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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대만 뉴웨이브가 태어나기 전의 기록
주성철 2008-10-03

지난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발견의 기쁨을 줬던 영화는 바로 대만의 차이양밍 감독이 만든 <하얀 비키니의 복수>(1981)였다. 원제는 그냥 평범하게 <여자의 복수>지만 그들이 복수할 때 떼로 하얀 비키니(정확하게는 하얀 천 정도)를 입고 나오기 때문에 영화제에서는 그런 제목을 붙였다. 홍콩에 사는 체조 스타 출신의 링링(양혜산, 사진)은 일본으로 건너갔던 친구 메이화가 보낸 편지를 읽고 비행기에 오른다. 야쿠자 조직에서 일했던 그가 역시 야쿠자가 자신의 동생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보호를 부탁했던 것. 결국 메이화는 죽게 되는데 메이화가 숨겨놓은 마약이 그 동생에게 있다고 생각한 야쿠자는 동생을 잡아두고, 꾸링링은 일본에 사는 옛 체조 선수 친구들을 규합해 동생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우리 영화 <홍콩에서 온 마담 장>(1970), <여자 형사 마리>(1975)처럼 관능적인 여자 킬러를 내세운 영화다. <홍콩에서 온 마담 장>에 분홍색 쫄바지를 입은 여자 킬러 군단이 있었다면, <하얀 비키니의 복수>에는 나풀거리는 하얀 천으로 중요 부위만 가린 여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성에 대한 관음증과 남성에 대한 복수라는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해괴한 줄타기를 하는 이런 영화들은 한국과 대만 모두 일본 B무비의 영향 아래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도 <하얀 비키니의 복수>가 좀더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엑스포 70 동경작전>(1970) 같은 우리 영화가 도입부에 오사카 만국박람회 장면을 일부 삽입해서 일본에서 촬영한 것처럼 눈속임을 썼다면,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하라주쿠와 후지산 장면 등 실제로 거의 일본에서 로케이션을 했다. 더욱이 대만 역시 혹독한 검열 아래 신음했다는데, 단검으로 눈을 찌르거나 컨테이너에 남자를 넣은 채로 중장비로 마구 뒤흔드는 장면 등 꽤 살벌한 묘사가 즐비한 것을 보면 우리의 검열이 더 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배우를 겸했던 차이양밍 감독은 구양준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쇼브러더스에서도 활동했으며 우리나라에서 한·홍 합작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뽀얀 얼굴의 글래머 양혜산도 홍콩과 대만을 오가며 꽤 유명했던 액션배우다.

함께 상영한 호우지란 감독의 <타이완 블랙 무비를 말하다>(2005)는 바로 그런 유의 대만 ‘블랙 무비’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흐름의 시초는 바로 차이양밍의 <착오적제일보>(1979)였는데 그 시나리오를 썼던 주연평 감독은 이후 <이역> <화소도>를 만들었고 최근 <쿵푸덩크>를 연출한 대만 중견감독이다. 이들 블랙 무비는 간혹 빛나는 비전으로 억압적인 대만사회의 해방구가 되기도 했지만, 저렴한 상업성으로 왜곡된 영화계 시스템을 안착시키기도 했다. 대만영화의 현재를 에드워드 양의 <광음적고사>(1982)나 허우샤오시엔의 <샌드위치맨>(1983)으로 시작된 뉴웨이브의 역사로 기억하고 왕우나 장철, 그리고 적룡의 유배지 정도로 기억해온 나에게 이들 영화는 무척 신선한 충격을 줬다. 허우샤오시엔 이전에도 대만영화는 힘차게 약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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