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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도올과 오대빵
고경태 2008-07-11

오대빵! 정의는 살아 있다, 라는 문자메시지를 친구에게 날렸다. 한달 전이다. 정말로 오대빵이었다. 재판을 게임으로 친다면, 5 대 0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나는 어느 언론사 사장 한분이 보기에 대단히 기분 나쁜 칼럼을 썼다. ‘몰상식의 표본’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어떤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격분했고, 민·형사 소송을 걸었다. 아무리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글이더라도 ‘공익에 부합하면’ 쉽게 죄가 되지 않는 게 명예훼손 소송의 일반적인 판례다. 다행스럽게도 대법원까지 간 세 차례의 형사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1억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당한 민사소송 1심과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원고쪽에서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으니 경기종료 휘슬까지 분 셈이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은 전혀 딴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재판이 끝난 뒤 우연히 어떤 책 한권을 읽다 두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표현들이 책을 뒤덮고 있었다. 자연스레 이런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너무 심하잖아?” 그 책은 ‘쪼다’로 시작됐다. 일종의 열쇳말이었다. 끊임없이 ‘쪼다’라는 말이 반복됐다. 뒤를 이어 ‘걸레 같은 사상’,‘가공할 만한 무식’, ‘똥개 같은 인간’, ‘한국사회 최악의 수치 중 하나’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 책의 필자는 5억, 아니 50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것만 같았다. 욕바가지를 뒤집어쓴 이가 한국사회에서 가공할 만한 대중적 명망을 누리는 이여서 더욱 그랬다. 근거없는 모욕이라면 필자가 대가를 치르든가, 정반대였다면 욕을 먹은 문제의 인물이 사회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책은 잊혀졌다. 그 책의 이름은 <도올 김용옥 비판- 우리시대의 부끄러움을 말하다>(옛오늘 펴냄)이다.

필자 김상태씨는 이 책에서 도올 김용옥의 실체와 본질을 향해 파고든다. 그는 동양고전을 한수 배우기 위해 김용옥의 저작 50여권을 독파하다가 전혀 엉뚱하고 상스러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처음 욕설을 접했을 땐 거부감이 들었으나 책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넘어갔다. 필자가 좀 꼬여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으나, 어느새 그 욕설에 동조하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그 욕설은 김용옥이 자신의 저작에서 아무렇게나 내뱉던 것들을 돌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책의 논지는 김용옥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같은 ‘의견’의 차원이 아니다. 대신 황우석의 줄기세포가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사실’의 문제에 접근한다. 한 예로, 김용옥은 학계를 향해 고전번역을 하라며 쌍욕을 해댔지만, 자신은 한번도 고전을 번역한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김용옥에게서 황우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김용옥은 왜 소송을 걸지 않는가. 스스로 “욕먹어도 싸다”고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괜히 건드려봤자 더 커질까봐, 귀찮은 똥 피해가는 것일까. 책이 발간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김용옥은 변함없이 명사 대접을 받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제목에 붙인 말대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문제는 여전히 김용옥이 입만 벙긋하면 샤방샤방 띄워주는 언론의 보도를 보며 두배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거다. 굳이 철지난 책 이야기를 하는 이유다.

얼마 전 김용옥은 ‘경부 대운하’를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씹었다. 옳거니~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사들은 그의 유명세를 활용할 기회라도 만난 듯 기사를 비중있게 키웠다. 이것은 필자 김상태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면, ‘한국사회 생존논리의 리얼함’을 다시 한번 목격하는 순간이다. 또한 ‘반칙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인물이’ 명백한 반칙을 폭로당한 이후에도 떵떵거리며 대접받는 이중으로 일그러진 현실이다.

그 ‘반칙’의 내용을 세세히 전하기엔 이 지면이 좁다. 독자들께 일독을 권하는 걸로 대신한다. 괜히 명예훼손 송사에 휘말릴까봐 겁도 난다. 오대빵으로 이긴 다 해도, 재판은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