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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현재를 충실히 기록 <러블리 로즈>
장영엽 2008-11-05

동물사랑 지수 ★★★★ 신파 지수 ★ 꽃 파는 소녀 등장 지수 ★★★★

베트남에서 <누들>을 만들었다면 이런 영화가 나왔을까. <러블리 로즈>는 베트남의 항구도시, 사이공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진 열살 소녀 투이의 이야기다. <누들>에서 국제 미아가 된 중국 소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녀가 제 발로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투이는 탐욕스런 공장주인 삼촌의 타박을 피해 사이공으로 도망친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그녀지만 사이공에는 이미 투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너무 많다. 투이는 같은 또래 친구로부터 교복을 입고 장미꽃을 파는 일을 소개받고, 도시의 밤거리를 누비며 꽃을 팔기 시작한다. 거리에서 만난 스튜어디스 란과 동물원 사육사 하이는 소녀의 좋은 말동무가 되어준다. 곧 단짝 친구가 된 세 사람은 란이 머무는 호텔과 하이가 일하는 동물원을 오가며 서로에게 가족 같은 존재가 된다.

<러블리 로즈>가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아이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어른. 이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냉혹한 도시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이러한 주제의 영화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훼방꾼(이 영화에서는 투이의 삼촌이다)과 시련 끝에 주어지는 해피엔딩까지, 이 영화는 아이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영화가 취하는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새로운 방식의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오히려 주인공 소녀의 딱한 사정보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건 사이공이란 도시가 처한 현실이다. 이곳의 아이들은 식당이나 가게, 대나무 공장에서 적은 보수로 일하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부모 또한 이를 말리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 “교과서 살 돈이 필요하다”는 말로 어른들에게 꽃을 권하는 아이들의 거짓말은 애교에 가깝다. 핸드헬드로 촬영한 <러블리 로즈>는 사이공, 나아가서는 베트남의 현재를 충실히 기록한, 실현 가능한 극영화다. 베트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스티븐 거저 감독은 자신이 살던 곳의 명과 암을 핸드헬드 카메라에 그대로 담았다. 네온사인과 이국적인 옷차림의 여자들로 가득한 사이공 번화가의 이면에는 쳇바퀴 돌듯 가난한 일상을 반복하는 뒷골목 아이들이 있다. 그 모습을 가감없이, 연민없이 그대로 조명함으로써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얻었다. 표현방식으로 신파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영화다.

Tip/ 스티븐 거저 감독이 <러블리 로즈>를 만들며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변화하는 사회의 본질을 담아낸다”였다. 그래서 그가 택한 촬영방식이 바로 15일간의 ‘게릴라 촬영’이다. 거저 감독은 베트남 정부가 허가한 30곳의 장소에서 진행된 이 영화의 촬영을 보름 만에 모두 마칠 것을 스탭들에게 당부했다. 즉, <러블리 로즈>에는 15일간의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베트남의 현재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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