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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수애

수애가 망언을 했다는군요. 자기가 주로 과거를 무대로 한 영화에 캐스팅되는 이유가 ‘외모적인 촌스러움, 올드함’ 때문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고 이게 ‘망언’이라며 돌아다니는 거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한번 보죠. 수애의 외모는 요새 평균적인 여성 연예인들의 얼굴과 조금 다릅니다. 많이들 70, 80년대의 대표 배우였던 정윤희를 닮았다고 하지요. 이 둘은 모두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애의 외모가 70년대풍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수애의 얼굴은 70년대보다 지금 더 인기를 끌 타입입니다. 정윤희와 닮은 것은 맞지만 포동포동하고 동글동글했던 정윤희와는 달리 얼굴선이 분명하고 날카로우며 강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목소리나 몸매도 정반대죠. 70년대 여성배우들은 간드러지고 교태스러운 성우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수애는 위엄있고 조금 냉정하게 느껴지는 중저음의 허스키 보이스를 갖고 있어요. 수애는 70년대풍 촌각시 패션이 정말 잘 어울리긴 하지만 바로 그 사실 자체가 이 사람의 곧고 날렵한 육체가 70년대식 표준과 거리가 멀다는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정말 70년대풍이라면 현대 관객에게 별 호소력이 없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애에게는 ‘고전’이나 ‘전통’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뭔가가 있습니다. 제 말은 단지 그게 60, 70년대라는 구체적인 시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전 이 이미지가 특정 시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믿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그 시기의 대중문화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반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제 생각엔 이것은 ‘항구성’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수애의 외모나 연기 매너리즘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 믿음과 그 믿음을 지탱하는 강한 의지의 반영처럼 보입니다. 그건 자연인 수애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연기자/연예인 수애의 모습이 우리가 이미 머릿속에 담고 있는 그런 상에 더 잘 맞기 때문입니다. 수애는 정적인 연기가 훌륭하고 불필요한 애교 없이 정련되지 않은 감정을 차분하게 표출할 줄 알지요. 우리는 이런 것들이 현대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전통이나 복고적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건 특정 시기의 반영과 아무 상관없습니다. 아마 70년대 관객에게 보여주었어도 복고적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존재한 적도 없었던 위엄있는 과거의 흔적으로 해석했겠죠. 전 <9회말 2아웃>에서 수애의 연기가 설득력없게 보였던 것도 이 천성적인 자기 확신의 이미지가 주인공의 불안한 상태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 슬슬 <님은 먼곳에>의 수애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준익 감독은 수애를 여신화했어요. 이준익은 수애가 연기한 주인공 순이의 내면을 보여주지도 않고 갈등을 표면에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그냥 인간 관객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하고 신비스럽지만 강인한 의지와 목표의식을 가진 존재로 그렸지요. 늘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데 자신이 없었던 (그러면서도 종종 훌륭한 여성 조연들을 등장시켰던) 감독이 자기 능력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진짜 좋았던 건 바로 수애의 캐스팅인데, 다른 배우들에게 주었다면 십중팔구 무너져버렸을 겁니다. 주인공의 동기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배우들이 많이들 그러죠. 하지만 수애는 안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충분히 이해될 수 없는 자잘하고 모순된 감정을 하나로 묶어 강인하고 영구적인 무언가로 만들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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