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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는 시나리오] <1724 기방난동사건>

천둥은 빚 수금에 내몰리는데…

때는 1724년. 조선 20대 왕 경종의 치세는 4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해 7월 <조선왕조실록> 기사는 “천재지변이 겹쳐서 나타나고 장마와 지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흉흉한 분위기를 전한다.

천둥(이정재)은 <조선왕조실록>이 전하는 궁중의 복잡한 암투와는 전혀 관계없는 마포의 삼류 ‘양아치’다. 자질구레한 동네 패싸움으로 소일하던 천둥의 주막에 평양 기생학교를 수석 졸업한 아리따운 기생 설지(김옥빈)가 잘못 배달돼 온다. 첫눈에 설지에게 빠진 천둥. 그러나 설지는 당대 일급 건달인 명월향의 주인 만득(김석훈)에게 매인 몸이다. 우연은 겹친다고 했던가. 천둥의 주막으로 조선 주먹계의 큰형님인 양주파의 두목 짝귀가 찾아온다. 천둥은 짝귀와 사소한 시비로 ‘다구리’를 붙다가 러키 펀치 한방으로 그를 실신시킨다. 엉겁결에 양주파의 우두머리에 오른 천둥. 두 남자의 대결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든 여균동 감독은 강명관 부산대 교수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란 저서에서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실과 지배 계층이 살아온 얘기만을 전할 뿐 저잣거리를 휘저었던 민초의 삶은 관심 밖이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그렇게 잊혀졌던 민초의 삶을 복원해 2003년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원작처럼 CG로 떡칠된 천둥과 만득의 막싸움으로 영화를 끝낼 수는 없는 법. 시나리오 급수정 들어간다.

천둥이 권력을 업은 만득과의 정면 대결에서 승리하기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일대일 다구리에서는 승리했지만, 수하들을 볼모로 잡은 만득의 야비한 책략에 걸린 천둥은 결국 무릎을 꿇는다. 만득의 오른팔이 된 천둥은 몰락한 양반집을 돌아다니며 빚을 받아내는 수금 일에 내몰린다. “관훈방 대장간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째 집, 김 참판 나으리! 돈 300냥을 꾸어갔으면 갚아야 할 것 아니오!”몸에 용 문신을 새기고 김 참판네 사랑방에서 배째라 하던 천둥은 수금에 성공한다. 그러나 천둥에게 돌아오는 돈은 엽전 두어푼. 천둥은 “저희 식구도 좀 챙겨달라”고 조르다 따귀를 맞는다.

세력을 확장해가던 만득은 청나라로 조공 무역을 떠나는 사신단에 자리를 얻는다. 한양을 비운 만득의 눈을 피해 천둥은 조직을 재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사이 천둥과 설지의 사랑도 불타오르고, 둘은 북악산 기슭의 물레방앗간으로 숨어들어 거친 정사를 나눈다. 결국 조직 대신 사랑을 택한 천둥. 그는 장부를 조작해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만득이 돌아오는 날. 도성 문은 ‘인정’(밤 10시께 종을 28번 쳐 알렸다)에 맞춰 닫힌다. 천둥은 약속 장소인 청계천 오간수문(지금의 청계천6가) 앞에서 설지를 기다리지만, 그는 오지 않는다. 천둥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만득은 설지에게 술 시증을 시키며 장부를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드러난 천둥의 음모. 분노한 만득은 설지를 앞세워 오간수문으로 향한다. 시시각각 좁혀오는 만득의 무리에게 쫓긴 천둥은 오간수문 바위 틈에 도피 자금을 숨기고 도성을 떠난다. 그리고 양주파를 규합해 명월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만득의 계략에 걸려 큰 상처를 입고, 설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때마침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보위에 오른다. 동시에 만득은 그를 비호하던 권력자들과 함께 최후를 맞는다.

영조는 천둥의 올곧은 정신을 기려 “아~그 모습 참으로 익스트림하구나!”로 시작되는 <삼강행실도> 증보판을 간행한다. 그러나 전날 과음한 당직 사관의 불찰로 천둥의 사연은 사초에 기록되지 못한다.

그로부터 다시 280년이 흐른 2004년. 청계천 문화재 발굴단은 옛 오간수문 터에서 상평통보 600여개가 한꺼번에 묻혀 있는 돈 꾸러미를 찾아낸다. 천둥의 시대 가치로 따지면 쌀 세 가마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고 한다. 그 돈이 발견되던 날, 하늘이 실신하고, 땅이 시껍했으며, 청계천에서 시작된 천둥 소리가 울려퍼져 구천을 떠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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