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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봅시다] <나라 노트>는 수수께끼 같아
안현진(LA 통신원) 2008-12-25

네오 팝 세대 대표작가 요시토모 나라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은 알쏭달쏭한 다큐멘터리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티스트의 뒤를 따라다녔건만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은 별로 없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한다. “말로 표현하는 걸 잘 못해요. 그래서 책을 썼어요.”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 영화의 내용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요시토모 나라에 대한 몇 가지다.

1. 요시토모 나라는 누구?

<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

요시모토 바나나가 익숙한 탓일까? 사람들은 종종 그의 이름을 요시모토 나라라고 잘못 말한다. 성과 이름을 혼돈하는 경우도 있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읽으면 성인 나라가 앞서야 하는 것이 맞다. 요시토모 나라는 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가 사용한 이름.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라고 일본식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녀, 강아지, 고양이 등 친근한 소재를 독특한 이미지로 화폭에 옮겨 이름을 알린 네오 팝 세대의 대표작가. 요시토모 나라는 1959년 일본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에서 태어났다. 라디오, 격투기, 록 뮤직, 라이브 공연에 심취해 10대를 보냈고, 아이치 현립 예술대학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이듬해 독일의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유학했고, LA·런던·뉴욕·시카고 등 유럽과 미국에서 전시를 가졌다. <I DON’T MIND, IF YOU FORGET ME> <Nothing Ever Happened> <From the Depth of My Drawer> 등은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인기를 모은 전시들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아이가 성기를 내놓고 있거나, 톱·총·칼 등의 무기를 들고 피를 흘리는 등 기괴함과 불경함을 양념처럼 곁들였던 초기작들과 다르게 최근작들의 배경은 더욱 단순해졌고 표현방법은 다양해졌다. 색연필, 파스텔 등을 주로 사용했던 과거와 다르게, 아크릴, 플라스틱 등으로 재료의 사용범위도 넓어졌다. 반쯤 눈뜬 볼멘 아이의 얼굴보다 멍한 듯 허공을 응시하는 단정한 분위기의 소녀가 많아진 것도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다.

2. 그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A to Z>

<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의 종착점, 요코하마에서의 <A to Z> 전시는 나라와 창작집단 graf, 16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만들어졌다. 알파와 오메가가 시작과 끝을 의미하듯, <A to Z>는 요시토모 나라라는 아티스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야심에서 출발했다. A부터 Z까지 문패를 단 26채의 ‘작은 방’이 거대한 요코하마의 창고형 전시장 안에 설치됐다. 높이, 형태, 관점 등 전시의 관람 조건을 다양화한 ‘작은 방’들은 때로는 문틈으로 빼꼼히 들어다보아야 하고, 때로는 허리를 숙여야 작가의 의도에 접근할 수 있다. 천장에 뚫린 구멍에 머리를 넣으면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지기도 한다.

전시 밖에서 찍은 사진

요시토모 나라의 작은 방 작업에는 graf의 멤버 도요시마 히데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시가 열리는 도시에 도착하면 둘은 현지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아 목재상을 찾아간다. 재료를 구입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일 외에도 제작에 참고할 만한 헛간이나 창고를 발견하면 사진으로 기록해둔다. ‘작은 방’은 입체보다는 평면작업으로 채워진다. 걸어놓고 감상해야 하는 작품들보다는 스케치나 습작에 가까운 낙서들, 채색을 하다만 그림들로 채워진다. 한켠에는 어딘지 그의 작품과 닮은 구석이 있는 봉제인형이 놓이기도 한다. 그가 처음으로 ‘작은 방’을 만들었을 때, 독일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는 나라가 학생일 적에 사용하던 작업실과 분위기가 닮았다고 말했다. ‘작은 방’은 학생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요시토모 나라의 마음속 고향 같은 존재다.

3. <작은 별 통신>과 <나라 노트>

한국에 출간된 요시토모 나라의 책은 <작은 별 통신>과 <나라 노트> 2권이다. <작은 별 통신>은 일본 잡지 <H>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것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단상이나, 대학 시절, 유학생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만난 사람들, 해외 전시회 등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예술가로서의 철학도 엿볼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 표지나 뮤지션의 음반 커버는 작업하지만, 기업의 이미지 광고 등 상업적인 곳에 의도하지 않은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격조있거나 유창한 글솜씨는 없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요시토모 나라를 바라보기엔 적합한 자료다.

<작은 별 통신>이 요시토모 나라라는 ‘작은 별’과 외부를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통로의 역할을 한다면, <나라 노트>는 조금 더 내밀하다. <나라 노트>는 나라의 홈페이지 HAPPY HOUR에 올린 일기를 엮은 책이다. 일기라는 것이 그렇듯, 수수께끼 같은 느낌에 갸웃거릴 때도 많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 오히려 진솔하게 다가온다. 한밤중에 독일에는 있을 리 없는 요시노야(일본식 덮밥 체인점)에 가고 싶다는 향수병이나, <내일의 조>의 주인공처럼 씩씩하게 살겠다는 다짐, 외국의 도시로 작품을 포장해 보내면서 귀찮아하는 마음들이 페이지마다 숨어 있어 훔쳐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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