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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의 연속성 <워낭소리>
김용언 2009-01-14

synopsis 평생 농사를 지어온 최노인에겐 30년을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인데, 이 소의 나이는 무려 마흔 살에 가깝다. 그는 최노인의 가장 좋은 친구이며, 최고의 농기구이고, 유일한 자가용이기도 하다. 최노인의 아내는 늘 남편이 소만 안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노인은 매일 소와 함께 산을 오르고 논에 간다. 그러던 어느 봄, 수의사는 소가 올 해를 넘길 수 없으리라고 선고한다.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워낭소리>도 사랑할 것이다. 이 안에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농촌의 온갖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전부 들어가 있다. 기역자로 꼬부라진 허리의 노부부, 그들과 한평생을 같이한 소, 무심한 자식들, 검고 투박하고 각질이 일어난 손, 진흙이 더덕더덕 붙은 소의 윤기없는 털. 지나치게 계몽적이고 전형적이지 않나 싶어 슬그머니 심술이 날 지경이다. 그럼에도 <워낭소리>가 끝없이 환기시키는 죽음과 삶의 연속성은, 보는 이의 마음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 힘을 지녔다.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면, ‘어린 것들’은 그 불안한 숙명을 강조하는 존재다. 늙은 소가 눈을 껌뻑거리며 마당에 서 있을 때 그 고삐를 물고 장난치는 강아지는, 갓 태어나 비실거리며 일어나지도 못하던 암송아지는 쑥쑥 자라난다. 몇 개월 만에 몰라보게 성장한 두 어린 짐승은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를 넘어뜨리고 늙은 소에게 위협을 가한다. 노부부와 소가 공부시키고 먹여살린 아홉 남매는 이제 자식까지 둔 중년의 사회인이 되었다. 사계절의 순환은 똑같은데, 그에 따라 성장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은 노부부와 소에게 자신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이 닥쳐올지, 지금까지의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뇌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묵묵히 받아들이며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삶이었던 이 늙고 외로운 존재들은, 그렇게 관객의 죄책감과 향수를 동시에 자극하며 따뜻한 웃음과 쓰라린 눈물을 한꺼번에 안긴다.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식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나뉠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단단한 기승전결의 구조와 감정선, 분명한 스토리텔링을 가진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고자 했던 이충렬 감독의 의도는 부산국제영화제 수상과 선댄스영화제의 러브콜 등으로 충분히 보답받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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