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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사생활> 여자친구들이 헤어질 땐 어떤 일이 생길까?

멕 라이언의 신작 <내 친구의 사생활> 뉴욕 현지보고

관람 전부터 괜히 편견을 갖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요즘 ‘뜨는’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이언맨>이나 <배트맨>처럼 슈퍼히어로가 나오지도 않고, 유명한 감독의 작품도 아니다. 작품성있는 독립영화도 아니고, A급 할리우드영화도 아닌 것이, 중년 여배우들의 재치있는 한줄짜리 대사로 일관하는 TV광고를 보고 있자면, 괜스레 ‘패스’하고 싶은 영화가 바로 <내 친구의 사생활>이다.

<내 친구의 사생활>(The Women)은 클레어 부스 루스의 희곡으로 브로드웨이에서 대성공을 거둔 뒤 39년 조지 쿠커의 연출로 영화화된 <여인들>(The Women)을 바탕으로 했다. 걸작으로 꼽히는 <여인들>을 리메이크해서인지 <내 친구의 사생활>을 곱게 보는 평론가는 드물었다. 평론 집계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10%만이 호의적인 평을 했다. 대표적인 평론가 중 유일하게 <시카고 선타임스>의 로저 에버트만이 호평을 했다. 이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너무 호의적인 평가를 한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표지로 책을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친구의 사생활> 역시 광고나 평론에서 받은 편견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스토리나 연기 면에서 기대 이상의 영화다. 에버트의 평처럼 이 영화는 1939년작의 리메이크라기보다 원작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노마 셔러, 조앤 크로퍼드, 로사린드 러셀, 메리 볼랜드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했던 원작은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주인공이 루머와 가십을 묵묵히 견디며, 남편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위트로 남편을 다시 찾게 되는 해피엔딩이다. 당시 뉴욕 사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상류사회의 모순을 풍자해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과 달리 <내 친구의 사생활>은 가십이나 사회상보다는 4명의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중심을 이뤘다.

월 스트리트 백만장자의 아내로 경제적으로는 안정됐지만, 자신의 생활이 없이 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메리(멕 라이언)와 패션매거진 편집장 실비(아네트 베닝), 맨해튼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이를 4명이나 낳고도 더 갖고 싶다는 에디(데브라 메싱), 그리고 레즈비언 플레이걸이자 유머 에세이 작가인 알렉스(제이다 핀켓 스미스) 등이 메인 캐릭터다. 일상적인 일이 반복되던 이들에게 큰 사건이 터진다. 실비가 바쁜 스케줄을 쪼개 삭스 피프스 애버뉴에 들렀다가 수다스러운 매니큐어리스트 타냐 역의 데비 마자르로부터 향수 카운터 직원인 크리스탈과 메리의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가십을 듣는다. 결국 이 소문은 메리에게도 알려지고, 실비와 에디, 알렉스는 메리를 위로하고 싶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다. 크리스탈은 부자들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전문적인 ‘골드디거’. 메리가 누리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메리의 남편은 평생이 보장되는 복권 같은 존재다. 그래서 크리스탈에게는 실비의 간접적인 협박이나, 메리의 ‘여자 대 여자’로서의 호소도 별반 효과가 없다. 크리스탈의 반응은 차갑지만, 사실이다. 메리가 남편을 포기하거나, 남편이 그녀를 떠날 수는 있어도 아무도 메리의 남편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 여기에 계속되는 판매부수 부진으로 해고당할까 걱정하는 실비는 메리를 더욱 처참하게 만드는 잘못을 저지른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하게 된 메리는 이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게 된다.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세심하고 밀도있는 접근

4명의 친구가 등장하는 것이나, 남자문제로 고민하는 내용 등 설정이 <섹스 앤 더 시티>와 비슷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이 좀더 성숙하고, 좀더 현명한 판단이나 결정을 한다. 특히 원작의 전통을 따라, <내 친구의 사생활>에서 역시 남자배우가 출연하지 않고,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마지막 장면만 제외). 메리의 이기적인 아버지와 외도하는 남편, 그리고 판매부수에만 집착하는 실비의 상사 등이 친구들 사이의 대화나 전화통화 등으로 다뤄지지만 실제 나오지는 않는다.

