인) 앙상블 영화”라는 짐 호버먼의 평가를 받은 이 영화는 서로 다른 계층과 입장을 대변하는 세 주인공을 통해 이 같은 의도를 달성한다. 돈은 정육 공정을 개선하고 싶지만 자리 보전이 걱정되고, 실비아의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에 가까워지며, 앰버의 용기있는 행동은 시스템에 길들여진 소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소를 도살하는 생생한 장면보다 실비아와 라울이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이나 밤거리를 수놓는 패스트푸드점의 화려한 네온사인의 모습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햄버거에서 똥을 제거하는 일은 그저 내장을 처리하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를 늦추기만 하면 쉽게 이뤄질 것 같지만, 너무도 단단한 시스템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쇠고기 패티를 망가뜨린 주범이 똥통 속에 빠진 미국의 경제·정치·사회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한국인들이 지금 광우병의 위험 속에 내몰린 이유 또한 이 무시무시한 시스템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tip/ 세 주인공 외에도 좋은 배우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앙상블 영화’의 또 다른 장점. 링클레이터의 영원한 동지라 할 수 있는 에단 호크는 물론이고, 브루스 윌리스, 윌머 발데라마, 패트리샤 아퀘트, 루이스 구즈먼,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그리고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폴 다노 등은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빛내준 별들이다. 이 영화를 통해 연기에 처음 도전한 에이브릴 라빈 또한 특이한 카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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