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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스토리] 광고의 완성도, 돈에 비례한다?

비싼 모델, 물량공세 없이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로 사람을 움직이는 광고가 최고의 광고

얼마 전 거리에서 전단지를 하나 받아들었다. 신장개업한 술집의 전단지였다. 늘 힐끗 보고 쓰레기통에 넣게 되는 전단지들은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것 같다. 새로 문을 열었다는 메시지, 개업 인사로 서비스안주가 있다는 공지, 준비된 메뉴와 식당 내부 사진. 그날 길에서 주운 전단지도 눈길을 끄는 문장 하나가 없었다면 곧바로 쓰레기통을 찾았을 것이다.

“낮술은 역시 ***에서.” 대부분의 술집은 밤 영업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낮술’이라는 틈새시장을 이렇게 대놓고 공략하지는 않는다. 용기있는 차별화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낮술이 ‘땡기는’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데도 성공한 광고다.

적어도 나라면, 낮술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술집에 가게 될 것 같다. 수억원의 제작비를 들이고, 세련된 아트 워크로 만든 광고만이 주목받을 만한 광고는 아니다. 맥줏집 개업 전단지에서도,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는 과외 아르바이트 홍보 문구, 길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술집 종업원의 명함에서도 광고의 ABC를 발견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평범한데 ‘국민요정’급 모델을 써서 소비자에게 인지되는 광고나 수십억원에 달하는 매체 광고 비용을 들여 반복적으로 세뇌시키는 광고보다, 받아든 순간 그날 저녁 회식장소로 정하게 만드는 A4크기의 술집 전단지가 더 훌륭한 광고일 수 있다.

광고에도 경제논리가 적용된다. 크리에이티브가 좋으면 그만큼 적은 매체량으로도 효과를 얻을 수 있듯 배경 화면을 멋지게 꾸밀 필요도 없고, 비싼 모델을 사용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광고일 것이다.

길거리 전봇대에 소박하게 붙어 있는 전단지가 눈에 띈다. 개업한 치과의사가 치과를 홍보하는 모양이다. 치과 이름을 크게 써넣지도, 깨끗한 병원 실내를 보여주는 사진도 없다. 하지만 한눈에 치과를 홍보한다는 것을 알겠고, 전화번호 부분을 떼어갈수록 이빨이 하나둘씩 빠지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치과 방문의 필요성까지 자극한다.

요즘 아파트 입구에도 이렇게 떼어가는 방식의 전단지들은 꽤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이 치과 광고처럼 한번 더 아이디어를 진전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돈’이 훌륭한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멋진 모델, 충분한 매체 물량, 최고의 제작 스탭과 최첨단 촬영 기자재와 컴퓨터그래픽 효과….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광고의 만듦새도 나날이 세련되어지고 있다. 당연히 TV광고 한편의 제작비가 몇 억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광고의 진짜 힘은 아이디어에 있다. 광고주들은 늘 요구한다. 돈 안 드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광고쟁이들은 그래서 괴롭고, 오늘도 낮술 생각이 난다. 그런데 때론 돈 안 드는 아이디어, 돈이 적게 드는 아이디어는 겉멋 든 광고쟁이보다 한푼 두푼 아끼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머릿속에 더 많이 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