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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당룡과 황정리의 화려했던 한때
주성철 2008-08-01

지난 부천영화제를 찾은 게스트들 중에서 당룡(본명 김태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소룡 사후 그가 대역을 하면서 <사망유희>가 완성됐다. <사망유희>(1978) 이후 골든하베스트는 염치없게도 이소룡의 이전 자료화면들을 한번 더 써먹을 요량으로 <사망탑>(1980)을 기획한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자료화면으로라도 어떤 역할을 하긴 했다는 점에서 이소룡의 유작은 <사망유희>가 아니라 <사망탑>일지도 모른다. 초반부에 첸지앵(이소룡)이 등장하는 화면들은 전부 자료화면과 당룡이 대역한 장면들이고, 그를 중반에 죽게 한 다음 그의 동생으로 설정된 첸큐오(당룡)를 등장시켜 형의 복수를 하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에서 친큐(황정리)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첸지앵은 그 관을 탈취한 헬리콥터에 매달려가다 암기에 쓰러진다. 이때부터 형의 대역까지 도맡아하던 당룡이 드디어 당당하게 정면 얼굴을 드러내 동생으로 등장한다. 사실 카리스마와 표정 연기가 떨어질 뿐이지 당룡은 이소룡보다 더 빠른 속도와 난이도 높은 액션을 자랑한다. 사실 이소룡은 스턴트 연기와는 거리가 있기에, <사망유희>에서 당룡이 앞차기로 전구를 깨트리는 장면이나, 점프를 해서 자동차를 뛰어넘는 장면, 쉴새없이 돌려차기를 하는 장면은 이소룡도 따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얼굴 없는 배우들의 슬픈 운명이다.

<사망탑>은 <용쟁호투>(1973)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이 비밀을 캐기 위해 섬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당룡은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루이스(로이 호랜)의 요새로 찾아간다. 압권은 ‘죽음의 성’이라 불리는 루이스의 요새가 바로 불국사라는 점. <사망탑>의 불국사는 사납게 생긴 외팔이 집사가 주인을 보필하고, 마당에서 원숭이와 공작새가 뛰놀며, 지금은 들어갈 수도 없는 불국사 돌계단에 도복을 차려입은 부하들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루이스는 (물론 세트겠지만) 그 불국사 내부에서 사슴의 생고기와 피를 즐기고 심지어 빵을 수프에 찍어 먹듯 사슴피에 찍어 먹는다. 더구나 배경은 일본인데 한국에서 촬영했기에 당룡과 루이스는 사자들이 노니는 성의 또 다른 곳(아마도 용인자연농원?)을 지프차로 구경 다니는데, 사자들이 차로 몰려들 때 ‘나 5485’라는 한국식 차 번호판이 실소를 자아낸다. 이처럼 지금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스꽝스러운 점들이 눈에 띄지만 당룡과 황정리가 맞붙는 장면의 속도와 박력만큼은 꽤 특별하다. 당시 골든하베스트가 한국에서 온 태권 용병들에게 매혹된 이유가 거기 있다.

<사망탑>은 홍콩에서 DVD로 출시돼 있지만 영국 출시 버전을 권한다. 홍콩 액션영화 전문가인 베이 로건과 배우 로이 호랜의 음성해설이 실려 있으며, 한국 배우 왕호(<사망탑> 출연배우가 아니지만 이소룡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서인지)의 인터뷰가 서플먼트로 실려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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