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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일상에서 건져 낸 거대 서사

<전화의 저편> Paisa’ , 로베르토 로셀리니, 1946

로베르토 로셀리니(1906∼77)는 로마의 대단한 부잣집 아들이었다. 건설업을 하는 부친은 로마 최초의 영화관 소유자 중 한명이었다. 로셀리니는 어릴 때부터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영화를 보았다. 그의 부모는 집에서는 프랑스어만 쓰게 했다. 집안은 무솔리니 정권과도 비교적 친하여 로셀리니는 일찍이 파시즘 시절 최고의 감독들 아래서 연출을 배웠다. 그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평범한 순응주의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는 비밀리에 반정부 좌파와도 활발하게 교류를 맺었다. 그 결과물이 좌파 작가인 세르지오 아미데이와의 합작인 <무방비 도시>(1945)와 <전화의 저편>(1946)이다. <무방비 도시>로 네오리얼리즘을 전세계로 알린 두 사람은 다시 힘을 합쳐, 더욱더 엄격한 리얼리즘 형식의 걸작인 <전화의 저편>을 내놓는다.

파시스트-좌파 모두와 친교 맺은 로셀리니

평범한 일상의 모음으로도 얼마든지 거대한 서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로셀리니는 <전화의 저편>에선 더욱 엄격한 형식 실험을 한다. <무방비 도시>에선 관객의 관심을 붙들기 위해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끌어 썼다. 피나(안나 마냐니)와 빨치산 대원과의 사랑이 그것이다. <전화의 저편>에선 이런 극적인 요소를 일부러 뺐다. 현실이 허구보다 더욱 허구적인데, 인위적인 창작은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전화의 저편>은 모두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부터 1944년 겨울 빨치산 대원들의 비참한 죽음까지, 카메라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출발하여 북쪽 포강 유역의 격전지까지 이동한다. 로셀리니 특유의 다큐멘터리 스타일 그림들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계속하여 무너뜨린다. 실제 장면을 찍었는지, 연기를 하는지 혼동될 정도로 영화는 현실을 닮아 있다. 아니 네오리얼리스트들의 말대로 현실이 그대로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첫 번째 에피소드. 카르멜라라는 시칠리아 처녀와 어느 미군의 이야기다.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고, 이탈리아 사람들도 알아듣기 어려운 시칠리아 사투리가 그대로 나온다. 원제목(Paisa’)은 시칠리아 방언인데, 같은 고향 사람을 뜻한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시칠리아 출신 미군을 ‘파이자’라고 부른다. 지독하게 가난한 맨발의 처녀 카르멜라는 미군의 야간작전을 돕다 한 미군과 함께 독일군에 살해된다. 카르멜라는 미군을 죽인 독일군에 총을 쏘다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다른 미군은 시칠리아의 ‘암캐’가 자신들을 배반하고 동료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 나폴리의 ‘고아’ 소년과 흑인 미군의 이야기다. 이렇게 이야기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이탈리아 사람과 미국인과의 관계로 진행된다. 미군의 군항인 나폴리에는 얼마나 많은 소년 거지들이 득실댔던가(그리고 지금도). 세 번째 에피소드. 로마의 ‘창녀’ 프란체스카와 술 취한 미군의 이야기다. 네 번째는 피렌체의 ‘화가’ 출신 빨치산 대장과 미국인 간호사와의 관계다. 피렌체 사람답게 전쟁 전엔 화가였던 대장은 산에서 게릴라전투 중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미국인 간호사는 목숨을 걸고 우피치 박물관의 복도를 지나간다. 텅 빈 미술관의 벽은 약탈된 이탈리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섯 번째는 북쪽 독일군과의 전선에서 멀지 않은 수도원의 ‘수도승들’과 미군 군종들과의 만남이다. 마지막인 여섯 번째에선 포강 지역의 ‘빨치산’과 미군이 연합하여 독일군과 싸우는 전투를 다룬다. 빨치산 대원들은 모두 붙들려 교수대에 목이 걸리거나, 배 위에서 손이 묶인 채 하나씩 바닷속으로 던져진다. 잔인하고 무참한 죽음의 순간이 영화의 끝이다.

지독하게 평범한 이들의 지독한 모순

로셀리니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리는 데만 노력했다. 빨치산이라고, 미군이라고 좋게만 혹은 영웅적으로만 그리진 않았다. 또 적군이라고 독일군을 나쁘게만 묘사하지도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이타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기적이기도 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전쟁이 현실이 된 공간에서 보여주는 모순적인 태도들을 관찰한다.

외국 군인에게 냉정했던 카르멜라가 미군의 죽음에 동정심을 느껴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지금은 표독하게 변해버렸지만 로마의 창녀도 한때는 샘물처럼 순결한 처녀였다. 쥐새끼같이 귀찮아 보였던 고아소년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야만 하는 시대의 피해자이고,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화가는 빨치산의 두목이 돼 있다. 또 전투 앞엔 용감한 빨치산들도 교수대 아래에선 공포감으로 옷에 오줌을 싸는 평범한 남자로 돌아온다.

이들이 단 하루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서 겪는, 당시로선 일상이 된 사건들이 묶여 있다. 매일 벌어지는 사회면의 평범한 기사를 보듯, 영화는 6개의 사건들을 무심하게 보여주기만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평범한 사건들은 한데 엮어, 이탈리아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침에 공장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노동자의 발길만 따라가는 ‘단순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네오리얼리스트의 선구자, 로셀리니의 미학이 정점에 서는 순간이었다.

다음엔 리얼리즘과는 정반대로 과장이 매력인 필름누아르 가운데 빨리 찍기의 전설처럼 간주되는 작품인 에드가 울머의 <우회>(Detour, 1945)를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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