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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봅시다]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안현진(LA 통신원) 2008-10-09

디지털 시대에 보내는 섬뜩한 경고 <이글 아이>

휴대폰으로 대화를 감청하고, GPS 시스템을 통해 당신의 위치를 찾아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2008년 영화로 만들어진 <이글 아이>는 정보가 곧 권력임을 이야기하는 액션스릴러다.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는 ATM, CCTV, 신용카드, 교통 감시 카메라 등 편의를 위해 도입된 기술이 대부분으로, 이 기술들이 악용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낸다. 주머니 속 휴대폰처럼 익숙한 테크놀로지에 현재라는 배경이 주어졌지만 다분히 SF적인 <이글 아이>의 이모저모를 뜯어보자.

1. Reference_더없이 익숙한 공포

<이글 아이>

사실 <이글 아이>의 설정이 새롭지는 않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빅 브러더’나 ‘과학기술의 반격’ 같은 테마를 놓고 SF소설과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통해서 예습과 복습을 반복해왔다. D. J. 카루소 감독은 조지 오웰의 <1984>와 <워 게임>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변주했다고 말하지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아이, 로봇> 등의 근작들에서도 그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글 아이>를 식상하다고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레퍼런스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제하는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오래된 두려움이다. 여기에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도 한몫한다. 한 사람이 만나게 되는 CCTV의 수가 1일 평균 200대에 달한다는 미국의 현실과 런던 거리에만 4천대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영국의 현실이, 한국의 현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Voice_거역할 수 없는 기계의 명령

“너에게 임무가 주어졌다.” “불복종은 죽음이다.” 다짜고짜 전화해서는 목숨이 위태로운 임무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명령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리아’(ARIA)라는 슈퍼컴퓨터. 영화의 배경인 시카고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영화’라는 혹평을 퍼부었지만, 관객이 정말 궁금해했던 것은 아리아에게 목소리를 빌려준 주인공이었다. 사무적인 억양마저도 배제된 차가운 목소리는 누가 연기했을까? <이글 아이>의 할리우드 프리미어에서 계속해서 쏟아지는 같은 질문에 샤이어 라버프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고, 미셸 모나한은 “분명 유명한 사람”이라고 짧게 응수했다. 하지만 비밀은 로자리오 도슨에게서 새어나왔다. 도슨은 이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목소리가 줄리언 무어의 것이라고 밝힌 뒤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얼버무렸다고. 무어의 요청으로 크레딧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감독은 사전제작 단계에서 애틀랜타 철도청에서 발행한 차내 안내방송에 대한 조사자료를 읽었는데, 남자 목소리보다 여자 목소리를 사람들이 귀담아듣는다는 내용이었다. 감독은 “상황에 따라 여자 목소리가 더 권위있고 설득력있게 느껴진다”며 미스터리와 불안감을 높이기 위해 여자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3. Technology_가깝거나 혹은 오지 않을 미래

그렇다면 <이글 아이> 속 감시체계는 현실에서 적용이 가능할까? 영화에서 뉴스 아나운서가 말하는 것처럼 휴대폰 전원을 꺼도 내장된 마이크와 카메라를 움직여 감청과 감시가 가능한 걸까? 전 국방부 분석가이며 <Spies Among Us>의 저자인 아이라 윙클러는, 영화나 TV 속의 기술을 다루는 인터넷매거진 <파퓰러메커닉스>(www.popularmechanics.com)와의 인터뷰에서 “<이글 아이>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묘사하는 정보수집기술은 현재 과학 수준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생각해본 적 없을 만한 용례”라고 했다. 실제로 영화의 개연성을 위해 시나리오 과정에서부터 참여한 전문가들도 영화 속 기술에 대해 2년 안에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윙클러는 아리아처럼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가공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 영화 속 감시체계가 아직은 공상과학에 불과함을 분명히 했다. 또 아리아가 안면인식기술을 이용해 타깃을 확인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현재 과학 수준으로는 안면인식기술로 군중 속 인물의 신원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오히려 소규모 인원에서 용이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맥거핀으로 사용된 폭발물 ‘헥스’에 대해서도, 국방부 소속 무기개발기관의 한 대변인은 “물리학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4. 또 다른 이글 아이_권력이 된 기술의 눈

높은 곳에서 멀리까지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을 뜻하는 ‘이글 아이’. 영화에서는 ‘빅 브러더’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지만, 현실에서는 보안회사나 감시 카메라의 이름으로 주로 쓰인다. ‘이글 아이 서베일런스’를 구글에 검색해보면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 독립된 법인으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영화 제목 <이글 아이>는 영어 사용자들에게 ‘감시’라는 의미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보안업체 말고도 ‘이글 아이’가 가진 감시의 의미를 사용한 예는 더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64년 애리조나주에서 공화당이 ‘이글 아이 작전’을 실행한 적이 있다. 1964년 미국은 시민권자 중에서도 문맹이 아닌 사람에 한해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 문맹이 아님을 확인하는 것은 합법적인 절차였다. 공화당은 애리조나주의 소수당을 견제하기 위해 이 작전을 수행했고, 부정확한 영어 사용자는 투표권이 무효화됐다. 이글 아이 작전은 말하자면 반대표를 줄이기 위한 공화당의 음모였던 것. 2년 뒤 애리조나 주법은 이 작전에 의한 무효화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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