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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애비게일 브레슬린

<님스 아일랜드>를 보고 조디 포스터와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에 조금 놀랐습니다. 둘이 닮지 않았습니까? 제 말은 어린 시절의 조디 포스터와 지금의 애비게일 브레슬린 말입니다. 동그란 얼굴에 우뚝한 코, 그리고 그 커다란 눈을 보세요. 전 <패닉룸>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렇게까지 조디 포스터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애비게일 브레슬린과 조디 포스터를 보면 뭔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님스 아일랜드>에서 애비게일 브레슬린이 연기한 캐릭터 때문이겠죠. 이 영화가 1970년대 초반에 나왔다면 당연히 그 역은 조디 포스터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험한 자연과 맞서 싸울 줄 알고 동물들과 친구로 지내는 용감하고 씩씩한 말괄량이잖아요. 조디 포스터는 정말 이런 역들을 많이 연기했습니다. 몇 십년 동안 포스터의 경력을 따라온 여성팬들도 다 그때부터 시작했지요. 포스터를 ‘지성파’ 배우로만 보면 이 사람 경력을 절반밖에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님스 아일랜드>의 모습을 보고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이미지를 미리 짐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입니다. 브레슬린이 지금까지 연기한 역할들 중에서 <님스 아일랜드>의 님처럼 정직한 말괄량이 소녀는 얼마 되지 않지요. 아마 그에 가장 가까운 역할은 <미스 리틀 선샤인>의 올리브 정도일 텐데, 이것 역시 캐릭터의 외향성이 그렇다는 이야기죠. 올리브는 결코 조디 포스터식 톰보이는 아니잖아요. 브레슬린의 고정된 이미지를 확인하려면 이 배우의 조금 더 조용한 역할들을 보는 게 좋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출연한 <싸인>도 좋죠. 십중팔구 <싸인>의 출연이 캐스팅에 영향을 주었을 <>도 좋고. 최근엔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나 <사랑의 레시피>도 있군요.

이 영화들에서 브레슬린이 보여주는 연기는 예상 외로 정적이고 차분합니다.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에 브레슬린이 캐스팅된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브레슬린은 다른 사람들 말을 아주 잘 들어주게 생겼습니다.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만 봐도 리액션이 굉장히 좋아요. 브레슬린과 연결된 가장 좋은 장면들은 대부분 라이언 레이놀스가 연기한 아버지에 대한 반응이죠. 특히 아빠의 숨겨졌던 흡연과 음주의 역사를 듣고 서글픈 표정으로 아빠를 나무라는 장면을 보세요. (“아빠가 담배도 피웠었어?”) 전 <사랑의 레시피>에서 제가 ‘신경증 환자의 조용한 하소연’이라고 이름 붙인 브레슬린의 리액션 장면도 좋아합니다. 브레슬린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아주 잘 보고 있는 사람이 그것들을 눈치채지 못하는 둔감한 주변 사람들을 나무라는 역할을 굉장히 잘해요. 심지어 나름대로 외향적인 <님스 아일랜드>에서도 그런 장면이 가끔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모든 건 M. 나이트 샤말란에게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합니다. <싸인>은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첫 영화였고 당시 그 아이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였으니 직접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겠죠. 그리고 <싸인>에서 이 아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예쁘고 평범하지만 샤말란 특유의 독특하고 괴상한 질감을 가진 어린 소녀 말입니다.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경력은 그 지점에서 출발한 전문 아역배우가 점점 보편적인 세계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앞으로 이 배우가 나아가야 할 방향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배우로서의 욕망? 아니면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형성된 아역배우의 페르소나? 12살 아이에게 요구하기엔 몹시 묵직한 질문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아이들에게 종종 지나치게 빨리 그 답을 요구합니다. 브레슬린의 차기작인 닉 카사베츠의 <My Sister’s Keeper>만 봐도 내용의 어둠이 장난이 아니란 말이죠. 이 시기를 그 애가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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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임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