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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순정만화>
김용언 2008-11-26

이연희 예쁘다 지수 ★★★★ 드라마틱한 사건 지수 ★ 띠동갑 커플 공감 지수 ★★★

서른살 동사무소 직원 연우(유지태)는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여고생 수영(이연희)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다. 수영이 교복에 필요한 넥타이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연우의 넥타이를 반 강제로 빌린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서히 친해진다. 동사무소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는 강숙(강인)은 지하철역에서 스쳐간 하경(채정안)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경의 냉담한 반응에 상관없이 강숙은 저돌적으로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류장하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이었으며, 이후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감독 데뷔한 바 있다. 그리고 강풀 원작의 <순정만화>를 연출하면서, 자신이 참여했던 주요 작품들의 장점들을 전부 끌어오려 한다. 이를테면 따스한 가족애(<8월의 크리스마스>), 연애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절제하는 방식과 유지태의 맑은 매력(<봄날은 간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순하고 따스한 감성을 모두 담아내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홍은동이나 고덕동 등 단층집과 낡은 아파트촌, 동네 속에 폭 안긴 듯한 주민센터, 떡볶이와 빙수를 푸짐하게 차리는 분식점 등이 아직까지 곳곳에 남아 있는 공간들을 공들여 취사선택(심지어 극 중 동네 이름도 순정동이다), 사랑에 상처받았거나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이들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영화 전반에 걸쳐 잔잔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하지만 결국 모두가 용기를 내어 행복해지기 전까지, “난 아저씨가 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든가 “우리 보는 사람도 없는데 저 모퉁이까지만 손잡고 갈까요?”, “상처 줘. 괜찮아. 내 맘 아프지, 니 맘 아프냐?” 같은 착한 대사와 상황이 너무 자주 되풀이되기 때문에 ‘평범함을 강조한 판타지’라는 느낌을 떨치긴 힘들다. 주인공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곤경에 처하더라도 성내거나 복수심 따위 품지 않는다. 그들은 가만히 참거나 울음을 삼키고, 순정한 사랑의 힘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꿔나갈 뿐이다. 그들이 간직한 이별이나 죽음의 상처가 설핏 내비칠 때조차 온전히 멜로적 감수성의 도구로 환원되다 보니, 삶의 결보다는 어여쁘고 팬시한 비주얼이 더 많이 부각된다. <순정만화>라는 제목에 온전히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tip/ <에덴의 동쪽> 초반 연기력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이연희가 여기선 제 나이에 맞는 수영 역을 맡아 어른보다 용감한 여고생의 사랑스런 매력을 한껏 과시한다. 드라마 초반만 보고 이연희에 대해 쑥덕거렸던 이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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