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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위노나 라이더

<비틀쥬스> 20주년 기념 DVD가 올해 9월에 나온답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헤더스> 20주년 기념 DVD는 벌써 나왔어요. 저 같은 사람에겐 하늘이 무너질 소식입니다. 어떻게 <비틀쥬스>가 벌써 20주년이랍니까? 하지만 아무리 제가 부인하려고 해도 이 영화가 1988년에 나왔고 올해가 2008년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는 거겠죠.

물론 <비틀쥬스> 20주년 이야기를 하려면 위노나 라이더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이 배우의 경력도 벌써 20년을 넘겼어요. 처녀작인 <루카스>가 86년작이니까 22년입니다. 역시 하늘이 무너질 소식입니다. 전 언제나 위노나 라이더가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엑스 세대’라고 불리던 무리들 말이에요. 물론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엑스 세대’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저 같은 아이들이 위노나 라이더에게 같은 세대의 동질감을 느꼈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벌써 이 친구가 40대를 앞두고 있다고요? <루카스>의 젖살 통통한 아기 얼굴이 엊그제 같은데? 요샌 세월이 광속으로 지나간답니까?

왜 이렇게 좌절감이 느껴지는 걸까요? 위노나 라이더와 비슷한 세대의 배우들은 많습니다. 요즘 활동하는 사람들은 남자배우들이 더 많지만 여자배우들의 수도 만만치 않죠.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전 이 배우의 영화들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고 거의 같이 나이를 먹어왔습니다. 동창생 같고 남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요. 둘째, 이 배우의 경력이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위노나 라이더의 전성기는 1994년에 끝났습니다. 그때까지 라이더는 <작은 아씨들> <청춘 스케치> <순수의 시대> <귀여운 바람둥이> <헤더스> <가위손> <비틀쥬스>에 출연했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두번 지명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20대 초반의 젊은 배우치고는 아주 훌륭한 필모그래피였죠. 이대로만 쭉 나가면 할리우드 주류배우가 되어 안정된 명성과 경력을 구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갔던가요? 아뇨. 라이더의 경력은 거기서부터 그대로 정체되었습니다. 연기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절도사건과 관련된 사생활 문제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먹잇감이 되었죠. 그 뒤에도 <스캐너 다클리>처럼 좋은 영화들이 있었고 이번 <스타트렉XI> 영화도 기대해볼 만하지만… 그래도 영 시원치가 않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적어도 30대 중·후반의 라이더에겐 안젤리나 졸리나 케이트 블란쳇 같은 사람들의 안정된 스타의 느낌은 없습니다. 여전히 영리한 애 같고 여전히 미완성이고 여전히 아슬아슬한데 벌써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것이죠.

아마 라이더는 처음부터 성숙을 포기한 배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그 배우의 매력이었고 장점이었죠. 히피 부모를 둔 엑스 세대 규율파괴자. 중도에 계획을 포기하더라도 어른들의 규칙에 굴복하지 않는 아이. 하지만 아무리 그게 멋있어 보여도 사람은 언젠가 나이를 먹어야 합니다. 배우들은 록스타와 사정이 다르죠. 아무리 보톡스와 성형수술로 팽팽한 젊음을 유지한다고 해도 30대와 40대에는 어른의 감정을 연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예요.

슬프게도 라이더에게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와 심장 모두가 여전히 20대 초반에 정체되어 있어요. 더 슬픈 건 여전히 제 눈엔 라이더가 저와 같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요. 오늘의 교훈. 연예인들이나 배우들에게 너무 감정이입하지 마세요. 그 뒤의 상실감은 아무도 보장 못합니다. 그렇다고 미리 좌절하는 것도 금물. 라이더에게도 기회와 시간은 있겠죠. 30대라면 아직 한창 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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