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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시아란 힌즈

제가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를 본 건 순전히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에이미 애덤스 때문이지만, 중간에 짠하고 왕자님처럼 등장한 시아란 힌즈를 보고 반가워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전 늘 이 뚱한 외모의 중년 남자를 무척 로맨틱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미스 페티그루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물론 연속극 왕자님처럼 화려한 외모와 언변을 과시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공허한 상류사회의 삶에 지쳐 우울해지고 배도 많이 나온 보통 부자 아저씨에 불과하죠. 여기서 그가 ‘왕자님’의 공식적인 기능을 수행하게 돕는 건 그의 재력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골목에 버려진 낡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지난 전쟁 때 죽은 친구들과 연인들을 회상하고 곧 닥칠 다음 전쟁에 대해 염려하면서 서로를 위로할 때, 전 이 영화의 로맨스가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외모만 봐도 썩 잘 어울렸지요. 지금의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골격이 뚜렷하고 조금은 중성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단단한 얼굴을 하고 있지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잘생겼다고 할 수 없는 힌즈의 투박한 외모는 맥도먼드의 그런 외모를 조용히 살려주면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시아란 힌즈의 팬들이나 제가 이 사람을 ‘로맨스’ 배우로 보고 있는 건, 그가 두편의 고전 각색 <BBC>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설득>과 <제인 에어>요. 그는 이 두편의 작품에서 프레드릭 웬스워스와 에드워드 로체스터를 연기했지요. 영문학 사상 가장 무뚝뚝한 남자주인공을 순서대로 연기한 것입니다. 물론 로체스터에 대해 따진다면, 10년 뒤 토비 스티븐스가 연기한 발랄깜찍 로체스터가 원작에 더 충실한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사람들이 머릿속에 담고 있는 로체스터의 기본 이미지는 심술궂고 무뚝뚝한 중년 남자이니, 시아란 힌즈가 특별히 정통성에서 어긋나는 로체스터를 연기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캐릭터들은 원작을 넘어 고유의 전통을 이룩해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시아란 힌즈가 이 두편의 고전 각색물에서 성공적이었던 건 그가 적극적으로 시청자에게 아양을 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양을 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지요. 그의 무뚝뚝함은 원작의 무뚝뚝함을 넘어섰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웬스워스를 시아란 힌즈가 그린 것처럼 무뚝뚝하게만 그리지는 않았어요. 독자들은 적어도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고 그가 왜 그렇게 목석처럼 행동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힌즈가 주연한 로저 미첼의 <설득>에서는 그 정보들이 제거되어 있었죠. 그건 <제인 에어>에서도 마찬가지였으니, 어떻게 보면 원작들이 힌즈의 스타일과 적당히 협조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왜 로맨스와 맞았던 걸까요? 음, 원론만 따진다면 무뚝뚝한 미스터리는 로맨스에 도움이 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무뚝뚝하지만 친절하기도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서스펜스가 조성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로맨스의 흥분으로 연결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연속극엔 수많은 싸가지 왕자들이 등장하는 거고. 이들과 힌즈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가 그 미스터리를 진솔한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는 서툰 연인의 어눌함을 표현하는 데 도가 텄어요.

물론 그는 이런 식의 아저씨 연인들만 연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요원에서부터 러시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그가 연기 폭은 넓은 편이죠. 요새 시청자는 제가 앞에 언급한 작품들보다 그가 율리우스 카에사르로 나온 미니시리즈 <롬>을 더 기억할 거예요. 하지만 게임의 규칙은 여전히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적당한 무뚝뚝함과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미스터리를 긴장감을 위해 활용하는 것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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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