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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 인간들의 선택 <디파이언스>
문석 2009-01-07

<디파이언스>는 비엘스키 파르티잔의 실화에 기반하는 영화다. 영화와 달리 비엘스키 형제들이 이끌었던 이들 유격대가 적극적으로 나치와 맞서지 않았다거나 소련군이 날리보키의 시민을 학살할 때 이들 유격대가 함께 있었다는 등의 역사적 증언들이 나오지만, <디파이언스>가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이상 역사적 진실에 꼭 부합하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바는 무용담이 아니다. 투비아를 비롯해 주스(리브 슈라이버), 아사엘(제이미 벨) 등 비엘스키 형제들은 빈약한 장비로도 나치군에 곧잘 맞서긴 하지만, 여느 전쟁영웅에 비할 바는 아니다. 화끈한 전투신 대신 <디파이언스>가 초점을 맞추는 대목은 혼란 속 인간들의 선택이다. “우리가 살아남는 게 저들에 대한 복수”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비루한 삶이나마 꾸려나가자는 게 투비아의 입장이라면 나치를 처단하기 위해 소련군 파르티잔에 가담하는 주스는 강경론자다. 말하자면 투비아는 전쟁통 속에서 국민을 이끄는 정치가의 모델을, 주스는 적들에 온몸으로 항전하는 게릴라의 표본을 보여준다. 하지만 <디파이언스>는 둘 중 어느 선택이 옳으냐고 묻지 않는다. 극단적인 두 선택을 대립시키는 <미션>과 달리 이 영화는 두 가지 선택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듯 보인다.

그러한 대립점이 희미해지면서 이 영화는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특히 중반 이후 이야기는 투비아와 유대인 공동체에 집중되는데, 이는 <디파이언스>의 ‘홀로코스트 영화’로서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라스트 사무라이> <블러드 다이아몬드> 등을 만든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유대인 집단 내부의 갈등을 영화의 주요 축으로 끌어올리면서 여타 홀로코스트 영화와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이들의 ‘엑소더스’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큼은 피해가지 못했다. 결국 투비아는 유대인을 이끄는 모세요, 여호수아가 되는 것이다.

물론 홀로코스트를 다뤘다는 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가 유대인 박해의 역사와 선민(選民)의식의 맥락 속에 자리할 때 그들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해 날리는 미사일과 로켓포는 정당화된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그들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탄압받은 건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이고, 그들이 다른 민족을 까부숴도 괜찮은 이유 또한 선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파이언스> 속 한 유대인의 절규는 지금 더 큰 의미를 갖는 듯 들린다. “이제 다른 땅 다른 민족을 택하소서. 우리에게서 선민의 굴레를 거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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