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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위기맞은 민주주의와 말하기의 힘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시드니 루멧, 1957년

1950년대 TV의 대중화시대를 맞아 방송인들이 할리우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전쟁 전에는 유럽의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는데, 아이젠하워 시대에는 단연 TV 출신들이 돋보이는 활동을 선보였다. 이들은 저널리즘 세계 출신답게 시의성이 높은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 그 선두에 시드니 루멧과 존 프랑켄하이머가 있다. 특히 루멧은 데뷔작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로 단숨에 큰 성공을 거둬, TV 연출가의 스크린 도전이라는 새 바람을 몰고 왔다.

헨리 폰다의 말하기의 아름다움

헨리 폰다(1905∼82)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이다. 큰 키에 호감 가는 외모를 가진 그는 부드러운 태도까지 갖고 있다. 그가 다른 배우들에 비해 특히 매력적인 점은 ‘말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음량과 정확한 발음으로 듣는 이를 부드럽게 끌어들인다. 연극 무대에서 연마한 발성법과 말투는 그를 진지한 남자로 인식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존 포드를 만나 <청년 링컨>(1939), <분노의 포도>(1940) 등을 연기할 때 헨리 폰다는 ‘자유를 상징하는 미국인’으로까지 각인됐다. 헨리 폰다의 품위 있는 말하기가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른 경우가 바로 <12명의 성난 사람들>이다.

영화는 연극과 거의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배심원 회의실이라는 하나의 장소에서, 회의라는 하나의 사건이 진행된다. 흑인 청소년이 부친살해죄로 법정에 섰다. 증거물인 칼이 발견됐고, 목격자의 증언도 나왔다. 무엇보다도 범인은 유색인 비행소년이다. 안타깝지만 빈민가에서 종종 발생하는 형사사건이다. 배심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회의실로 향한다. 짧은 시간에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명백한 범죄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유죄에 합의하면 소년은 교수형을 받아야 한다.

배심원들은 의견을 내놓기 전에 투표부터 먼저 한다. 1차 투표에서 ‘유죄’로 만장일치의 결과가 나오면, 회의는 더이상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짐작하겠지만 헨리 폰다가 유일하게 ‘유죄가 아님’(Not Guilty)이라고 밝힌다. ‘무죄’라고 확신할 수도 없지만, ‘유죄’라고는 더더구나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배심원들은, 날씨는 푹푹 찌는데 좀 배웠다고 폼잡는 영웅주의자가 나타나서 일이 꼬였다는 인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짜증을 내며 꼬나보는 그들에게, 헨리 폰다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를 해봅시다.”

영화는 헨리 폰다가 원작을 구입하여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자신의 매력을 십분 이용하기 위한 맞춤용 드라마(Vehicle)다. 그렇지만 그의 모습이 과도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는 배심원 8번으로 구석 자리에 앉아 있다. 시드니 루멧이 만약 데뷔 감독으로서의 약점 때문에, 주연 겸 프로듀서인 대스타 헨리 폰다의 요구를 조절하지 못했다면 이 작품은 영화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10여분의 도입부를 빼고 나머지 80여분이 전부 토론하는 장면인데, 헨리 폰다뿐 아니라 12명 전원이 주연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연기가 배분돼 있다.

매카시즘으로 황폐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은유

배심원들의 구성은 미국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극우 매카시즘 옹호자, 거들먹대는 증권사 직원, 자수성가한 사업가(리 제이 콥), 빈민촌 출신 유대인, 남부유럽 이주민의 후손으로 보이는 노동자, 아무 생각이 없는 야구광, 세일즈맨, 노인 의사, 광고회사 직원 등 직업, 인종, 세대, 빈부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헨리 폰다는 건축가이다. 시대적 배경 때문이겠지만 여성 배심원은 한명도 없다(그러고 보니 영화에는 단 한명의 여성도 나오지 않는다).

한 소년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지만 배심원들은 회의에 진지하게 참여하지는 않는다. 광고회사 직원은 농담이나 하고, 야구광은 티켓을 썩힐까봐 안달이며, 극우주의자는 자신의 정치적 윤리를 떠벌리기에 바쁘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배심원 제도가 이렇게 허술하게 운영되는지를 알면 기겁을 할 정도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이 영화는 위기를 맞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 제작됐다. 배심원실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의회에 가깝다. 지난 10여년간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며, 민주주의의 정신인 관용과 다원주의를 얼마나 황폐화시켰는지를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배심원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토론은 무시하고, 다수의 힘으로 한명의 반대자를 깔아뭉갤 듯 몰아붙인다. 이런 폭력적인 획일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헨리 폰다의 이성과 이에 근거한 ‘말’이다. 소심해 보이고 수동적인 그가 처음에는 한두 마디로, 나중에는 이성과 합리에 의한 문장으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가는 게 이 영화의 백미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은 불관용의 사회라면 미국뿐 아니라 어디든 소망되는, ‘말하기의 매력’에 대한 아름다운 문제작이 발표된 것이다. 오직 회의실이라는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한 심리극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카메라 감독 보리스 카우프먼의 역할도 컸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를 만든 지가 베르토프의 동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다 전쟁 중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다음엔 시드니 루멧이 역대 최고작으로 꼽은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The Best Years of Our Lives, 1946)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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