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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봅시다] 중년 여성이 하룻동안 겪는 판타스틱한 모험
이화정 2008-10-02

위니프레드 왓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

어느 날 갑자기 입주가정교사로 전전하다 클럽 가수의 매니저가 된 페티그루.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는 중년의 페티그루가 겪는 하루 동안의 판타스틱한 모험극이다. 출판 당시 파격을 불러일으킨 원작의 반향, 영화 속 스크루볼코미디의 전통, 화려한 런던 사교계의 과거를 재현한 영화의 비주얼 등을 통해 페티그루의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지 살펴본다.

1. 숨겨진 제인 오스틴, 위니프레드 왓슨

1938년 위니프레드 왓슨이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의 초고를 보냈을 때 메튠 출판사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시 여성들이 즐겨 읽던 소설은 한적한 전원소설이 주류였다. 그런데 왓슨의 소설은 런던의 웨스트엔드 사교계의 화려한 배경, 입주가정교사라는 여성 직업의 변화, 화려한 클럽이 등장하는 전혀 새로운 영역이었다. 더군다나 소설 속 여성들은 사랑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거나 자유연애를 일삼는 등 대담하고 파격적인 연애관을 설파하고 있었다. 주변의 우려에도 왓슨은 이 소설의 성공을 확신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출간 당시 소설은 미국, 영국을 거쳐 독일판까지 출간되는 기염을 토했다.

왓슨은 출판계에 뒤늦게 등장한 신데렐라였다. 직장 생활을 하던 왓슨이 소설을 쓴 건 순전히 우연에서 비롯된다. 29살 되던 해 소설을 즐겨 읽던 왓슨은 어느 날 “내가 이것보다 더 잘 쓸 수 있어”라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당시 유행을 따른 전원소설 <산꼭대기>(1935)를 통해 출판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이후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를 비롯, <저쪽으로> <삼단뛰기> 등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는 가정주부인 그녀를 소설에만 전념하지 못하게 했으며, 결국 런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떠남과 남김>(1943)을 끝으로 작가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는 영국의 페르세포네 북스에 의해 2000년 재출간되었으며, 왓슨은 ‘숨겨진 제인 오스틴’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2. 스크루볼코미디의 전형을 따르는 대사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를 이끌어가는 주동력은 탁구공을 주고받듯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있다. 피아니스트 마이클이 자신이 가난하다고 청혼을 하자 라포스는 “당신도 돈 받고 일하잖아! 그 돈을 모아보던가!”라고 맞받아치며, 마이클이 이에 질세라 “그깟 몇푼에 내 영혼을 파는 거 같다고!”라고 응수한다. 페티그루와 조의 첫 만남에서 둘은 ‘스카프’ 하나로 잘도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조는 자신이 디자인한 스카프를 하고 있는 페티그루에게 “스카프가 정말 잘 어울려요”라며 짐짓 자신의 존재를 떠보며, 사정을 모르는 페티그루가 “선물 받은 건데. 내 소품 중 가장 아름답죠”라고 하자 “나 같은 아부쟁이보다 더 하시네”라며 비꼰다. 이 같은 대사의 향연은 영화 장면마다 끊이지 않고 등장하며, 영화를 흥미롭게 끌고나간다.

이는 1930년대 크게 유행했던 스크루볼코미디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스크루볼코미디는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이 보여줬던 큰 몸동작과 소란스런 분위기로 대변되던 슬랩스틱코미디에 뒤이어 인기를 얻은 코미디의 한 장르다.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으로, 재치있는 입담과 말발의 향연이 웃음을 유발한다. 주로 로맨틱 코믹 장르에서 사용되며, 신분이나 환경의 차이로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녀가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는 동안 성적인 암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맛깔스런 대사발이 전형적이고 판에 박힌 극의 내용을 보완해주는 이른바 양념 역할을 한 셈이다. 스크루볼코미디를 활용한 대표작인 작가는 에린스트 루비치, 프랭크 카프라, 하워드 혹스 등이다.

3. 1930년대 런던, 벨 에포크 시대의 절정

<섹스 앤 더 시티>

1930년대판 <섹스 앤 더 시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한 아이템은 이 영화의 볼거리다. ‘벨 에포크’ 시대의 절정을 보여주는 전세계 유행 아이템에는 당시 여성들의 적극적 사회 진출로 인한 여성의 성공과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에는 1929년 대공황부터 1939년 2차대전, 40년대 초반까지 샤넬, 발렌시아가 등 디자이너들의 스타일과 장 폴 고티에, 안나 수이로 대표되는 런던 거리 패션까지 총망라된다. 특히 사교계의 주요 인사가 초대된 란제리 패션쇼는 패션을 넘어 당시의 섹스, 문화에 관한 단서로까지 작용한다. 의상뿐 아니라 런던의 명소 또한 주목해야 한다. 사보이 호텔의 내부는 패션쇼 세트장으로, 리볼리 볼룸은 영화 속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했다. 이 밖에 1930년대 고증을 거쳐 빅벤, 포춘 극장, 코벤트 가든, 보로우 시장, 프리메이슨 홀, 벨그레이브 광장 등 런던의 명소들이 화면 속에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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