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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불러오는 피폐함 <이노센트 보이스>

주인공의 눈망울 초롱 지수 ★★★★★ 라틴음악의 서정성 지수 ★★★★ 미국에 대한 복합적 상념 지수 ★★★

‘전쟁과 소년’은 문학이나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다. 아이들은 다 힘겹게 성장하는 법이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성장통을 앓을 수밖에 없다. <이노센트 보이스>의 주인공 차바(카를로스 파딜라)도 그런 아이이다. 11살 차바는 엄마와 누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간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는 차바는 옷을 만들어 생계를 꾸리는 엄마를 돕는 착한 아들이다. 장난을 좋아하는 밝은 성격의 차바는 같은 반 여자아이 크리스티나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차바의 유년 시절은 내전이 점차 심각해지자 어두운 그늘로 뒤덮인다. 미군이 건네주는 껌을 거리낌없이 받던 차바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정부군과 게릴라 지역 사이에 위치한 차바의 마을은 밤마다 총격전 현장이 되고 그 와중에 이웃집 누나가 총에 맞아 사망한다. 게다가 정부군은 학교로 총을 들고 난입하여 이제 겨우 12살인 차바의 친구들을 징집해간다. 차바는 게릴라가 된 베토 삼촌이 준 라디오로 게릴라 방송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미군과 정부군에 저항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신부가 폭행당하고 학교는 폐쇄된다. 드디어 12살 생일을 맞은 차바는 군대에 끌려갈 나이가 됐다는 사실에 우울해진다. 정부군의 징집을 겨우 피한 아이들은 게릴라 지역으로 떠날 결심을 하고 차바도 몰래 옷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이 영화는 소년이 분노하고 총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이의 눈을 통해 그리다보니 내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보다는 전쟁이 불러오는 피폐함을 체험적으로 전달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0년 농민과 지주 사이에 벌어진 토지 분쟁이 원인이 되어 정부군과 게릴라가 12년이나 전쟁을 벌인 엘살바도르 내전이다. 이 내전에 미국은 정부군을 훈련시킬 군대와 지원금을 보조했다. 주인공 차바는 결국 엄마가 재봉틀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미국으로 떠나는데,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시나리오작가 오스카 토레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멕시코 출신 루이스 만도키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들을 떠올리면 엘살바도르 내전을 다룬 <이노센트 보이스>가 다소 낯설 수도 있다. 할리우드 시절 만도키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중에서도 90년대 멜로영화들은 그에게 지금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중년 여성과 여피 청년의 색다른 사랑을 보여준 <하얀 궁전>(1990), 알코올 중독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 <남자가 사랑할 때>(1994),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가 모티브인 <병 속에 담긴 편지> 등이 그런 영화다. 할리우드 시절을 일단락지은 만도키 감독은 <이노센트 보이스>를 통해 스페인어권 영화로 복귀하는 것과 동시에 중남미의 현실을 영화에 담게 된다.

tip/2005년 베를린영화제 어린이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7번이나 받았다. 그만큼 관객에게 호소력 짙은 영화라는 걸 설명하는 경력이다. 좀 모자라지만 순수한, 차바의 어른 친구 안차 역을 맡은 구스타포 무노츠가 이 영화의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사망한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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