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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모리모토] “일본인들이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김성훈 사진 김진희 2008-09-30

<가미카제 이야기>의 감독 리사 모리모토

신이 일으키는 바람, 가미카제의 특공대원들이 출격준비 중인 비행기 앞에 서 있다. 무표정한 이들은 천황과 일본제국 앞에 기꺼이 한 목숨 바치겠다는 충성어린 맹세를 한다. 바로 이것이 가미카제 특공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제5회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 초청된 <가미카제 이야기>는 그때 정말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가미카제의 진짜 이야기다. 이 작품을 연출한 리사 모리모토가 한국을 처음 찾았다. 그녀는 뉴욕대에서 아시아·태평양·아메리카 연구소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하였고, 현재 남편과 함께 대표로 엣지우드픽처스를 운영하면서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가리지 않고 활동 중이다.

-이 시점에서 가미카제의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가 궁금하다. =사촌동생으로부터 외삼촌이 가미카제 대원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내 외삼촌은 유머러스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인데, 가미카제 대원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크게 놀랐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놀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것을 소재로 다룬 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가미카제의 어떤 면에 흥미를 느꼈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지난 60년 동안 미국에서 일본인에 대한 인식은 좋아졌다. 하지만 가미카제에 대한 이미지는 그대로다. 사전, 연구 자료에서도 가미카제하면 ‘천황에 미친 사람’으로 표기되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내가 그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당신은 뉴욕에서 나서 자란 일본인 2세다. 미국, 일본 사이에 있는 당신의 정체성이 자료조사를 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자료조사 과정에서는 이 문제를 미국, 일본 양쪽 시각에서 균형있게 바라보는 데 유리했다. 그리고 인터뷰 때는 상대방(가미카제 대원)이 나를 생김새와 상관없이 미국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미카제 이야기>의 구성은 균형감이 있다. 뉴스 클립과 역사배경을 토대로 한 거시사적인 접근과 가미카제 대원들의 인터뷰를 통한 미시사적인 접근 모두 다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원 4명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의 ‘가미카제 이후의 삶’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배경 설명이 필요했다.

-처음 기획할 때 스스로 정한 원칙이 있나.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가미카제를 논쟁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그간 서구의 역사가들이 가미카제를 다루어온 방식 아닌가. 그것은 이 다큐멘터리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일본인들이 가미카제 대원들에게 절대로 하지 않는 질문을 내가 대신 하자는 것이다. 가령,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대원들이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일본인들이 그분들에게 절대로 하지 않는 질문이다. 세 번째는 촬영분량(인터뷰)을 풍부하게 확보한 다음에 작품의 방향은 편집상에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 라인은 촬영 이후에 결정되었다.

-가미카제 대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처음에 가미카제 대원들의 모임에 갔었다. 파티 같은 자리였는데, 내가 가미카제에 대한 작품을 촬영하는데 인터뷰를 해줄 분이 없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주지 않더라. 그런데 운 좋게도 지인이 ‘아나’(4명의 대원들 중 한명)씨를 소개해줬고, 아나씨가 또 다른 대원들을 소개해주는 식으로 4명을 모을 수 있었다.

-인터뷰한 내용 중 당신의 구성과 상관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내용도 많을 것이다. 편집시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가장 큰 기준은 4명의 대원들의 이야기다. 대원들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가 우선적인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가미카제 비행장, 사람들이 피신한 지하벙커, 가미카제가 출동한 산꼭대기 등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모두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이번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인터뷰 전략’이라는 주제로 디렉터 클래스를 한다고 들었다. 그 내용을 미리 엿듣고 싶다. =(웃음) 간략하게 말하자면 첫째, 인터뷰 대상에게 신뢰를 심어줘라. 둘째, 대상이 카메라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줘라. 왜냐하면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대상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긴장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 그리고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다음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자전에 관한 극영화다. 그리고 나는 영화든 다큐멘터리든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 형식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한국을 왔다고 해서 나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규정짓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경계를 가리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