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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목소리에 의존한 속죄의 멜로드라마

<페르소나> Persona, 잉마르 베리만, 1966

지난해 죽은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이 남긴 자서전 <마법의 등>은 웬만한 그의 영화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 부친 살해에 가까운 아버지에 대한 증오, 햄릿을 능가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욕망과 좌절,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선을 넘어간 복잡한 애정관계 등이 거침없이 서술돼 있다. 그의 자서전을 읽는 것은 마치 경험 많은 배우가 혼자 무대에서 펼치는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자서전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하듯 구성돼 있다. 베리만의 숨김없이 모두 털어놓은, 용기있는 고백록은 죄 많은 늙은 노배우의 속죄의 염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침묵하는 여성, 쉴새없이 말하는 여성

베리만은 결혼을 다섯번 했다. 정식 결혼만 따져 그렇다. 자녀가 아홉명이며, 이들이 모두 정식 아내로부터 태어난 것도 아니다. 함께 일했던 여배우치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은 경우가 드물다. 이들 가운데 해리엣 안데르손, 비비 앤더슨, 리브 울만은 오랜 기간 베리만과 동거한 배우들이다. <페르소나>(1966)는 비비 앤더슨과의 관계를 끝내고, 리브 울만과의 열정을 막 싹 틔울 때 발표됐다. 베리만이 <외침과 속삭임>(1972)과 더불어 자신이 갈 수 있는 극한까지 갔다고 말한 작품이다.

베리만의 과거의 여인이었던 비비 앤더슨이 간호사 알마로, 현재의 연인 리브 울만이 연극배우 엘리자베스로 나온다. 엘리자베스는 <엘렉트라>를 공연하던 중 갑자기 연기를 중단하고, 길고 긴 침묵에 들어갔다. 의사의 진찰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몸만 있지, 목소리가 없는 존재가 됐다. 말을 버려, 그녀는 세상과 의도적으로 등졌고, 침묵 속에 들어감으로써 그녀는 언어 이전의 생의 근원으로 방황하는 것이다.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모친을 증오하는 딸 엘렉트라를 연기하다 침묵 속에 빠졌다는 점, 그녀 자신이 아들의 증오를 받을 것이라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점들이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얼핏 이해하게 할 뿐이다.

그녀의 치료를 돕는 인물이 간호사 알마다. 두 여성은 의사가 마련해준 바다의 별장으로 함께 떠난다. 바다, 곧 물이 넘실대는 공간으로의 이동은 엘리자베스의 질병이 치유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몸만 있고 말이 없는, 다시 말해 유아기로 물러나 있는 엘리자베스를 앞에 두고, 알마는 쉴새없이 말을 한다.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엘리자베스에게 언어를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비비 앤더슨의 모노드라마, <페르소나>

알마는 일방적으로 말하고, 엘리자베스는 계속하여 듣는 관계가 반복된다. 영화는 비비 앤더슨, 곧 알마의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엘리자베스와 마주 보며 말을 하는 가운데 알마는 지극한 행복을 느낀다. 알마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처음 ‘거울’을 보고 웃음 짓는 아기의 표정이 바로 저랬으리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그녀는 엘리자베스와의 강렬한 동일시에 빠진다. 그리고 마치 성모 앞에서 죄를 고백하듯, 알마는 숨겨놓았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알마는 약혼자는 전혀 모르는 비밀스런 과거를 갖고 있다. 여름 바캉스 때 어느 해변에서 겪은 일탈적인 섹스의 경험이다. 여기서 알마가 약 10분간 털어놓는 독백은 영화사를 통틀어 최고의 외설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알마는 마치 모든 것을 다 말해야 속죄를 받을 것이라는 루소의 <고백>을 실천하듯, 쾌락의 순간을 모조리 기억해낸다. 관련 장면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독백으로 화면은 진행된다.

알마는 백사장에 다른 여성과 함께 벗은 채 누워 있다. “두 소년이 보고 있어.” “보게 놔둬.” 한 소년이 접근하자 그 여성은 그와 격렬한 섹스를 나눈다. 알마는 바로 옆에 누워 극도의 흥분을 느낀다. 소년이 관계를 끝내자 이번에는 알마가 그와 섹스를 시작한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순간이었어. 정액이 내 몸속에 힘차게 뿌려지는 것 같았지.” 옆에 있던 여성은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다른 소년을 불러, 오럴섹스를 시도한다. 알마는 또 흥분을 느껴 첫 소년과 다시 섹스를 시작한다. 역시 처음처럼 좋았다. 그날 저녁 약혼자가 돌아온 뒤, 알마는 그와도 관계를 가졌지만 낮과는 달랐다.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지만 임신했고, 약혼자의 주선으로 낙태를 했다는 긴 내용이었다.

바로 여기가 베리만 특유의 폭력 같은 에로티시즘이 듣는 이의 심장에 천둥을 치는 순간이다. 그는 늘 이렇게 금기와 터부의 경계를 위반하는 극단적인 멜로드라마로 관객을 위협한다. 이번에는 그 형식이 목소리로 이뤄졌다. 알마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 말을 통해 속죄의 경험을 한 뒤, 동일시의 허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위치로 되돌아온다. 게다가 그녀는 엘리자베스에게도 목소리를, 곧 말을 되찾아준다. 알마가 엘리자베스가 되어, 그녀의 아들에 대한 억압의 기억을 모두 말하는 장면에서다. 말을 되찾은 엘리자베스는 다시 배우의 일상으로, 그녀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준 알마는 치료가 끝났다는 듯 짐을 싸서 별장을 떠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오로지 목소리에 의존한 속죄와 회복의 특이한 멜로드라마가 완성된 것이다. 다음엔 목소리와 사랑을 나누는 미조구치 겐지의 멜로드라마 <우게츠 이야기>(1953)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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