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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오우삼과 주윤발의 하모니카
주성철 2008-07-11

주윤발이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에 그대로 출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완성된 영화를 두고 가정을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지만 주윤발이 오우삼의 음악적 세례를 받은 유일한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크다. 뭔 말이고 하니, 신사라는 의미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오우삼 영화의 마초들은 하나같이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연주의 달인들이다. 그리고 오우삼 영화에서 그 역할의 대부분은 주윤발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장 피에르 멜빌의 영향이었다. <사무라이>(1967)에서 알랭 들롱은 나이트클럽의 피아니스트로 나온다. 그 피아노 실력이 아까웠는지 <형사>(1971)에서도 알랭 들롱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다. <영웅본색>(1986)을 만들던 당시 주윤발의 의상과 연기 스타일 등 모든 것을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으로부터 가져왔다는 것은 유명하다. 영하의 날씨로 결코 내려가지 않는 홍콩에서 롱코트를 입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첩혈쌍웅>(1989)에서는 오프닝이 <사무라이>와 거의 똑같다. 주윤발/알랭 들롱이 클럽에 도착해 가수 엽청문/피아니스트를 보며 방 안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뮤지컬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오우삼의 음악 사랑은 오래되었다. <소장>(笑匠, 1984)은 20년 넘게 앙숙으로 지내다 다시 뮤지컬 공연을 꾸미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첩혈가두>에서 패싸움 장면을 경쾌한 뮤지컬 장면처럼 연출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양조위는 어울리지 않게 손에 체인을 두르고 싸웠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모니카다. <첩혈쌍웅>에서 주윤발은 하모니카를 분다. 그것은 주윤발이 실제로 연주한 것이고 O.S.T에도 <아장(주윤발)의 하모니카>라는 이름으로 따로 수록돼 있다. 영화에서는 엽청문이 눈이 멀기 전 클럽에서 부르는 노래이자 이후에도 여러 번 들려오는, ‘쪼이 무 얏틴~’으로 시작하는 주제곡 <천취일생>(술에 취한 인생)에 맞춰 주윤발이 연주한다. 엽청문의 눈을 멀게 한 그 자신의 자책감이 섞인 듯한 멜로디여서 그 슬픔은 더 컸다.

<첩혈속집>(1992)의 첫 장면은 더 노골적이다. <사무라이>의 알랭 들롱처럼 주윤발은 클럽의 클라리넷 연주자로 나온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술잔 소리가 들리더니 그는 폭탄주를 만들어 단숨에 들이켜고 연주를 시작한다. 사실 그는 강력반 소속의 경찰이기도 하기에 무척 생경한 설정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동료 형사가 죽으면 늘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그처럼 알랭 들롱의 침묵과 여유를 동경했던 오우삼의 영화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인물은 주윤발이 유일했고, 그것은 그를 ‘오우삼의 페르소나’라고 말할 수 있는 확고한 근거가 됐다(할리우드에서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윈드토커>에 이르러서야 하모니카를 연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적벽대전…>에서 풍류를 사랑하고 거문고 연주로 제갈량과 동맹을 맺었던 주유 역할로 주윤발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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