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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카메라로 담은 공포의 현장 < REC >
김도훈 2008-07-09

여친몸과 밀착 지수 ★★★★ 비명질러 목쉼 지수 ★★★☆ 달팽이관 울림 지수 ★★

<클로버필드>로 빛을 발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영화는 금세 좀 진부해졌다. P.O.V(시점숏)을 무기로 휘두르며 관객을 몰입시키거나 퇴패시키는 유튜브 시대의 신종 장르는 효과가 지나치게 극적이어서 그만큼 쉽게 질린다.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니 플롯과 장르적 장치를 예측하는 것도 아주 쉽다. 게다가 올해 부천에서 상영한 조지 A. 로메로의 <다이어리 오브 데드>는 이 장르가 감독의 과도한 미디어 개똥철학과 맞물리면 얼마나 재미가 없어지는지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러나 하우메 발레구에로와 파코 플라자의 <REC>는 이 신종 장르가 앞으로 몇년간은 우려먹을 만큼 의외로 쓸 만하다는 걸 입증한다.

<REC>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카메라맨 파블로의 시선을 따라간다. 리포터 앙헬라와 그는 취재 중인 소방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간다. 그들이 도착한 오래된 아파트는 뭔가 좀 이상하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1층 홀에 모여 위층에서 이상한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호소한다. 비명이 들리는 방으로 찾아간 소방대원들은 뭔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날뛰는 노파와 꼬마 소녀에게 습격당하고, 그들에게 물린 사람들도 하나둘 좀비가 되어간다. 게다가 아파트는 “감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검역당국에 의해 밖으로부터 폐쇄되고 만다. 갇힌 사람들은 늘어가는 좀비를 보며 마침내 감염의 두려움을 깨닫고,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굶주린 이빨을 피해 위층으로 뛰어올라가기 시작한다.

설정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이 좀비들을 피해 달아난다는 이야기야 지난 십수년간 끝없이 반복되어온 설정이다. <클로버필드>보다 먼저 제작되긴 했지만 1인칭 카메라로 실재처럼 공포의 현장을 담는다는 설정 역시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에서 빌려온 것이니 크게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러나 장르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건 오리지널리티가 아니다. 이미 관객에게 익숙할 대로 익숙한 장르의 법칙을 얼마나 능숙하고 효과적으로 구사하느냐다.

발라구에로는 장르의 법칙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같은 동세대 스페인 장르감독들처럼 능수능란한 건축가는 아니다. 하지만 초자연적 스릴러 <네임리스>(1999), 출세작 <다크니스>(2002), <프래절>(2005)을 통해 그는 ‘어둠’을 향한 관객의 공포를 이용하는 재능을 근사하게 드러내왔다. 특히 발라구에로만의 지장이 확연하게 엿보이는 장면은 마지막 10분이다. 발라구에로는 <네임리스> <다크니스>에서 보여줬던 오컬트적 감성을 살려 바티칸적 음모이론과 좀비영화의 컨벤션을 뒤섞은 다음 야간 투시경과 특수효과를 이용해 흐느적거리는 괴물체를 등장시켜 관객을 급습한다. 극적인 설득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플레이스테이션용 1인칭 호러게임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은 아찔하다.

<REC>를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은 다운로드의 유혹을 짓누르고 극장으로 달려가는 거다. <REC>는 속력 좋고 코스 설계 끝내주는 롤러코스터다. 최대한 많은 관객(특히 마음 약해 보이고 목청 좋아 보이는 여성 관객)이 앉아 있는 극장에서 함께 비명을 꽥꽥 지르면서 봐야 한다. 비명을 지른 뒤 허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키득거리면서 즐겨야 한다. 놀이기구는 그러라고 만들어지는 거다.

TIP/ 하우메 발라구에로는 실제 소방관을 포함한 비전문배우를 기용했다.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도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 소방관이 1층의 홀로 추락사하는 장면은 배우들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고 불시에 촬영했다. 기겁해서 날뛰는 배우들의 리액션 역시 진짜라는 소리다.

리메이크, 그리고 속편

<REC>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중이다. 제목은 ‘격리’를 의미하는 <쿼런틴>(Quarantine). 감독은 지하실에서 발견된 고문, 살인 테이프를 바탕으로 연쇄살인마를 추적한다는 내용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호러영화 <더 포우킵시 테입스>(The Poughkeepsie Tapes)를 연출한 존 에릭 다우들. 주연은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와 TV드라마 <덱스터>의 제니퍼 카펜터와 <호스텔>의 제이 페르난데즈가 맡았다. <REC>를 이미 관람한 사람들이 <쿼런틴>을 보고 똑같이 비명을 지를지는 미지수이니만큼 자막 달린 외국영화 기피증 환자들(=미국 관객)을 위한 리메이크라고 보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다만 특수효과를 담당한 로버트 홀은 호러영화 잡지 <팡고리아>와의 인터뷰에서 “<REC>를 컷 바이 컷으로 리메이크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REC>의 감독 하우메 발라구에로와 파코 플라자는 현재 <REC2>를 기획 중이다. 전편이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를 연상시키는 의뭉스런 엔딩으로 막을 내렸으니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소문에 따르면 두 감독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저예산으로 재빨리 만든 뒤 2008년 10월17일로 잡힌 <쿼런틴>의 개봉 전에 개봉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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