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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경쟁력없는 경쟁력

애플사(社)의 CEO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학의 졸업식장에 껄렁하게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자신이 내린 생애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가 대학을 중퇴한 것이었다고 말했단다. 명문대 졸업생들의 부푼 자부심에 끼얹은 이 썰렁한 축사는 전세계 네티즌의 열광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연설도 유명하다. 그는 하버드대학의 명예졸업장을 받는 자리에서 전통적 기부나 자선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자신이 내린 생애 최고의 결정 중 하나로 아마 대학 중퇴를 꼽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스티부 잡스나 빌 게이츠라도 한국에서라면 별볼일 없었을 게다. 여기서는 대학 졸업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 보수적 사회에서 식장에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스티브 잡스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말하는 빌 게이츠는 ‘좌파 평등주의 빨갱이’라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스티브 잡스의 제품발표회는 예술적 퍼포먼스에 가깝다. “이 노트북은 두께가 1.9cm”라고 말하는 것과 얇은 서류 봉투 속에서 슬며시 초박형 노트북을 꺼내는 것은 애초에 효과가 다르다. 이 미학성은 PT만이 아니라 애플 제품의 디자인 자체의 원리다. 디지털 시대의 생산력은 이렇게 예술적 창의성에서 나온다.

빌 게이츠에 따르면, 시장의 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창조적 자본주의’다. 실제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사회적 양극화다. 그런데도 한국의 지배층은 구태의연하게 성장 제일주의를 외친다. 모자란 사회적 상상력이 한국 자본주의를 창조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에서는 툭하면 ‘경쟁력’을 외친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이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데에 있다. 세계는 상상력과 창조성의 경쟁을 벌이는데, 그들의 굳은 머릿속의 ‘경쟁력’은 획일적인 입시경쟁일 뿐. 도대체 국제중학교에 들어가 명문대 가려고 밤늦게까지 토플 공부를 하는 초등학생에게 상상력과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회적 상상력의 결여야말로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술생태계가 파괴되어 있어, 대기업의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그 효과가 중소기업으로 흐르지 못하는 게 우리 경제의 문제다. 아무리 대기업의 수출을 늘려도 성장이 잘 안 된다면, 뭔가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대한 정부여당의 대책은? ‘삽질’로 내수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고용창출을 위한 대책은? 건국절 기념으로 비리 기업인들 대거 사면해주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은 기껏 욕먹어가며 사면해줬더니 왜 대기업에선 신규고용을 안 해주냐고 볼멘소리나 하고 앉았다. 비리 기업인 사면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정부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한마디로, 우리의 문제는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 모두에서 경제운영의 창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그 특유의 복고 취향에 힘입어 이 경향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개발도상국인 중국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것을 고민하는 즈음에, 이 정권은 747을 추진하겠단다. 그것도 앞으로 10년간 계속 추구할 목표로 삼겠단다.

경쟁력없는 경쟁력을 신처럼 신봉하는 굳은 머리들에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19세기에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졸업생 중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이에게 상을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제도가 도입된 이후 100년 동안 그 대학은 수학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한다. C. P. 스노의 저서 <두 문화>에 나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