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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가면을 쓴 생에 대한 집착 <미스트리스>
김혜리 2008-07-30

품위 및 절제 지수 ☆ 아시아 아르젠토 야성 지수 ★★★★ 카마수트라 지수 ★★★

여인은 누워서 등장한다.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가 살아 숨쉰다면 이런 모습이리라.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는 10년 된 애인 리노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있으면 마리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정사를 나눈 다음 그녀에게 이별을 통고할 것이다. 1835년 왕정복고시대의 프랑스 파리. 그러니까 잘난 신사와 귀부인들이 남몰래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읽고 있을 무렵이다. 무일푼의 바람둥이 마리니는, 10년 동안 관계를 이어온 벨리니를 인생에서 잘라내고, 어리고 부유하고 정숙한 귀족 처녀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키다)와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단호하게 닫힌 문 뒤에서 벨리니는 씹어뱉는다. “결혼이든 뭐든 날 떠날 순 없을걸.”

<미스트리스>의 제2장은 아주 긴 플래시백이다. 손녀사위를 둘러싼 추문을 익히 들은 플레르 후작부인이 마리니를 불러 사랑의 역사를 낱낱이 말해달라고 청하기 때문이다. 추궁은커녕 로맨틱한 호기심으로 상기된 노부인은 관객의 대리인이다. 스페인 투우사와 이탈리아 공주의 사생아라는 소문의 여인 벨리니에게 도도한 마리니는 초면에 경멸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밤 파티에서 악마로 분장한 벨리니에게 사로잡힌 마리니는 무모한 구애를 시작하고 급기야 벨리니의 남편과 결투해 중상을 입는다. 여자는 가련한 남편을 차버리고 귀족사회는 들끓는다. 그러나 이것은 노래의 1절일 따름이다. 둘은 한때 먼 나라로 떠났고 행복하였다.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잃었다. 울부짖고 귀를 틀어막았다. 파리로 돌아온 그들의 일상에서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남은 나날을 그들은 본능적인 애무로 연명해왔다.

벨리니와 마리니의 섹스신은 낭만적 교감의 광경이라기보다 남녀의 육체가 포개지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가깝다. 카메라는 남성의 움직임에 거의 무관심한 대신, 절정을 음미하는 벨리니의 표정을 유심히 주시한다. <미스트리스>의 영혼은 감독 못지않게 아시아 아르젠토가 분한 정부 벨리니의 것이다. 귓가에서 날름대는 붉은 꽃, 이마와 뺨에 당초 문양을 그리는 잔머리,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음색, 귀걸이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까지, 그녀를 이루는 모든 요소는 꿈틀거리고, 그래서 주변에 소요를 일으킨다. 상대의 마지막 살점까지 물어뜯어야 포만감을 느끼는 육식동물의 감각으로 살고 사랑하는 그녀는 귀족사회가 볼 때 존재 자체가 ‘이국’이다. 상류사회 일원인 마리니는 때를 보아 신분을 유지하고 노후를 보장받을 궁리를 하지만 벨리니에게는 제도 안으로 편입하려는 의지도 가능성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혈혈단신으로 사회 전체와 대적하는 전사처럼 보인다. 마리니와 에르망갸드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교회에서 홀로 이층 발코니에 앉아 거만하게 회중을 굽어보는 벨리니의 이미지는 그녀의 입지를 요약한다. “그리스도는 남자의 머리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온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이 봉독될 때 벨리니의 입술은 경멸을 담아두지 못하고 일그러진다.

카트린 브레야의 각본은 물구나무 선 구성을 보여준다. 이별의 선언으로 시작한 영화는, 마리니의 결혼식에서 반환점을 돌고, 마리니와 벨리니의 관계가 재개되는 도돌이표에서 끝난다. 그렇다. 기이하게도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전쟁터의 말은 대검에 얕게 찔리면 쾌감으로 느끼고 더 달린대. 그러다 심장까지 뚫리는 거지”라는 마리니의 대사보다 그 이유에 대한 더 좋은 설명은 없다. 마리니의 고결한 아내는 죄책감을 토로하는 남편에게 천진한 눈빛을 거두고 대꾸한다. “아무 문제없어요. 별 걱정 다 하네.” 평행하는 두 세계는 그렇게 봉합된다. 벨리니와 마리니가 저주받은 운명의 연인인 까닭은 그들이 사랑하지만 맺어질 수 없는 사이여서가 아니라, 더이상 사랑하지 않지만 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스트리스>는 사랑 예찬도 아니고 불꽃같은 러브스토리도 아니다. 뜨거운 것은 인간이고, 사랑은 식어버린 수프처럼 질척하고 지겹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극중 호사가들처럼 그 사랑을 목격하고 수군거리고 기억하는 것이다.

tip/ 루이 말의 <데미지>를 좋아했다면 당신이 <미스트리스>를 즐겁게 볼 확률은 꽤 높다. 지긋지긋한 사랑이 취향에 맞는다면 레오폴드 폰 자허마조흐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나 푸치니의 오페라로 더 유명한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 프랑스 현대작가 아니 에르노의 지독한 연애소설들도 일독을 권한다.

카트린 브레야 감독은?

은근하고 미묘한 시대극 장르의 예의범절을 예상한 관객이라면 품위와 절제 따위 지옥에나 가버리라는 투의 영화 <미스트리스>에 당황할 것이다. 반면 금기를 눈앞에 들이대는 카트린 브레야의 도발적인 전작들로부터 각오를 다진 관객이라면 <미스트리스>의 상대적 온건함에 놀랄 터다. 브레야의 11번째 장편인 시대극 <미스트리스>는 ‘예술 포르노’라는 수사까지 얻었던 그녀의 영화로서는 가장 접근하기 무난한 작품이며 전작 열편의 예산을 합친 만큼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다. 1975년 본인의 소설을 각색한 <정말 어린 소녀>로 장편 데뷔했는데 소녀의 성적 상상을 노골적인 이미지를 포함한 영상으로 담아내 논란을 일으켰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천착한 1999년작 <로망스> 역시 검열 논란을 일으켰으며 이 무렵 브레야는 “검열은 남성들의 이슈다. X등급과 X염색체는 짝패다”라는 말을 남겼다. 2000년작 <팻걸>은 10대 소녀의 성적 각성을 그린 위트있는 드라마로 시작해 폭력적 반전으로 충격을 안겼다. 섹스영화 촬영현장의 난맥상을 그린 <섹스 이즈 코미디>, 브레야판 ‘버자이너 모놀로그’라고 할 만한 <지옥의 해부>가 뒤를 이었다. 카트린 브레야는 페미니스트 평단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이성애적 섹스에 거듭 집착해, 여성성을 오직 섹슈얼리티로만 규정하려는 가부장적 시선에 편승하는 결과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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