<내 친구의 사생활>은 사실 14년 전에 시작됐다. 94년 <CBS> 시트콤 <머피 브라운>으로 정상을 달리고 있는 작가 다이앤 잉글리시의 팬이었던 멕 라이언과 줄리아 로버츠가 <여인들> 리메이크를 위해 각본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3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었던 잉글리시는 1년 뒤에야 각본을 완성해 프로덕션 자체가 물 건너간 상태가 됐다. 이후 몇 차례 영화화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현화되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연출까지 맡게 된 것이다. 잉글리시는 인터뷰에서 TV영화나 시리즈, 또는 연극으로 대신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있었다며, 여자들만 출연하고, 그들 사이의 우정을 다룬 내용을 영화로 제작하기는 어렵다는 많은 이들의 단언에 생긴 오기 때문에 영화화가 가능했다고 한다.

14년간 멕 라이언을 주연으로 마음에 두고, 꾸준히 연락을 해왔던 잉글리시는 라이언 외에도 할리우드 스타가 아닌 연기파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잉글리시는 라이언이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연기력을 높게 평가했다. 아네트 베닝은 “재치있고, 유머러스”하며, 데보라 메싱을 보면 과거 유명 코미디언 루실 볼이 생각난다고 했다. 에바 멘데스의 즉흥연기 능력과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넘치는 에너지를 꼽았다. 메리의 어머니 캐서린 역으로 <머피 브라운>의 주인공 캔디스 버겐이, 뉴욕 유명 가십 칼럼니스트 베일리 스미스 역에는 캐리 피셔, 메리에게 결혼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할리우드 메가 에이전트 리 밀러 역의 베트 미들러, 가정부 매기 역의 클로리스 리치맨, 매니큐어리스트 타냐 역의 데비 마자르가 조연으로 출연한다. 특히 캐리 피셔는 10여분간 출연하지만 장면 전체를 체육관 트레드밀 위에서 뛰면서 연기해 눈길을 끌었다. 잉글리시는 “캔디스가 출연 안 하면 영화를 못 만든다”고 했고, “베트에게는 너없이 영화를 만들면 지구가 멈출지도 모른다”고 하는 등 베테랑 여배우들에게 공갈 협박을 해서 출연하게 했다고. 영화 전반에 상류사회의 젊은 백인 여성뿐 아니라 연령이나 인종 면에서도 다양한 층의 여성으로 캐스팅을 했다.

감독은 물론 출연배우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내 친구의 사생활>은 남자와의 사랑이 아니라 여자친구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것이라는 것이다. 잉글리시는 “이 영화는 여자친구들이 헤어질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라이언은 “남자와 헤어지는 것보다 친한 친구를 잃는 것이 훨씬 더 가슴 아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사회에 참석한 남자 관객 역시 처음에는 여자친구나 부인 때문에 억지로 따라왔지만, 여자친구들의 우정과 이들이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올 여름 미국에는 유난히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한 영화가 많았다. 5월에 개봉한 <섹스 앤 더 시티>를 비롯해 <맘마미아!>, <청바지 돌려입기2>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내 친구의 사생활> 역시 개봉일을 앞당겼다고. 박스오피스에서 <섹스 앤 더 시티>는 1억5264만달러를, <맘마미아!>는 1억4119만달러, <청바지 돌려입기2>는 4375만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이에 비해 <내 친구의 사생활>은 개봉 2주째 4위에서 7위로 떨어졌고, 9월22일 현재 총 192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할리우드 수준으로 볼 때 저조한 성적이지만, 1600만달러의 예산을 들이고, 메이저 할리우드 배급사가 아닌 뉴라인 계열사 픽처하우스가 담당한 것 등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박스오피스 성적이다.

10~30대 젊은 남성을 위주로 마켓이 돌아가고 있는 미국시장. 이들은 극장에 자주 가고, 본 영화를 수 십번씩 또 보고, DVD가 나오면 소장까지 하는 소중한 고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들에 비해 엄마와 부인, 직장인인 동시에 나이든 부모까지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극장에 자주 가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영화는 코너로 밀리나게 마련. 그러나 여성 관객은 올 여름 극장가에서 많은 영화들을 통해 영화사가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가 꾸준히 제작되며 팬층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서부영화처럼 계속될지 아니면 캐리커처가 돼버린 아시안 공포영화 리메이크 붐처럼 전락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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