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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종교적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의 전범

<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찰스 로튼, 1955

‘피를 부를 것’이라는 묵시록적인 제목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에 나왔던 세속적인 성직자(폴 다노)를 기억할 것이다. 종교를 팔아 부와 명예를 챙기려는 파렴치한 소인배다. 신심과 순결을 강조하며, 달리 말해 죄의식을 부추기는 선동을 통해 그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뒤에서는 돈을 탐닉했다. 그의 영화적 선배를 찾자면 로버트 미첨이 연기한 성직자 해리 파월이 전범이다. 명배우 찰스 로튼이 유일하게 감독했던 <사냥꾼의 밤>(1955)의 주인공이다. 오른손 주먹 위엔 ‘LOVE’, 왼손 주먹 위엔 ‘HATE’라고 문신을 하고, 사랑은 결국 증오를 이길 것이라는 유아적이고 광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선동가다. ‘사랑과 증오’에 관련된 그의 주먹 문신이 얼마나 인상적인지, 이는 미첨 자신에 의해 <케이프 피어>(1962, 리 톰슨)에서, 그리고 리메이크된 <케이프 피어>(1991, 마틴 스코시즈)에서 로버트 드 니로에 의해 다시 반복되기도 했다.

성직자의 탈을 쓴 배금주의자

해리는 사실 성직자의 신분을 위장한 악인이다. 돈 많은 과부들에게 접근하여 돈을 뺏는 비열한 짓을 일삼는다. 그가 새로운 먹이를 찾아 어느 전원도시로 도착하는 게 <사냥꾼의 밤>의 도입부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치 하늘의 신이 속세를 바라보듯 구성돼 있다. 헬리콥터의 시점으로 미국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전원도시가 펼쳐진다. 푸른 들과 넉넉해 보이는 강, 그런 자연을 배경으로 큼직한 집들이 정렬해 있다. 완벽해 보이는 지상낙원의 모습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땅으로 점점 다가오자, 사정은 달라진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지하실로 숨어들고, 그 뒤를 따라가자 시체 한구가 보인다. 여기도 사람을 죽이는 살육경쟁의 다른 속세와 다를 바 없는 곳이다.

해리가 노리는 대상은 주로 돈 많고 사랑에 굶주린 과부들이다. 이들에게 거짓 사랑을 약속하고 돈을 뺏은 뒤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해리는 청교도적인 억압된 성문화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그는 성적 자극의 대상을 만나면 죄의식이 발동해 본능적인 살해 욕구를 느낀다. 과부들도 그래서 결과적으로 죽임을 당한다. 그가 극장에서 반라 차림의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보며 증오를 느낄 때, 양복 속의 잭나이프의 날이 주머니를 뚫고 직선으로 일어서는 장면은 해리의 성적 억압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남근을 상징하는 칼은 오직 성적 대상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만 제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싸이코>(1960)의 노먼 베이츠(앤서니 퍼킨스)의 살해심리 같은 것이다.

돈 많은 과부로 오인받은 여자는 두 아이의 엄마인 윌마인데, 이런 연기로는 최고급의 실력을 보여주는 셸리 윈터스가 열연했다. 스탠리 큐브릭의 <롤리타>(1962)에서 사랑에 들뜬 롤리타의 어머니(역시 과부) 역을 한 그 배우다. 그가 오랜만에 남자를 보며 몸이 달아오르는 연기를 할 때면 하도 사실적이라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로버트 미첨의 건장한 몸과 과묵한 인상을 기억해보라. 해리 포웰과 결혼한 윌마의 흥분이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돈의 향방을 모른다. 죽은 남편이 강도짓을 하여 돈을 훔친 뒤, 이를 아이들 인형 속에 숨겨뒀는데, 아이들은 아버지와의 약속에 따라 엄마에게도 이를 비밀에 부쳤다. 아무 쓸모가 없게 된 그녀는 해리에게 살해된다. 두 아이는 도주하고, 해리의 긴 추적이 시작되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의 혼합

아이들이 해리의 추적을 벗어나기 위해 도주하는 부분은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 기법이 동원된 이 영화의 압권이다. 자동차의 앞좌석에 묶인 채 그녀는 강 아래로 버려졌고, 해초와 머리칼이 서로 뒤섞이며 물속에서 유영하는 슬로모션 장면은 아름답고 동시에 무섭다. 아이들은 밤을 이용하여 나룻배를 타고 강을 따라 도주한다. 달빛 아래 배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들의 모습은 거미줄의 거미, 토끼, 거북이, 두꺼비 그리고 부엉이들과 대조되며 보여진다. 아이들은 비록 도주하고 있지만, 범죄의 문명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연 속에서 안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로버트 미첨은 원래 B급 필름누아르의 스타였다. 전쟁을 전후하여 누아르영화들이 쏟아져나올 때, 그는 금욕적이고 과묵한 이미지로 단숨에 스타가 됐다. 범죄물의 스타를 넘어 일반 대중의 스타가 된 뒤에도 이런 이미지는 계속 남았다. <돌아오지 않는 강>(1954)은 넉넉한 남자 로버트 미첨의 매력을 한껏 우려먹은 경우다. 그런데 <사냥꾼의 밤>에선 전혀 다른 로버트 미첨을 만난다. 바로 비열하고 잔인한 악인이 그것이다. 특히 가증스러운 점은 그가 일확천금을 노려 성직자의 신분을 팔아먹는 것이다.

유독 청교도적인 윤리를 강조하는 미국에서 종교적 배금주의라는 과감한 테마의 영화가 발표됐는데, 로버트 미첨의 연기가 너무 사실적이라서 그런지 이 영화는 발표 당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흥행 참패로 찰스 로튼은 이 한 작품만 연출하고 더이상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밤의 사냥꾼>은 사회에 만연된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을 종교적인 영역까지 확대한 전범으로 다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다음엔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High Noon, 1952)을 통해 웨스턴 장르의 진화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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