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걸작 오디세이
[걸작 오디세이] 무심한 기록, 새로운 물결

<400번의 구타> Les quatre cents coups, 프랑수아 트뤼포, 1959

1959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장편 데뷔작 <400번의 구타>를 들고 칸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이 영화제의 명예심사위원장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였다. 트뤼포에게는 두명의 영화적 아버지가 있는데, 영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 앙드레 바쟁과 영화 만들기의 열정을 전수한 로셀리니가 그들이다. 로셀리니는 불과 28살의 나이로 문제작을 들고 나온 트뤼포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환영했고, 또 영화제에서 그의 영화를 알리기에 분주했다. <400번의 구타>가 분명 새 시대의 도착을 알리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의미를 제때에 알아본 데는 로셀리니의 역할이 컸다. 스승의 원조 덕분인지 트뤼포는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영화계에 등장했다.

로셀리니와 트뤼포의 영화적 부자관계

로셀리니는 프랑스 영화인들과 친했고, 또 그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전후에 그가 영화를 발표하기 시작하자, 앙드레 바쟁을 비롯한 프랑스 비평가들은 로셀리니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단번에 거장의 반열에 추대했다. 프랑스 비평가들의 호평이 없었다면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은 그 출발이 한참은 늦어졌을 수도 있다. 1950년대 중반 들어 로셀리니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재혼한 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여러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모두 흥행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영화 만들기에 애를 먹던 로셀리니는 가족을 이끌고 파리로 이주한다. 이때 거장의 프랑스 거주에 고무되어,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헌사를 내놓았던 비평가들이 훗날 누벨바그의 기수가 되는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등이다. 특히 트뤼포의 로셀리니를 향한 흠모는 특별했으며, 활동을 일시 중지하고 있던 로셀리니에게 활동재개에 대한 강렬한 의욕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길로 트뤼포는 로셀리니의 조수가 되어, 그의 집에 거의 살다시피하며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도 함께했다. 트뤼포의 나이 25, 26살 때였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행동하고 일하며 새로운 계획들을 잡았지만, 아쉽게도 작품은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트뤼포는 “삶을 찍는다”라는 로셀리니의 리얼리즘 미학을 몸으로 배웠다(앙투안 드 베크, 세르주 투비아나 지음,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로셀리니의 리얼리즘이 사회적 대서사에 주목하고 있다면 제자인 트뤼포의 리얼리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에 주목한다. 로셀리니가 영화가 그럴듯한 허구를 매끄럽게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할리우드적인 신화를 다큐멘터리적 형식으로 깼다면 트뤼포는 그런 형식의 변화를 개인의 영역에까지 확대했다.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이웃 같은 사람들이 등장해 별 시답잖은 일상적인 행동들을 하는데, 이것이 한편의 영화가 됐다. 다시 말해 <400번의 구타>라는 누벨바그의 탄생을 알리는 대표작이 발표된 것이다.

그 뒤, 키스를 훔치고 일본 여자를 만나고…

영화는 아름답고 화려한 파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건물들, 광장들, 가로수들, 또 에펠탑으로 이어지는 파리의 모습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까지 상상케 한다. 그런데 파리의 하늘을 비추던 카메라가 어느 학교의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현실은 싹 바뀐다. 지저분하고 오래된 건물에 신경질적이고 고압적인 교사, 그 선생에게 ‘왕따’를 당하는 앙투완 드와넬(장 피에르 레오)이라는 문제아 등이 파리의 외부와는 전혀 다른 억압과 가난의 세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영화는 앙투완의 일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머니, 계부와 함께 사는 사실상 버림받은 소년이다. 그가 트뤼포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게 하는 영화적 분신이라는 점은 알려진 대로다.

영화는 관객의 재미를 보증할 대단한 갈등도 없고, 또 호기심을 끌 만한 반전을 심어놓는 데도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다. 결석과 가출을 밥 먹듯 하는 문제소년의 낮과 밤을 간편한 카메라로 단순하게 그려낸다. 마치 <자전거 도둑>(비토리오 데 시카, 1948)의 아버지와 아들이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로마 시내를 걸어다니는 것을 카메라가 무심히 따라가듯, 갈 데 없는 안투완의 발길을 카메라는 뒤쫓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직하게 닮기만 하면 된다는 로셀리니의, 더 나아가 네오리얼리스트들의 태도가 밴 셈이다.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던 소년은 결국 소년원에 갇힌다. 그가 축구를 하다 무작정 탈출을 시도한 뒤, 바닷가의 파도 앞에서 더이상 도망갈 데가 없을 때,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400번의 구타>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 소년이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카메라는 그곳까지 따라간다. 영화사에 유례가 없는 ‘앙투완 드와넬’ 시리즈가 계속하여 발표되는 것이다. 소년은 소녀를 사랑하고(<앙투완과 콜레트>, 1962), 제대 뒤에 애인을 다시 만나 와인 창고에서 키스를 훔치고(<훔친 키스>, 1968), 그녀와 결혼한 뒤 일본 여자를 만나 모험을 즐기고(<결혼생활>, 1970), 그리고 결국 이혼하여 혼자 사는 중년(<바쁜 사랑>, 1979)의 작가가 된다. 스크린 속의 인물이 우리처럼 시간과 함께 늙어가고 있으며, 스크린 속에도 우리와 같은 하나의 세상이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다음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Paisa', 1946)을 보겠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