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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무식한 게임과 같은 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
강병진 2008-08-06

유혈낭자 지수 ★★★ 엘리트 학생들의 지능 지수 ★★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걸 지수 ★★★★

전교 1등부터 20등 사이의 학생들이 주말의 학교에 모였다. 이나(남규리)와 강현(김범) 등의 학생들은 인기 선생님인 창욱(이범수)과 영어 선생님 소영(윤정희)에게 특별 엘리트 수업을 받는 중이다. 영어교육용 DVD를 보는 도중에, <엘리제를 위하여>의 종소리가 들리고 TV에는 물이 차오르는 수조에 갇힌 전교 1등 혜영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어 성별을 구별하기 어려운 목소리가 교내 스피커를 통해 자신이 내는 문제를 풀면 친구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단, 규칙은 있다. 도망가는 이는 살아남지 못할 테니, 절대 학교 밖을 나가지 말라는 것. 그리고 문제를 다 맞히면 이 시험에 얽힌 비밀을 알 수 있다는 것. 아이들과 선생님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해답과 이 잔혹한 시험의 출제자를 찾으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더 많이 죽어간다.

<여고괴담>의 학교에 <쏘우>의 고문장치가 설치됐다. 방학을 맞은 학생 관객에게 너희 학교가 지옥이라고 일러주는 것이 <여고괴담>부터 이어진 학원공포물의 관습이라면, 각종 잔인한 방식으로 구성된 살해방식과 그로 죽어간 시체들의 깜짝쇼는 <쏘우>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고死: 피의 중간고사>(이하 <고사>)는 여기에 지적 게임의 재미를 추구하고자 한 듯, 정규 교과과정에는 나올 것 같지 않은 시험문제들을 출제했다. 하지만 극중의 학생들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적인 추리와 연산의 재미를 얻기는 힘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내건 게임의 규칙을 관객으로서 이해하기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는데, 어떻게 죽는 건지. (무엇보다도 어떤 장치를 해놨기에?) 그리고 도대체 이 잔혹하고 거대한 시험이 어떻게 치러질 수 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고사>는 큰 원을 하나 그려놓고 거기에 학생들과 선생님을 몰아넣은 뒤, ‘금 밟으면 아웃’이라는 규칙을 정해놓은 단순무식한 게임과 같은 영화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걸 ‘게임’으로 치부한다면 <고사>는 꽤 박진감있는 살인게임일 수도 있다. 아무런 주석없이 그저 단순한 게임요령만 숙지할 수 있다면, 즐기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고사>의 유일한 장점일 듯. 무작정 반전을 향해 질주하는 태도 또한 애써 의미를 강조하려는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와 비교할 때는 희한한 미덕으로 보인다.

TIP/<고사>의 엔딩 크레딧을 보고 당황할 수도 있다. 영화의 내용상 조롱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희화화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어떤 관객은 그런 가벼움에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를 무대로 공포영화를 만든 감독이 어떤 태도를 지녔는지를 엿볼 수 있다. 후자의 편에서 본다면 이 영화를 연출한 창 감독은 정말 무게없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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