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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부산에서 만난 노배우, 유조명
주성철 2008-10-24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의외의 인물은 바로 홍콩 배우 유조명이다. 그가 누구냐면 <천녀유혼>(1987)에서 기나긴 혓바닥을 자랑하며 소천(왕조현)을 잡아두었다가 다른 요괴에게 팔아넘기려고 했던 1천년 묵은 나무 요괴였다. 양팔을 벌린 채 혀를 길게 쭉 내빼 공격하던 그는 여자와 남자 목소리를 섞어내며 공포감을 자아냈었다. 그런 그가 다소 거동이 불편한 모습으로(1931년생의 노배우다) 서극과 함께 부산을 찾았지만 공식 게스트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세련된 모자를 쓰고 학생처럼 가방을 멘 그를 보고서 ‘뭐 하는 할아버지인고?’라며 궁금해하고 있는데, 서극과 그의 아내 시남생은 자신의 마스터클래스 시간에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유 선생이 자리를 함께했다’며 청중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유조명 역시 마치 아버지처럼 서극의 빈 잔에 물을 따라주기도 하면서 자리를 빛내줬다. <접변>(1979)은 바로 서극의 데뷔작이었고 유조명 역시 <접변>이 뒤늦은 영화 데뷔작이었다. 그 둘은 그 영화 하나로 나이를 초월한 오랜 우정을 이어왔고, 유조명은 서극이 직접 세운 전영공작실 영화들에 단골로 출연하며 명연기를 선보였다. <천녀유혼>에 짙은 메이크업의 중성적인 캐릭터로 출연하게 된 것도 정소동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서극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다.

1931년 홍콩에서 태어나 주로 방송국 탤런트로 활동해온 유조명은 거의 쉰살이 다 된 나이에 서극의 데뷔와 동시에 영화계로 뛰어들었다. <접변>에서는 혼란을 피해 티베트에 살다가 거의 몇 십년 만에 다시 중원으로 돌아온 학자 역할이었다. 전혀 무예를 할 줄 모르는 캐릭터였지만 사람을 습격하는 나비떼의 비밀을 푸는 주인공이었다. 이후 <천녀유혼>을 지나 <소오강호>(1990)에서는 영호충(허관걸)의 스승인 화산파 고수로 나왔다. 역시 나이가 있다 보니 <유금세월>(1989)에서는 장만옥의 아버지로, <아미성년>(1989)에서는 이려진의 아버지로, <고양의생>(1992)에서는 임달화의 아버지로 나왔다. 물론 <접변> 당시만 해도 상당한 미남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살짝 흰 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하면서는 왠지 ‘잘생긴 오맹달’ 같은 느낌을 줬다. 그럼에도 선한 역, 악한 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개성 넘치는 연기를 보여줬다. 최근에도 진목승의 <삼차구>(2005)나 옥사이드 팡의 최근 영화들에 출연했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작품은 웨인왕의 <뜨거운 차 한잔>(1989)이다. 할리우드 배우나 다름없는 러셀 웡이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아버지 친구의 딸을 소개받아 결혼하게 되는데, 바로 그 영화 속 러셀 웡의 장인어른이 바로 유조명이었다. 러셀 웡은 바로 <엄마의 장례식>이라는 작품으로 올해 부산을 찾은 게스트였다. 그와 잠깐 얘기를 나눴더니 그런 사실은 모르는 눈치였다. <뜨거운 차 한잔>의 장인과 사위가 다시 부산에서 만나 오픈토크(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지만)나 대담 같은 것을 했어도 감격적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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