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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멕 라이언

전 될 수 있는 한 보톡스나 성형수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전공도 아니려니와 불필요한 짐작과 억측으로 생사람 잡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들이 배우라는 직업에 직접적인 장애물이 된다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 얼마 전 <내 친구의 사생활>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조지 쿠커의 1939년 영화 <여인들>의 리메이크로, 아네트 베닝이 로잘린드 러셀이 맡았던 역을, 멕 라이언이 노마 셔러의 역을 맡은 영화죠.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별로라고 대답하겠습니다. 39년 영화의 톡톡 튀는 위트나 독기도 없고 그렇다고 21세기의 관점으로 원작의 텍스트를 신선하게 재해석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대충 중간만 가려다 주저앉은 게 보여요.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려는 건 영화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아네트 베닝과 멕 라이언의 얼굴에 대해서죠. 두 사람 할리우드식으로 관리를 받은 게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요. 특히 멕 라이언은요. 그 구체적인 시술 방법에 대한 추정은 삼가기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멕 라이언의 얼굴은 골격에서 살을 다시 뜯어냈다가 젊은 시절의 모습에 맞추어 재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젊은 시절과 닮았고 주름도 얼마 없지만 뭔가 심하게 어색하고 굳어 있고 불편합니다.

‘할리우드식 관리’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 스타라는 사람들은 원래 외모로 반은 먹고 들어가니 직업을 유지하고 팬들에게 봉사하려면 관리를 받아야죠. 어느 정도 젊게 보이면 역할 따기도 유리하고요. 여기서 문제는 시술을 받았다는 게 아니라 결과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냥 전 멕 라이언이라는 배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 사람의 재건된 얼굴이 그렇게 낯설고 어색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DVD를 구입해서 보는 열성팬이 아니라면 대부분 우리나라 관객은 <케이트와 레오폴드>나 <인더컷>에서 라이언을 마지막으로 봤습니다. 그동안 5, 6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 정도의 시기에 그 정도의 나이라면 사람이 확 바뀌는 게 보이죠.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는. 둘째, 우리는 라이언을 중년 이상의 모습으로 상상할 수 없습니다. 늘 라이언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찍었던 1989년에 맞추어져 있죠. 이런… 거의 20년 전입니다. 아무리 뜯어고치고 관리해도 20년의 세월을 돌릴 수는 없어요.

슬프게도 라이언의 경력은 시계를 억지로라도 89년에 고정시키지 않으면 먹히지 않았습니다. 영화 스타로서 라이언의 매력은 화사한 매력의 로맨틱코미디 여자주인공이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제대로 된 경력을 이으려면 경력을 다변화하고 나이대에 맞는 역할을 찾는 게 필수죠. 라이언 자신도 그 사실을 알아서 비슷비슷한 로맨틱코미디들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왕정복고>나 <헐리벌리> <커리지 언더 파이어>와 같은 영화를 통해 탈출구를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라이언 특유의 붕 뜨고 맹한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전면적인 개선은 불가능했죠. 게다가 그러는 동안 불륜 스캔들이 터져 지금까지 그나마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었던 로맨틱코미디 주인공의 이미지도 날아가버렸으니 정말 사방이 꽉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 때문에 지금의 라이언은 그냥 딱해 보입니다.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녹아버린 빙산 끄트머리와 같은 남은 입지 위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이죠.

점점 나이를 제대로 먹는 것이 배우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줄리 크리스티, 메릴 스트립, 주디 덴치, 헬렌 미렌과 같은 배우들을 보세요. 이들은 모두 얼마나 아름답나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닮아라!’라고 말하는 건 무신경하며 게으른 반응입니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는 게 완벽한 수영복 몸매를 가지는 것처럼 드문 자연의 축복이라는 걸 왜 모르죠? 멕 라이언이라고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이건 다 운인 겁니다. 적어도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최첨단 성형수술 기법이 개발되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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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임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