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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이해하는 감독의 여성영화 <미쓰 홍당무>
이화정 2008-10-15

공효진 지못미 지수 ★★★★ 청소년 상영불가 지수 ★★★ 남성 캐릭터 불필요성 지수 ★★★★

충무로에 흥미로운 영화가 도착했다.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에서 여성간에 존재하는 미묘한 심리를 포착, 충무로의 러브콜을 받아온 이경미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장편 데뷔작을 연출했다. 영화는 기존 충무로 영화와는 사뭇 다른 호흡으로 10억원의 저예산이 무색할 정도의 색다른 지점들을 보여준다. 짝사랑과 불륜, 소통이라는 지극히 익숙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전혀 다른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29살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 몹쓸 외모와 남다른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그녀는 고등학교 때 스승이자 지금은 동료교사인 유부남 서 선생(이종혁)을 짝사랑한다. 그런데 예쁜 외모의 인기 교사 이유리(황우슬혜)의 존재로 미숙에게 위기가 닥친다. 자신을 중학교 영어교사로 전근가게 한 것도 모자라 서 선생과의 애정라인까지 감지된 것. 질투에 사로잡힌 그녀는 급기야 전교 왕따이자 서 선생의 딸 서종희와 비밀스런 동맹을 맺기 시작한다.

<미쓰 홍당무>는 영화의 완성도에선 아쉽지만, 캐릭터의 구축에서만큼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영화 속 모든 여성들은 골고루 이 영화의 설명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외모로 인기를 얻지만 결국 외로운 이유리, 비뚤어진 성격으로 왕따인 서종희, 남편의 외도로 얼음장처럼 굳은 성은교(방은진). 모두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내 주변의 여성이다. 질투와 시기, 우정이라는 감정으로 엮어진 영화 속 여성들은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싸우고 공감하고 화해한다.

영화의 동력은 끊임없는 대사에 있다. 양미숙은 짝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속사포 같은 고백으로 일관하며, 안면홍조증 때문에 찾은 피부과에서도 그곳이 정신과라도 되는 듯 속내를 털어놓아 상대를 질리게 한다. 왕따학생 서종희와의 우정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 라이벌인 이유리와도 대화는 그치지 않는다. 서 선생의 부인 성은교가 불륜에 맞서는 방법 역시 몸싸움이라는 고전적인 퇴치가 아닌 대화다. 이 끊임없는 대사의 고리는 소재의 진부함을 뛰어넘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독특한 장치다.

결국 대화의 정체는 ‘수다’다. 여성의 소통방식은 흔히 남성영화에서의 몸이 아닌 말에 있다. 수다로 싸우고, 수다로 사귀고, 수다로 이해하는 여성의 방식은 충무로에 여성감독이 희귀하듯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진기한 방식이다. 독백과 대화를 오가는 대사는 시종일관 코믹의 코드를 건드리며 관객을 폭소하게 만들고, 급기야 씁쓸하게 캐릭터를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여성을 이해하는 감독의 여성영화는 그래서 반갑다.

TIP/ 영화 속 카메오,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은 양미숙의 고교 수학여행 사진 촬영에서 촬영을 못 보고 지나치는 행인으로 또, 피부과 의사의 이름으로 출연한다. ‘시나리오에 반했다’는 봉준호 감독은 양미숙이 다니는 영어학원의 직장인 수강생으로, <친절한 금자씨>의 정정훈 촬영감독은 수학여행 사진 촬영기사로 출연한다. 또 ‘종희’는 이 영화의 분장감독 송종희의 이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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